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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카메라 Oct 19. 2018

보도의 품격

영화  <나이트 크롤러>를 본 촬영기자의 소회

컴컴한 비행기 안. 비행기는 이따금씩 흔들린다. 터블런스가 발생했으니 자리에 착석해 안전벨트를 착용해 달라는 안내방송이 들려온다.  약간의 긴장감이 흐른 후 비행기는 이내 안정을 되찾고, 식사하며 시킨 남은 음료수를 한 모금 넘기며 조금은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킨다.  딱히 비행기 흔들림 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은 이렇게 쉽사리 눈을 감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마음을 다 잡고자 노트와 펜을 꺼낸다. 출장 기간 동안 했던 취재 내용들, 먹었던 음식들, 다녔던 장소들을  하나하나 써 내려가 본다. 취재기자와 세웠던 계획들이 효과적 이였는지, 현장에서의 대응은 잘되었는지, 더 좋은 방법은 없었는지에 대한 생각들이 머릿속에 계속해서 맴돈다. 내가 촬영한 영상은 잘 저장되어 있을지, 노트북에 따로 백업을 해 놓았어야 했나, 촬영과정에서 실수는 없었나 하는 걱정도 이따금씩 든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현장을 떠나는 모든 촬영기자들의 마음은 이처럼 구름 위 비행기보다 더 흔들릴 것이다.      

이런 걱정과 후회의 시간이 지나고 조금의 피로감이 몰려올 때쯤 조금은 더 근본적인 물음에 봉착한 나를 발견한다. 출장의 의미, 촬영기자의 의미, 보도의 의미 그리고 언론의 책임. 이런 생각들이 머리를 가득 채울 때쯤이 되면 잠에 들기 마련이지만 그날따라 영화 한 편이 눈에 들어왔다. <나이트 크롤러>. '당신이 본 뉴스는 진실인가?'라는 문구가 선명히 쓰여 있는 포스터의 영화. 뉴스라고 하면 막연한 호기심이 생기는 어쩔 수 없는 기자이다 보니 자연스레 플레이 버튼을 누르게 되었다. 영화 속 주인공은 촬영기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인물이었고, 영화 속 상황과 우리의 현실은 다른 듯 닮아있었다. 순수하게 팩트만을 쫓아가기엔 녹녹지 않은 현실이 영화에 투영되어있었고, 우리는 어떻게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현실에서 보도의 품격은 어떻게 지켜질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들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첫 번째 품격 : 경쟁

<나이트 크롤러>의 주인공 루이스는 하루하루 먹고 살기 위해 장물아비 생활을 하는 잡범이다. 나름 사업적 수완은 좋아 그럭저럭 생활을 버텨 가지만 그 재주도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래저래 퇴짜 받고 빈손으로 집에 가는 길.  루이스의 눈을 사로잡은 교통사고 현장.  특종이 될 만한 사건을 카메라에 담아 방송국에 넘기는 일명 '나이트 크롤러'를 목격하게 된다.  누구나 찍을 수 있는 현장을 촬영만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구조는 루이스의 사업적 안목으로는 획기적인 아이템이었다.  '나이트크롤러' 생활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루이스가 마주한 현실은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았다. 경찰들과 시민들의 경계와 동업자와 경쟁해야 하는 구조였던 것이다. 여러 차례의 우여곡절 속에 루이스는 다른 촬영 팀이 포착하지 못한 생생한 사고 현장을 포착했고, 그 화면을 방송국에 판매하는 데 성공한다.      

'나이트 크롤러' 루이스의 삶은 대한민국 촬영기자들의 삶과 닮은 듯 다르다. 우선 근본적으로 사건사고 현장 쫓아다니고, 촬영하고, 그 화면을 편집해 뉴스에 방영한다는 점이 유사하다. 화면이 있어야 뉴스가 가능하다는 것은  TV 뉴스 불멸의 진리이다. 그런 화면을 촬영하고 제작하는 최전선에 루이스가 그리고 촬영기자가 있는 것이다.       

