캠퍼스 없는 고려대학교를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더 나아가 대학교의 상징과 같은 정문과 후문이 따로 없고 주변에 맛집들이 즐비한 대학가가 없는 대학교를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여러분이 열심히 입시 공부를 하며 고3 때 막연하게 떠올린 대학생 자신의 모습은 거대한 정문을 통과해 전공 서적을 양팔에 낀 채 캠퍼스를 걸어 다니고, 강의가 끝난 후에 대학가의 인기 술집에서 동기들, 선후배들과 500cc 생맥주를 시원하게 들이키는, 그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캠퍼스는 일반적으로 대학이나 관련 기관 건물이 자리한 부지로서 들판을 의미하는 라틴어 ‘campus’에서 유래한다. 단과대학 건물과 강의실, 기숙사, 공원이 한데 어우러진 배움의 단지로, 우리나라에는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캠퍼스가 많다. 애기능의 벚꽃과 세종·서울캠퍼스의 굳건한 석조 정문과 고딕풍 건물은 고려대만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이다. 이에 덧붙여 매번 봄마다 벚꽃이 흐드러진 SNS 사진으로 유명한 경희대가 떠오르고, ‘샤’ 정문 자체가 상징적인 서울대도 생각난다.
하지만, 모든 대학교가 단독 캠퍼스를 가지는 건 아니다. 몇 해 전, 나영석 PD와 배우 이서진이 뉴욕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소개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서진의 모교인 뉴욕대학교(NYC)를 소개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전철역 입구에서부터 “아, 진짜 학교가 그냥 시내랑 섞여 있네. 공사판인데요?”라며 어디가 학교냐는 나영석의 물음에 이서진은 이렇게 대답한다. “여기가 학교야. NYC 깃발 막 붙어있잖아.” 이렇듯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대학 캠퍼스와 달리, 캠퍼스가 하나의 울타리나 성처럼 존재하는 게 아니라 도심 속으로 일반 상업시설, 주거시설과 함께 스며들어 간 대학교도 있다.
만약 고려대학교가 캠퍼스 없는 학교였다면 어땠을까? 안암오거리에 자리한 버거킹 건물에 ‘학생회관’이 있고, 삼성통닭 위층에 ‘교우회관’이 있고, 을지로 세운상가에 ‘하나스퀘어’가 있고, 파랑새분식 위에 ‘기숙사’가, 정부세종청사 옆에 ‘농심국제관’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고려대학교와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사람과 만나고, 공부하는 세종과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가 커다란 캠퍼스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공대 학생들은 을지로의 장인 기술자들과 쉽게 소통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되고, 국제관에서는 정부청사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기획할 수 있을 것이다. 일하는 사람들과 거리가 가까워지는 만큼 어쩌면 졸업하고 사회로 나가는 심리적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질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당연한 걸 뒤집어 보는 상상이 필요하다. 많은 비판과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청와대도 이제는 시민들이 이용하는 장소로 바뀌었다. 광화문에는 대통령이 없다. 앞으로 종로나 광화문은 어떤 의미로 우리 곁에 남을까? 마찬가지로 우리가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조치원에, 안암에 캠퍼스가 없어진다면 어떤 대학 생활이 펼쳐질 수 있을까? 담장과 울타리를 허물고 세상과 적극적으로 만나는 대학을 상상하는 건 아직 우리에게 너무 먼 이야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