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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솔비 Sep 18. 2020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을 즐겨본다. 유재석과 조세호의 입담도 볼거리이지만, 길거리를 가다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이 풀어내는 이야기가 아주 묘미이다. 잠시 얘기 좀 나누자는 제안에 처음에는 머뭇거리던 사람도, 진행자의 질문에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자신의 인생이 묻어나는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풀어낸다. 그 이야기가, 그들의 인생이 모두가 하나같이 다 소설과 같다. 때로는 소설보다 더 소설 같다. 


  그걸 보며 생각한다. 누구나 자신만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고, 그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욕망도 있구나. 진행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든, 유튜브 카메라 앞에 대고 혼자 주절거리든, 친밀한 친구에게 내밀하게든 말이다. 그를 위한 채널이 다양해진 요즘, 그럴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자신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다. 단, 디지털에 익숙하다면 말이다.


  유 퀴즈 온 더 블록이 좋은 건 그거다. 자신의 스토리를 전하고 싶지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봐줄 만한 콘텐츠로 만들 수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 자신의 스토리를 가지고는 있지만 어떻게 전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 자신의 이야기가 별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나 사실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형태로 만들어 주는 것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심지어 재미까지 있게 말이다.





  세상엔 훌륭한 사람도, 성공한 사람도, 존경할 만한 사람도 넘쳐난다. 서점에 가면 그들이 쓴 자서전이나 에세이, 자기 계발서 등등이 넘쳐난다. 우리는 그들의 삶과 우리의 삶을 비교하교 반성하고 마음을 다잡고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하지만 우리가 무너지는 건, 위인이 겪었을 법한 크나큰 시련 앞에서라기 보다는, 일상의 크고 작은 굴곡들에 끊임없이 마주쳤을 때 아닐까.

  홀로 육아를 하다 지칠 때면, 훌륭한 사람들이 사회에서 어떻게 성공을 거머쥐었나 하는 이야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힘든 육아를 짊어지고 하루를 버텨낼까, 어떻게 하면 이를 웃음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상황 속에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나와 같은 고민들을 가진 엄마들, 이미 나와 같은 길을 지나온 엄마들의 목소리가 더 듣고 싶다. 

  회사 생활을 하는데 도통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자신이 없을 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나는 이 회사에 언제까지 있을 수 있을까 앞날이 캄캄하게 느껴질 때, 그럴 때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는 회사 임원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와 같은 하루를 살아낸 말단(?) 회사원들의 목소리이다. 


  '일반인'이라는 카테고리에 뭉뚱그려져 있던 사람들 하나하나의 목소리를,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 그것이 이토록 내 삶을 위로해주고, 때론 감동하게 하고, 때론 웃게 할지 몰랐다. 

  알랭 드 보통은 일본의 한 잡지사와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코로나 시대에 필요한 건 롤모델이다. 셀레브리티가 아니라 힘든 삶의 역경을 넘어온 사람들,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 배워야 한다."




  그래서 나는 말이다. 이 브런치도 그렇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기회가 디지털에 친숙하지 않은 세대들에게도 닿았으면 좋겠다. 내가 좋아하는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도 그렇다. 손녀 분의 서포트가 없었다면 그녀의 찬란한 삶의 이야기를 알 길이 없었을 것이다. 


  그들의 삶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IMF라는 시련을 이겨내고 사업적으로 성공한 사람 이야기도 좋지만, IMF를 겪으면서 삶의 모든 것을 잃은 것만 같았지만 그래도 다시 일어나 어떻게든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고 싶다. 

  아이 셋을 키우면서 커리어적으로도 이름을 날리는 여성들의 이야기도 좋지만, 평범한 회사에 다니며 대출금을 갚으며 매일매일을 열심히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도 듣고 싶다.


  신영복 선생님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가슴에서 다시 발까지의 여행이 우리의 삶입니다. 머리 좋은 사람이 마음 좋은 사람만 못하고, 마음 좋은 사람이 발 좋은 사람만 못합니다"라고 말했다. 삶뿐 아니라 글도 그렇다. 우리는 머리와 가슴과 손발로 쓴다. 독서하고 학습하고 생각해서 머리로 쓴다. 감정과 느낌, 마음과 심정을 가슴으로 쓴다. 손발로 경험한 것을 쓴다. 신영복 선생님 말씀대로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가슴보다는 손발로 쓴 글이 좋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머리로 쓴 글을 쳐준다. 또 그런 사람이 많이 쓴다. 고난, 역경, 시련의 경험보다는 승승장구한 경험이 많은 사람이 쓴다. 책상물림 글이다. 간난신고의 경험 속에 생각할 거리가 더 많은데도 말이다. 탄탄대로를 걸은 경험보다는 오히려 맵고 짜고 쓴 경험이 더 대접받아야 한다. 

-<나는 말하듯이 쓴다>, 강원국, (주)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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