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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근 May 14. 2020

세상에서 가장 쉽게 채식하는 방법

채식이 어렵지 않은 이유

채식이라고 하면 왜 하는 건지 알 수도 없고, 공감은 한다 해도 내 입맛이 있는데 막상 어떻게 하나 싶어요. 나에게는 절대로 불가능한, 나하고는 너무나 먼 나라의 일처럼만 느껴지지요. 그런데 사실 채식은 그렇게까지 힘들고 다가가기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소수의 유난하고 특별한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대단히 영적이고 실천적인 사람만 하는 것도 아니고요. 거창한 작정과 계획이 꼭 필요하지도 않아요. 채식을 하고 있지만 제가 무슨 출중한 사명감이 있거나 남다르게 엄청난 의지력을 타고나서, 아님 애초에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던 사람이라 하고 있는 건 아니거든요. 저도 늘 계획을 세웠다 실패하길 반복하는 평범한 인간이고, 전에는 드물게 마주치는 채식주의자를 이해하고자 해 본 적도 없었고, 평소 고기반찬을 즐기면서 주기적으로 불판에 고기 좀 구워줘야 스트레스가 풀리던 그냥 흔한 보통의 식사를 하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실상을 알아 버린 거예요. 알고 보니까 이게 좀 많이 심각한 거더라고요. 턱이 덜덜 떨리고 눈물이 나올 만큼요. 나라면 단 일분도 견디지 못할 고통을 동물들에게 주면서, 또 우리 다음 세대의 소중한 미래를 지우고 망쳐가면서 이게 그렇게까지 꼭꼭 반드시 채워야 할 욕망인가 싶고, 이거 없이는 못 산다 싶을 정도로 절대적으로 필수 불가결한 것인지도 확신할 수 없었어요. 더 이상 손 놓고 있으면 안 된다는 마음에, 안타깝고 비극적인 상황에 동참하고 싶지 않단 생각에 그냥 시도해보기로, 하는 데까지 노력해보기로 한 거예요. 특히 우리 집 강아지를 보면서 우리가 모두 같다는 걸 매번 배우면서도 마냥 방관하고만 있기가 어렵더라고요.


물론 처음부터 채식을 잘 지켰던 건 아니고, 중간에 계획과 실패도 있었고 초기에는 고기를 먹고 싶단 유혹에 자연스레 넘어가기도 했어요. 지금까지도 사회생활하면서 육류를 철저하게 차단하기는 힘들고, 내가 모르는 동물성 재료들이 들어간 음식을 먹게 되기도 해요. 꼭 만나야 할 사람들과 함께 식사할 때는 해산물과 계란을 먹기도 하고요. 하지만 인간은 불완전하니까요. 그렇게 완벽하지 못할 때마다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저는 그래도 좋아요. 왜냐하면 실패하지만 매번 좀 더 노력하는 나 자신을 보며 마음의 짐을 덜기도 하고요, 또 그렇기 때문에 이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되기도 하니까요. 채식은 실패에도 단념치 않고 나아가는 일이지 결벽스럽게 육류를 차단하고 주변과도 괴리되는 일이 아니거든요. 이건 얼마나 갔느냐보다는 마음이 가리키는 방향에 주목하는 일이에요. '그래서 먹었니? 안 먹었니?'가 아니라 '그래서 어떻게 생각해?'에 가까운 일입니다.


예전에 트위터에서 누가 쓴 걸 본 적이 있는데, 육식을 하더라도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에 공감한다면 두 가지 정도의 일을 할 수 있다고 그랬어요.

첫 번째는 고기를 덜 먹으려 노력하는 거래요. 그러니까 고깃집에 가서 왠지 일 인분이 더 당길 때 거기서 추가 주문하지 않고 멈춰보는 거, 제육볶음을 하려는데 한 근이 아니라 절반만 사서 채소를 더 넣어보는 거, 식탁 위 고기반찬에 젓가락이 가는 횟수를 조금만 줄여보는 것들은 육식을 하더라도 충분히 해볼 수 있는 일이겠지요.

두 번째로는 육식 문화를 재생산하지 않는 거래요. 말이 좀 관념적이지만 간단해요. SNS나 카톡 같은 데서 육식했다는 사진을 올리지 않으면 된대요. 고기를 찬양하고 먹고 싶다, 맛있다고 홍보하는 게 사실은 육식문화를 더 확대하고 사람들을 자극하여 더 많은 육류 소비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에요. 스마트폰을 들기 전에 진짜로 고기를 먹으면 스트레스가 없어지는지, 세상과 내일의 환경에 되려 스트레스를 더 얹는 건 아닌지, 결국 그게 돌고 돌아 누구에게 돌아오는지 생각해보면 좋지 않을까요?


정말로 중요한 일은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일이겠지요. 내 욕망들이 어디서 오고 왜 이렇게 갈급해지는지, 껍데기를 벗긴 진짜 내 마음은 어떻게 생겼는지를요. 또 외부로 눈을 돌려 세상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나는 그 일들과 얼마나 엮여 있는지도 제대로 보면 좋겠어요. 나는 속으로는 어떤 사람이고 밖으로는 어떤 이가 되고 싶은 걸까요? 매번 궁금해서 지그시 마음을 살펴보고 쓰다듬고 야단도 치고는 하지만 여전히 정확한 모습은 가만가만합니다. 그런 면에서는 채식은 저에게는 목적으로써도 큰 의미가 되지만 수단으로써도 매우 소중합니다. 맨 얼굴에 더 바투 다가갈 수 있게 도와줬거든요. 부족한 용기를 채워주며 솔직한 스스로를 관찰할 수 있게, 부끄러움을 떨쳐내고 행동할 수 있게 도와줬어요. 그러니 신기하게도 먹는 걸 통해서 세상 속 나란 존재의 위치를 잡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조금은 철학적이기도 해서 남사스럽지만, 아득하기만 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 이제 조금은 알 거 같아요. 새삼 깨닫게 된 누구나 자연의 일부로 살며 그 속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진리, 이는 곧 덜 소비하며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고 더 존재하고픈 제 삶의 깨끗한 목표와도 닿아 있겠죠.


그러니까 채식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랍니다. 고기를 먹는다고 죄책감을 심고 비난을 하기 위한 이야기도 아니고요. 약간의 고민과 실천만 있으면 모두가 당장 다음 끼니부터 가볍게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젓가락질 한번 덜하는 아주 조금이라도요. 그리고 정말 좋은 일이에요. 나에게도, 세상에도. 기분이 좋기도 하고요. 자그마한 행동과 잠시의 성찰도, 세상과 나를 연결하는 일에서 출발하는 모든 것들은 크기와 무관하게 언제나 의미가 있으니까요. 유튜브에 공장식 축산의 실태를 찍어놓은 동영상들을 보면 댓글에 이런 질문들이 자주 달려 있어요. “Are you connected?” 실은 우린 날 때부터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연결감을 상실했을 뿐이지요. 다들 코로나19가 그동안 잊힌 연결들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맞잡은 손을 통해 지금처럼 포악한 바이러스를 주고받는 건 싫어요. 우리가 서로 무언가를 공유할 수밖에 없는 사이라면, 그렇다면 따뜻한 마음과 애정 어린 행동을 나누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아마도 뒤에는 이런 질문이 이어져야 할 거 같아요. “So, what do you want to share?” 여러분은 무엇을 함께하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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