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솔비 Aug 21. 2020

내가 여성인 걸 처음 깨달았을 때

  내가 '여성'이라는 걸 처음으로 깨달은 건 결혼한다고 부장님께 보고를 했을 때다.

  부장님은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나에게 넌지시 물었다. 

  "회사는 계속 다닐 거고?"

  질문의 의도를 알지 못해 한순간 멍하니 있었다. 그러자 부장님은, 

  "그런 거야 차차 생각하면 되겠고..., 결혼식은 언제야?" 하면서 말을 돌렸다. 


  이제껏 말이다, 나는 내가 이 사회에서 여성이라는 사실을 그다지 실감한 적이 없었다. 대학을 가는 데는 점수가 중요하지 여성이냐 남성이냐는 질문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야 없었고, 취직을 하는 데에 있어서도 그랬다. 나는 우리 회사가 글로벌 채용을 하겠답시고 한국에서 처음으로 채용한 학생 3명 중 한 명이었는데, 면접 과정 그 어떤 곳에서도 내가 여성이냐 아니냐는 중요한 항목이 아니었다. 그리고 회사가 채용한 3명의 학생은 다 여학생이었다. 회사에 들어가도 동기는 여성 반, 남성 반이었고, 부서에는 남성사원이 더 많기는 했다만, 여성 사원수도 적지 않았다. 

  물론, 여성 임원수가 적다느니, 관리직은 남성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느니, 그런 불균형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회사는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었고 개선하려는 노력도 했다. 여성 관리직을 늘리려는 회사의 노력 덕에 승진하려면 여성이 더 유리하다는 말도 퍼져있었고, 실제로 많은 여성 선배가 관리직이 되었다. 물론 알게 모르게 이런저런 불균형이 없지는 않았을 거다. 보이기는 했으나 내 삶에 지금 당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지 않았기에 못 본 척했던 부분들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뿐이었다.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할 만한 일은 없었다.

  회사 생활에서도 그랬다. 상사도 여성 사원 남성사원 할 것 없이 똑같이 대했고, 내가 다녔던 회사는 오래된 회사였기에 연공서열제적인 부분이 남아있어서, 승진도 처음에는 회사에 들어온 연차 순이었다. 회사를 5년 남짓 다닐 동안 나는 여성 사원이 아니라 그냥 사원이었다. 부장님의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로부터 4년 남짓, 나는 두 아이를 낳고, 3년 간의 육아 휴직을 마치고 막 복직하려던 참이었다. 오랜만의 복직을 앞두고 상사와 면담을 했다. 가기 전부터 두근두근 했다. 사실 오랜만에 회사에 돌아가는 게 조금 신나기도 했다. 육아에서 어느 정도 해방된다는 게 기쁘기도 했고, 단절된 커리어를 얼른 잇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돈을 버는 것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다. "처음엔 단축근무로 시작하지만, 1~2개월 만에 곧바로 풀타임 근무로 바꾸고 싶습니다." 이 말을 몇 번이나 머릿속으로 되뇌었는지 모른다. 그 당시 난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면담 자리에서 저 말을 꺼낼 순간은 찾아오지 않았다.


  과장과 난 한 카페에서 만났다. 가볍게 근황 얘기를 하고, 돌아오면 어떤 일을 맡게 될지, 누구와 함께 일하게 될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난 단축근무를 하겠다는 이야기를 했고, 과장은 알겠다고 했다. 그걸로 끝이었다. 심지어 몇 시간 단축근무를 할 지에 대해서도 묻지 않았다. 우리 회사는 단축근무의 경우 5.5시간, 6시간, 6.5시간, 7시간 근무 중에 선택이 가능했는데 말이다. 언제까지 단축 근무를 할지도 과장은 전혀 궁금해하지 않았다. 일에 대한 내 의욕도 말이다.

  그때 알았다. 나는 그냥 반쪽자리 사원이구나. 내가 한 사람 분의 몫을 하리라고 기대조차 하지 않고 있구나 하고 말이다. 

  안다. 아이 둘을 키우며 회사에 다니는 건 쉬운 일은 아닐 거라는 걸. 하지만 아이는 나 혼자 키우나? 왜 아이 둘을 돌보는 일은 나만의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남편과 나는 합의했다. 풀타임으로 돌아가게 되면, 모든 걸 반 씩 하자고. 시간 여유 있는 사람이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가기로. 하지만 회사는 아이를 낳고 돌아온 나에게 애초에 한 사람의 몫을 하리라고 기대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나는 증명해야만 한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 일을 하지만, 일에 충분히 집중할 수 있다는 걸. 일할 의욕이 있다는 걸. 남편은 똑같이 두 명의 아이를 키우면서 일하지만, 이런 증명을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하다. 


  일이라는 게 쉬운 건 아니라는 거 잘 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마음대로, 계획대로 안 되는 일도 허다하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애초에 '일'이라는 걸, 육아나 가사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온전히 일에만 몰두할 수 있는 사람만이 해낼 수 있는 그 무언가로 만든 건 누구일까? 일에 대한 이런 정의는 언제까지 통용될 수 있는 걸까? 

  

  


  



작가의 이전글 영어보다 먼저 한국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