루이스의 취재 모습

현직 기자로서 루이스라는 인물에 관심이 생긴 이유는 우선 루이스가 벌이는 치열한 경쟁 때문이었다. 루이스는 치열한 보도의 세계에서 철저한 경쟁을 준비한다. 더 좋은 카메라를 준비하고, 현지 지리를 잘 아는 토박이 직원을 고용해 현장에 더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한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남들과 다르게 벤이 아닌, 스포츠카를 보도용 차량으로 사용한 점이다. 남들보다 먼저 현장에 도착해야 더 생생한 화면을 포착할 수 있다는 것을 루이스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사막 같은 현실에서 홀로 오아시스를 찾아야 하니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일 것이다. 현실 속 촬영기자들 역시  단독 영상을 포착하고, 현장에 조금 더 일찍 도착하기 위해 경쟁한다. 뉴스 화면을 보며 모니터링하고, 현장에서 대응이 과연 최선이었는지 반문하며 토론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현실 속 기자들의 이런 노력에도 영화 속 루이스가 우리와 다르게 보이는 이유는  유일한 스페셜리스트가 되기 위한 노력들 때문일 것이다. 요즘 보도는 관계기관이나 업체에서 내놓는 보도 자료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보도 자료의 원래 목적은 기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데 있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정보를 다 알 수 없는 기자들에게 기사거리를 알리는 목적에서 시작했던 관행이다. 하지만 이러한 보도 행태가 당연시되고, 취재 거리를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보도 자료를 찾아 헤매는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한다. 촬영기자들 역시 나만이 찍을 수 있는 화면이 아닌 우리 모두 갖고 있는 화면이 늘어나게 되었다.  모든 기자가 같은 현장 비슷한 화면을 취재한다면, 다양한 언론, 다수의 기자들이 존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루이스의 치열함이 혹은 유일함이 우리에게는 퇴화되어가는 DNA 같아 씁쓸해진다.     

루이스의 치열함이 혹은 유일함이
우리에게는 퇴화되어가는 DNA 같아 씁쓸해진다.


두 번째 품격 : 거리

2017년 새해 벽두부터 전국을 들썩이게 한 속보가 터진다. 정유라 체포.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주요 인물이었지만, 그 행방조차 묘연했던 정유라가 전격 체포된 것이다. 정유라가 살았던 집, 자동차, 심지어 정유라가 입었던 점퍼까지 연일 방송과 인터넷의 통해 회자됐다. 특히 정유라가 체포되는 모습은 영상에 고스란히 잡혀 우리나라 모든 언론사들이 그 화면을 인용했다. 그 화면을 촬영한 기자와 방송국은 흔히 말해 특종을 한 것이다.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언론들이  그 화면을 사용했을 테니 평생 한번 할까 말까 한 대형 특종이다.  그런데 언론사를 수년 다니면서 피의자 검거 화면을 그렇게 선명하게 본 적이 없다. 언론들에서 배포하는 피의자 검거 영상은 수사 당국이 제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연히 영상이나 사진에 대해 비전문가들이다 보니 전문가들이 촬영하는 것에 비해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정유라 체포 영상은 모방송사가 직접 촬영해 다른 언론사에 제공한 경우였기 때문에 다른 체포 영상에 비해 그 퀄리티가 높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유라는 수사 당국이 수사를 해서 범인을 체포하는 일반적인 과정과 다른 경로로 체포에 이른다. 언론사가 피의자의 위치를 파악하고 불법체류 면목으로 경찰에 신고해 정유라 체포 과정을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은 것이다. 특종을 따낸 것이 아니라 특종을 만들었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언론이 사건에 개입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일련의 모습은 영화 <나이트 크롤러>에서도 볼 수 있다.     

