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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솔비 Sep 03. 2020

코로나, 재택근무

  만원 전철에 몸을 싣고 매일매일 9시까지 출근하는 일상이 당연한 날들이 있었다. 올해 4월, 3년 만에 회사에 돌아가는 날을 기다리며, 나는 또다시 만원 전철에 몸을 싣는 것을 미리부터 두려워하고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저기에 도대체 사람이 더 탈 수 있나?'싶을 정도의 기차에 몸을 쑤셔 넣고, 상사들보다 늦게 출근하지 않으려 적당히 일찍 사무실에 출근하여 하루를 보내는 삶. 거기에 정시에 일을 허겁지겁 마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어린이집에 들러 두 아이를 데리고 집에 돌아와 씻기고 밥을 먹이는 삶. 회사에 돌아가고 싶긴 했지만, 과연 내 체력과 정신력이 버텨줄지가 의문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 걱정은 기우에 그쳤다.


  4월 7일 일본에는 긴급사태 선언이 내려졌고, 학교는 휴교에 어린이집은 자숙 요청에 들어갔고, 많은 가게들은 문을 닫았다. 회사들은 출근시간을 플렉스타임제로 바꾸거나, 재택근무를 추진했다. 정부는 회사에 출근하는 사람들을 전체의 20% 안팎으로 조절할 것을 장려했다. 


  그렇게 재택근무는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집에서 컴퓨터를 켜고 일을 하기 시작했다. zoom이나 skype for business, teams는 회사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회의'를 지속 가능하게 해 주었고, 사람들은 바뀐 일상에 적응하려 이제까지의 제도와 규칙들을 손보기 시작했다. 

  





  이제껏 사람들은 재택근무를 추진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말해왔다. 세큐리티 문제, 직원 관리 문제, 평가 제도 문제, 그리고 사람들의 머릿속에 오랫동안 뿌리내려져 왔던 '회사'에 대한 관념, '일하는 방식'에 대한 관념, 그 모든 것들이 장애물이었고, 변명거리였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를 해야만 하는 상황에 몰린 지금, 사람들은 재택근무를 가능하게 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내기 시작했고, 장애물이라고 생각해왔던 문제들은 해결 못 하던 것들이 아니라 해결 안 하던 것들일 뿐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았다.

  

  웃긴 게 뭔지 아나. 나는 시스템을 만드는 회사에서 일했다. 그런데 이제껏 누구도 재택근무가 가능하다는 발상조차 떠올리지 않았다. 물론 일을 마치고 집에 가서 또 일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은 갖춰져 있었다. 육아를 하는 나의 선배 중 한 명은 아이를 데리러 일찍 퇴근하고 집에 갔지만 대신 저녁 10시 넘어서나 아침 5시쯤 일을 하곤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누구도 재택근무가 코어 타임에 출근하는 걸 대신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재택근무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마저 있었다. 


  일본의 비즈니스에서는 face to face가 중요하다. 일단 얼굴을 트고, 자주 만나고, 그러면서 신뢰를 쌓아가고 비즈니스를 한다. 일본의 오래된 기업에서 일을 하면서 느낀 것 중의 하나가 그거였다. 별 일이 없는 데도 고객을 찾아간다. 방법도 여러 가지이다. 회사에 입사한 첫 해, 선배들을 따라다니면서 별 일이 없어도 고객에게 들를 수 있는 여러 노하우를 배웠다.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왔다가 잠시 들렸어요. 불편한 일이나 궁금한 점 혹시 있으신가요?"

  "이번에 저희 회사에서 포럼을 엽니다만, 혹시 관심 있는 강의 있으시면 신청해둘게요."  

  "내부 심의에 올릴 자료, 혹시 이런 자료가 있으면 작성하는 데 도움이 될까요?"

 

  그렇기에 더욱더 그랬다. 회의는 또 얼마나 많은지. 그렇기에 재택근무는 선택지 안에 있지도 않았다. 그랬던 것이...


  




  코로나는 여전히 기승이고, 재택근무는 일상이 되었다. 후지쯔 주식회사(Fujitsu Limited)는 올해 7월, 국내 그룹 사원의 근무 형태를 텔레워크를 기본으로 하기로 결정하고, 국내 기존 오피스 면적을 3년에 걸쳐 50% 삭감하겠다고 발표했다. 국내 본사에만 33,000명의 직원이 일하는 히타치제작소(Hitachi, Ltd.)는 코로나와 관계없이 내년 4월부터 근무일의 50%는 재택근무로 제도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나는 코로나가 일상으로 정착한 7월에 복직했다. 오피스에 출근한 인원은 한 부서당 6명으로 제한되어 있었고(우리 부서는 30명 내외), 기본적으로는 재택근무가 장려되었다. 복직한 지 한 달이 지나도록 인사조차 나누지 못한 같은 부서 직원들이 많았다. 메일로 복직 인사를 돌리고, 스카이프의 전화 회의로 만나보지도 못한 사람들과 회의를 나눴다.


  그렇게 한 두 달 남짓 재택근무를 병행하며 회사에 다니며 느낀 점은 다음과 같다.


  우선 장점을 들자면,

  첫째, 안 씻어도 된다.

