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것 아닌데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것들이 있다. 에어컨 온도가 그중 하나이다.
올해 8월, 도쿄는 정말이지 땡볕이었다. 일기 예보에서 오늘 최고 기온이 32도라고 하면, '아, 오늘은 별로 안 덥네'하고 생각할 정도였다. 35~36도를 넘나드는 기온에 마스크까지 하고 있자니 숨이 턱턱 막혀왔다. 집에 오면 에어컨부터 켜는데, 평소엔 제습기능으로 켜 두다가 너무 더워서 못 견디겠다 싶으면 냉방 기능을 켠다. 온도는 27도. 선풍기도 동시에 켜 둔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 움직이지 않는다.
사실 저 방법은 어릴 적 엄마에게 배운 방법이다. 에어컨은 전기세 잡아먹는 괴물이라고 생각하셨던 엄마는 웬만하면 에어컨을 켜지 않으셨다. 저게 에어컨인지 장식품인지 헷갈릴 무렵, 공기가 무겁다는 게 몸으로도 느껴질 무렵, 엄마는 에어컨을 틀었다.
엄마가 에어컨을 틀겠다고 말하면 그 말은 곧, 방문, 창문을 재깍 닫고 오라는 말이었다. 에어컨 바람을 조금이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엄마는 조그마한 틈도 용납하지 않았다. 그리고 온도는 늘 27도나 28도였다.
아빠는 열이 많은 사람이었다. 28도로 틀어놓은 에어컨을 보고는 28도로 틀어놓을 거면 그게 에어컨이냐 하며 답답해하곤 했다. 엄마는 가만히 앉아서 안 움직이면 시원하다고 대꾸했다. 티격태격하지만 이기는 건 늘 엄마였다.
그런데 우리 남편, 에어컨을 24로 틀어놓는다. 나보다 기초 체온이 1도는 높을 것만 같은 우리 남편, 여름 내내 더워 더워를 입에 달고 산다. 그러고는 에어컨을 틀어놓는데, 무려 24도! 24도는 은행에서나 틀어놓는 온도 아닌가? 요새는 사무실도 24도로는 안 틀어두지 않나? 24도?!!!
집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 숫자에 나는 깜짝 놀랐다.
어릴 적 우리 집 에어컨 온도는 이랬다.
28도- 덥긴 한데 짜증 날 정도는 아닌 상태일 때
27도- 짜증이 밀려올 정도로 더울 때, 아빠가 상반신을 다 벗고 다니기 시작할 때
26도- 손님이 왔을 때, 혹은 엄마가 집에 없을 때
25도- 더위를 많이 타는 손님이 왔을 때, 혹은 엄마가 집에 없을 때
24도는 아예 우리 집 사전에 없던 단어였다. 그런데 24도라니.
웃긴 건 말이다. 엄마가 27도로 에어컨을 틀어놓았을 때 나는 아빠 편을 들며 항상 불평하는 쪽이었다. 틀지도 않을 거면 에어컨은 자리 잡아먹게 왜 샀느냐, 가만히 있어도 더운데 어떡하냐 등등... 그런데, 이제는 에어컨 온도를 마음대로 설정할 수 있음에도 나는 에어컨 온도를 26도로 켜는데도 마음을 다잡고 이래도 되나? 하면서 켠다. (물론 환경도 생각해야 되고, 이래저래 있지만..) 25도로 켜 놓으면 좌불안석이다. 몸은 시원한데 마음이 시원하지 않다.
에어컨을 틀면서 난 한 순간 엄마를 생각한다. 엄마의 품을 벗어났음에도 여전히 내 생활 곳곳에는 엄마의 자취가 남아있다. 에어컨 온도에까지 말이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내가 무심결에 하는 행동, 생각들의 얼마나 많은 부분들에 엄마가 있을까 생각한다. 무의식 중에 난 아직도 엄마를 의식하고 있지 않나? 엄마의 칭찬 혹은 인정을 바라고 있지는 않나? 하고 말이다. 에어컨 온도뿐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