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솔비 Aug 25. 2020

부인, 이 음악 좀 들어봐.

  "RADWIMPS? RADWIMPS라면 다 좋지~"

  RADWIMPS는 내가 좋아하는 일본의 밴드이다. 2016년 일본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영화 "너의 이름은"에 나오는 곡들은 대부분 이 밴드가 영화를 위해 만든 곡들이다. 남편과 나는 아이 둘을 재우고 함께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참이었고, 남편은 좋은 곡이 있다며 유튜브를 틀어 나에게 들려주었다.

  나는 읽던 책을 내려놓고 남편이 틀어준 뮤직 비디오에 빠져들었다. 역시 RADWIMPS는 달라.

  노래가 끝나고 남편은 좋아하는 곡이 또 생각났다며 다른 곡을 틀었다. 남편이 고등학생 때부터 좋아했다던 밴드인데, 이번엔 그다지 내 취향이 아니었다. 그래서 1절이 끝남과 동시에 나는 슬그머니 옆에 놔둔 읽다만 책을 집어 들었다. 음악은 한 귀로 건성으로 흘려들으며 말이다.




  그러다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남편과 모든 것을 공유했던 시절. 남편이 좋아하는 게 뭔지 궁금했고, 나도 그걸 함께 공유하고 싶고, 나도 그 안에서 뭔가 특별함을 발견하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다. 남편이 좋아하는 음악이라며 내게 들려주면, 집에 가는 길에 줄곧 그 음악을 들었다. 남편과 같은 감정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러다가 실제로 좋아하게 되는 음악, 영화, 책, 음식, 거리가 생겼고, 그렇게 남편과 나는 가까워졌고 서로의 관심사를, 서로를 나누었다.


  그런데 지금은? 육아 퇴근 후 피곤에 지쳐 잠에 들기까지의 짧은 시간, 남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게 우선이 되어버렸다. 남편이 좋은 음악이라 하며 들려주면, 듣기는 듣는데, 예전처럼 온 마음을 다해 듣지는 않는다. "나쁘지 않네." 하고는 내 하던 거 한다. 육아에, 일에, 가사에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내 취향도 아닌 음악에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결혼한 지 4년, 상대방에 대해 웬만한 건 다 알았다 싶은 마음이 드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그렇지만 말이다, 서로가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알아가려는 노력을 포기하면, 이 관계는 서서히 멀어지는 거 아닌가?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표하고, 상대방이 발견한 매력을 나도 발견해보려 노력하는 건, 좋아하는 상대방에 대한 예의 아닌가? 몰랐던 세상을 발견하는 기쁨은 덤이고 말이다. 

  

  나 또한 그렇다. 미스터리 소설의 계보에 대해 남편에게 장황하게 설명하거나, 최근에 읽었던 AI에 대한 책 내용을 마치 교수라도 된 것 마냥 남편에게 강의한다든가, 남편은 그다지 관심 없을 수도 있는 주제에 대해 나는 주절주절 끝없이 말한다. 그러다 남편이 질문이라도 던져오면, 자신의 감상을 말하거나 그 AI책 나도 읽어봐야겠다 하고 말해주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그것만으로 나에게 관심이 있음을, 나를 인정해주고 있음을 느낀다.


  그렇게 관계는 유지되는 게 아닐까. 사랑은 그렇게 계속되는 게 아닐까. 상대방에 대한 끊이지 않는 관심. 상대방이 보고 있고, 즐기고 있는 것에 대한 흥미. 남녀 간의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부모 자식 간에도 그럴 거다. 우리 아이는 상어를 좋아하는데, 아이가 아직 부족한 어휘로 열심히 상어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귀를 기울이거나, 열심히 질문을 해준다든가, 감탄을 한다든가 하면 아이는 으쓱해한다. 행복해 보인다. 밤새도록 상어 이야기를 할 것만 같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인데, 바쁘다는 핑계로, 내 가치관이나 내 취향이 더 소중하다는 핑계로 잊고 지내곤 했다. 오늘은 남편 이야기에 조금 더 귀를 기울여 봐야겠다. 조금은 과장된 리액션도 준비해 봐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여성인 걸 처음 깨달았을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