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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근 Jun 12. 2020

Smells like teen spirit

어제 저녁 거실에 틀어진 smells like teen spirit을 우연히 듣고는, 수 년동안 잠잠히 묵혀만 두었던 내면의 rock spirit이 갑작스럽게 요동을 치기 시작했고, 기타 리프의 묵직한 사운드가 청세포를 자극함과 동시에 허공에 8자를 그리는 매우 급진적인 헤드뱅잉이 내 대뇌피질의 통제와는 별도로 즉발되었으며, 약 3초 가량으로 추정되는 장구한 시간 동안 마구 흔들리는 머리통의 과격한 움직임에 빠져들었지만 이윽고 가출했던 정신이 급히 집을 찾아왔고, 그제서야 나의 냉철한 이성은 이 곡의 후렴구가 내 체력에 비해 무척이나 길다는 분석을 내놓았는데, 도무지 끝나지 않는 커트 코베인의 목소리를 들으며 내 분석의 정확함에서 오는 눈곱만한 만족감에 이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불안감이 쓰나미처럼 엄습해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고막에 종속되어 멈추지 않는 헤드뱅잉은 결국 예고된 파국으로 끝나게 되는데, 마침내 막바지에 초급성 현훈이 크리티컬로 뇌수를 때리고 말았고, 나는 락커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려 하지만 끝내 중심을 잃고 갈지자로 뒷걸음질치다가 대자로 쓰러지고야 말았으며, 에너지 고갈로 눈이 절반밖에 떠지지 않는 상태에서 한때 락페스티벌에서 주야간 2박3일 상모돌리기를 해도 멀쩡하던 옛 시절을 회상하며 늙음에 대해 한탄하다가, 옆통수에서 동거인의 한심스런 눈초리를 느끼고는 서러운 눈물이 찔끔 나오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 모가지가 몹시 아프다.


#Smellsliketeenspirit #목아플땐한의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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