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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근 Apr 29. 2020

자전거 탄 풍경

자출 소감

얼마 전에 우연히 자전거 탄 풍경의 노래를 들었다. 반가운 마음에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자전거 탄 풍경이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일까. 그동안은 자전거를 탄 사람이 보이는 풍경이라고 생각했는데, 혹시 자전거를 타고서 보이는 풍경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4월 들어서면서 한동안 얌전히 모셔만 두었던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릴 때 느끼는 풍경은 두 발로 산책하면서 느끼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요즈음 봄내음 가득한 산책로를 걸으면서는 발 밑에 차이는 냉이꽃과 제비꽃에 허리를 숙이고, 철쭉이 알록달록한 한복을 입은 아이들처럼 재잘대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가, 노랗게 단장한 민들레 위에 키가 큰 황매화와 죽단화가 꼭 같은 빛깔로 나란히 흔들리는 모양에 눈가가 간질간질해지기도 한다. 소나무는 송화가루를 사방에 전파시킬 꽃대를 올리며 방송 준비를 하고 있고, 어리고 연약한 이파리를 뽑아낸 주목은 머리 끝을 밝게 염색한 듯 봄 치장에 바쁘다. 다가가면 애틋하고 귀엽고 경이롭기도 한 이런 각자의 속사정은 걸어야만 보인다. 오로지 천천히 걸을 때만, 그들의 이야기에 귀가 열린다.

자전거를 탈 때는 걸을 때와 다르게, 풍경을 호흡할 수 있다. 이건 달려서 놓치기만 한다기보다 달리 보는 것에 가깝다. 넓게 펼쳐진 봄의 향기와 바퀴 아래를 적시는 온기 가득한 햇살, 강물 빛이 추는 춤과 땅끝까지 내려앉은 아침 하늘이 자전거를 탄 어깨와 함께 들썩인다. 걷는 사람이 풍경을 눈으로 만지고 있다면, 자전거를 탄 사람은 풍경을 깊게 들이쉬고 내쉰다. 자전거를 타고 보이는 풍경은 무심코 휘젓고 떠나는 숨결과 한 몸으로 얽혀있어서, 눈으로 들어온 장면들이 가슴으로 빨려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 멈춰 서서 보고 만진 뒤에야 다가오는 느릿한 사유의 걸음과는 속도가 다르다. 한데 엉켜 꿈틀대며 들락거리는 봄기운의 시원하고도 성질 급한 향연이 바쁘게 도는 바큇살의 박자를 쫓으며 펼쳐진다. 그러니까 안장 위에서는 머리가 아닌 숨으로 느낀다. 페달을 힘차게 밟는 동작과 심장의 구령에 맞춘 호흡과, 감각의 끝에 닿고 맡아지는 모든 것들이 팔레트 위의 물감처럼 허파 속에서, 갈비뼈 아래에서 하나로 섞인다. 몸과 마음이 길 위의 봄빛으로 채색되는 것만 같다. 자연과 한 색이 되어버린 가슴이 뻥 뚫린다. 자전거 탄 풍경이 나에게로 와서 하나가 되고, 자전거 탄 풍경 속의 나도 그들에게로 가서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자전거 탄 풍경 둘이 겹쳐진다. 자전거와 봄이 굴러갈 때는, 또 다른 방식으로 봄을 만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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