정유라씨 관련 취재 모습

루이스는 큰 특종일수록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업계 속성을 누구보다 빨리 파악한다.  우연히 일가족을 살인하는 장소에 가장 먼저 도착한 루이스는 그 사건 유일한 목격자가 된다. 하지만 그 정보를 수사 당국에 알리는 대신 자신이 범인을 추적하기로 마음먹는다. 옆의 동료(혹은 조수)가 경찰에 알릴 것을 제안하지만 루이스는 간단히 묵살해 버린다. 루이스는 그 범인을 찾아다니고, 촬영하기 좋은 오픈된 장소에 들어가는 피의자들을 포착한다. 촬영 계획을 세운 루이스는 경찰에 연락을 취하고 서민과 경찰이 총에 맞고 용의자를 체포하는 어찌 보면 가장 극적인 체포 장면을 카메라에 담는다.  영화 속에서 나올 만한 장면을 뉴스용 영상으로 만든 것이다. 더 극적일수록 더 잔인할수록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기에 어찌 보면 루이스의 행동이 비즈니스적으로는 옳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더 많은 돈을 받는 것이 기자의 역할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루이스가 사건 현장에 제일 먼저 도착하지 않았다면, 범인이 루이스에게 목격되지 않았다면, 루이스가 경찰에게 사실을 그대로 전달했다면, 아마도 무고한 시민들의 죽음 없이 사건은 종결됐을 것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기에 어찌 보면 루이스의 행동이 비즈니스적으로는 옳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더 많은 돈을 받는 것이 기자의 역할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루이스가 사건에 관여하며 취재 스케일을 키운 것은 한 번의 경험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시작은 작은 선을 넘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취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큰 교통사고가 일어났는데 경찰이 쳐 놓은 폴리스 라인 밖 취재하기 좋은 자리는 이미 기존 기자들이 차지했다. 루이스는 그 선을 넘었고, 자신의 생각에는 소소한 성공을 이루게 된다. 그때부터 (처음부터) 취재를 만들어 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모방송사가 루이스처럼 눈앞의 이익 때문에 사건에 뛰어들었다고 보기 힘들다. 하지만 특종이라는 기자에게는 떨치기 힘든 유혹에 넘어간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 역시 사실이다. 이러한 언론의 개입이 어떤 식으로 우리 사회에 여파를 미칠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것이다. 기자는 근본적으로 팩트 전달자다. 사실을 더 잘 보여주기 위해 여러 공부가 필요하지만, 사실을 만들거나 바꿀 역할을 부여받지는 못했다. 언론이 전달자로 서로의 역할을 망각하는 순간 기자는 작가가 되어 버릴 수 밖에서 없다. 기자의 카메라는 너무 가까이도 너무 멀리도 떨어지지 않게 그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다.  그 적정선을 지키지 못한다면 영화 속 루이스와 현실 속 기자가 무엇이 다르다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모방송의 이러한 뉴스의 시작이 루이스의 마지막과는 다르기를 바랄 뿐이다.      


기자는 근본적으로 팩트 전달자다.
사실을 만들거나 바꿀 역할을 부여받지는 못했다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 접한 영화 <나이트 크롤러>는 흔들리던 기자에게 보도란 무엇이고, 그 품격은 무엇인지 묻는다. 기자들을 상대로 한 블랙리스트가 나오고 언론과 정재계의 컨넥션들에 대한 증거들이 연일 터지고 있다. 기자로서 살아가기가 더 각박해지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조차도 희미해지는 요즘이다. 안갯속 현실이 기자들의 시아를 가릴 때 영화 <나이트 크롤러>는 어쩌면 명쾌할 정도로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는 것 같다. 기본에 충실하게 경쟁하라고 말하고 있다. 기자로서, 언론으로서 지켜야 할 선들이 있다. 그 선을 넘는다면 대중에게 파급력 있는 집단의 힘은 만용으로 이어지기 쉽다. 그러나 대중에게 뻗치는 그 힘을 잃지 않기 위해는 그 선 안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싸워야 할 것이다. 나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지만, 홀로 빛을 낼 수 있는 비판적 스페셜리스트가 되는 것이 보도의 품격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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