  나처럼 육아를 하는 부모들에겐 통근 시간 절약이 꽤 큰 메리트가 된다. 

  물론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보낸다는 전제 하의 이야기이다. (아이들이 몇 살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단언컨대 아이들을 돌보며 일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8시 50분에 업무를 시작하는데, 휴직 전 같은 경우, 적어도 6시 30분에는 일어나 씻고, 준비하고, 아침을 간단하게 챙겨 먹고 7시 30분에 집을 나서면 8시 30분가량 회사의 내 자리에 도착했다. 다들 출근하는지라 8시 50분 아슬아슬하게 도착하면 왠지 눈치도 보이곤 했다. 그런데 재택근무를 하니 아침의 그 2시간 반이 온전히 내 시간이 된다. 게다가 퇴근 시간 1시간을 더하면 하루에 3시간 반을 절약하는 셈이다. 그만큼 아이들과,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둘째, 눈치 안 봐도 된다. 

  다 같이 회사를 다닐 땐 쉬는 쉬간도 마음 편히 쉴 수가 없었다. 쉴 장소가 마땅치 않았던 것도 있고, 부장님, 과장님이 보는 데에서 쉬는 게 도무지 쉬는 것 같지 않다. 누가 딱히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지금까지 엄청나게 열심히 일했다는 티를 팍팍 내며 쉬곤 했다. 머리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데 억지로 꾸역꾸역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하릴없이 무언가를 하거나, 하는 척을 할 때도 있었다. 

  그러던 게 집에서 일을 하니, 내가 편한 시간에 마음대로 일을 할 수 있다. 아침형 인간은 아침에 집중적으로 일을 할 수도 있고, 하다가 너무 졸릴 때는 20분 낮잠을 자도 된다. 자신이 가장 생산적으로 일할 수 시간대, 방법을 스스로 결정함으로써,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셋째, 옷 값이 절약된다.

매일같이 출근할 때는 남들에게 보이는 부분에 들이는 시간과 비용이 컸다. 결혼하기 전에는 일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이곤 하면 쇼핑을 하곤 했다. 옷도 사고 맛있는 것도 사고. 그리고 그 카드값을 위해서 다음 달 또 일을 한다. 이 사이클을 반복하다 보면, 일을 하기 위해 쇼핑을 하는 건지, 쇼핑을 하기 위해 일을 하는 건지,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 건지 알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반절을 재택근무를 하면서, 남들에게 보이는 부분이 아닌, 진정한 자기 자신을 위한 소비, 또는 무소비의 가치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 자기 자신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안 좋은 점들도 있다.

  첫째, '캐쥬얼한 대화'가 어려워진다.

  지식의 공유와 확산, 충돌, 융합이 어려워진다.

  업무상 필요한 지식을 공유하는데 오피스는 사실상 좋은 장소였다. 옆자리에 앉은 선배에게 일하다가 모르는 게 나오면 바로 물어볼 수도 있고, 커피 한 잔을 하면서 거창한 계획을 가볍게 상상과 포부를 곁들여가며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재택근무가 생산성 향상에 기여한다는 연구는 많지만, 그 연구가 놓치고 있는 것도 있다. 바로 창의성과 혁신적인 생각이다. 한 연구는 밝힌다. 한 공간에서 같이 일을 했을 때 리모트로 협업을 하는 것보다 더 빨리 문제를 해결하는 경향이 있다. 

  리모트 워크의 추종자가 아니었던 스티브 잡스는, 창의성은 즉흥적인 미팅에서, 우연히 시작된 논의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Creativity comes from spontaneous meetings, from random discussions. You run into someone, you ask what they're doing, you say 'Wow', and soon you're cooking up all sorts of ideas."


  둘째, 화면너머로, 목소리만으로 친해져야 한다.

  비대면만으로 신뢰를 쌓는 데에 우리는(나는) 아직 익숙하지 않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재택근무가 가능할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가 face to face를 중시하는 문화 때문이었다. 비즈니스도 결국 사람이 하는 거고, 신뢰가 중요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이긴 한데, 얼굴 한 번이라도 보고 농담 한 번이라도 나눈 사이면, 일을 부탁하기도 편하다. 인간 대 인간으로 한 번 만나서 밥이라도 먹으면, 아무래도 다르다. 회의도 사실 친목도모, 같은 목표 공유를 다시금 재확인하는 의미도 있지 않나. 그래서인지, 그냥 술 마실 변명 거리를 찾는 건지, 요새 일본에서는 '온라인 회식'이 인기다.

 

  셋째, 나 자신에게 지면 안된다.

  집에서 혼자 일하다 보면 한없이 게을러질 수도 있는 게 사람이다. 옆에 편하게 누울 수 있는 소파가 있다면, 눕고 싶은 게 사람이다.(나만 그런가?)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에 자신이 자신을 감시(?)하며 일을 해야 한다. 이는 꽤 피로한 일이기도 하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분들이라면 잘 알지 않을까. 






  재택근무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늘어놓았지만, 어찌 됐든, 현재 재택근무는 선택사항이 아닌 필수이다. 결국엔 우선은 재택근무의 문제점들을 해결해나가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궁금한 건 그다음이다. 코로나가 종식되었을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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