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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느무느 Jun 30. 2023

하루 이틀 아파본 건 아니지만

시작은 장염이었다. 몸이 약한 것에 비하면 나는 나름 대장 쪽(?)으로는 건강하다고 자부해 왔다. 먹은 음식에 따라 예민하게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는 일은 거의 없을뿐더러, 유산균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장 활동은 항상성을 손쉽게 유지했다. 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볼일 보기’ 위해 마신다는 것도 몇 년 전에야 알았다. 난 볼일을 보기 위한 어떤 수단도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 허약한 장기들 중에 그나마 제대로 기능하고 있어 기특하지만 남에게 뽐내기는 쉽지 않다. 눈이 좋으면 아무렇지 않게 내 시력을 자랑할 수 있겠지만, 건강한 대장을 자랑할 수 있는 기회는 살면서 몇 번이나 있느냐 말이다. 아무튼, 내 대장을 믿었던 만큼 나에게 장염의 고통은 낯설고도 충격적이었다. 


장염은 정말 무서운 것이었다. 내 모든 소화기관이, 속된 말로 하면, 맛이 가버렸다. 속이 메스꺼워서 계속 구역질이 나고 물만 마셔도 구토를 해 3박 4일간 음식을 먹질 못 했다. 위부터 대장까지 죄다 죽겠다고 비명을 질러대는 통에 내 입에서는 곡소리가 절로 나왔다. 열이 나고 온몸이 아픈 이 증상이 과연 언제쯤 잦아들지, 낑낑 앓느라 편히 눕지도 못한 채로 탄식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시작이었다. 장염 나흘째, 물을 마셔도 더 이상 구역질이 나지 않을 정도의 차도가 있자 생뚱맞게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가슴이 들썩이도록 기침이 나는 게 좀 불길 하더니 자고 일어나자 이번엔 목이 맛탱이가 가버렸다. 통증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말을 할 때마다 목이 너무 아파 두 손으로 목을 감싸야했다. 열도 다시 났다. 나흘을 굶고 기력이 없는 몸을 이끌고 이비인후과를 찾아갔다. 임파선염이라고 했다.


임파선염이 장염과 바통터치한 줄 알았건만, 장염은 퇴장하는 방식으로 페이드아웃을 선택했다. 계속되는 구역질에 나는 여전히 먹지를 못 했고 하루종일 기침을 했다. 그 사이에 수액은 두 번 맞았다. 두 번 중 한 번은 혈관을 찾는데 실패해 주사 바늘에는 총 세 번 찔렸다. 기침을 백만 번쯤 하니 결국 숨 쉴 때마다 갈비뼈가 아파왔다. 새우처럼 휘어진 몸을 이끌고 정형외과를 찾았다. 병원에는 이미 사람이 많았다. 병원 소파에 드러눕고 싶었지만 정신을 붙들었다. 1시간 동안 ‘아무개님 진료실로 들어오세요’라고 말하는 TTS 안내방송을 10번쯤 들으니 드디어 녹음된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불렀다. 의사와 짧게 면담하고 엑스레이를 찍었다. 다행히 골절은 없었지만 그렇게 계속 기침을 한다면 의사도 별 수 없다는 기색이었다. 처방받은 근이완제와 진통제는 역시나 소용이 없었다. 어째서 플라세보 효과조차 없는지.


일주일이 더 지나자 장염은 나았지만 기침으로 잠을 잘 수 없었다. 누워있으면 30분마다 기침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나 목을 가다듬어야 하니 잠도 못 자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사탕을 먹으면 그나마 기침을 덜해서, 궁여지책으로 입에 사탕을 물고 눈을 붙였다. 사탕 덕에 몇 시간이라도 잘 수 있었지만 이대로 며칠 더 아프다가는 이가 몽땅 썩어버릴 것 같은 꺼림칙한 기분이었다. 몸무게는 2kg가량 빠졌는데 보나 마나 얼마 없는 근육이 빠졌을게 분명했고, 기침할 때마다 갈비뼈를 부여잡느라 찌그러지는 몸통 때문에 체형은 비틀어진 채로 고정되어 가는 게 느껴졌다. 장염으로 시작했는데 치아와 체형까지 염려해야 되다니 너무 하지 않은가?


언제쯤 몸이 나을지 기약 없는 상황에서, 한 번 두 번 미루던 필라테스를 몸이 좋아질 때까지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필라테스 강사는 친절하고 사근사근한 목소리를 가진 여자분이었는데, 수업 일정은 운동선수 출신처럼 보이는 덩치 큰 남자 사장과 이야기해야 했다. 사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제가 장염과 임파선염으로 계속 고생 중이라 수업이 언제 가능할지 확답 그리기가 어렵네요. 몸이 좋아지면 연락드려도 될까요?”

 “네 알겠습니다. 회복해서 연락 주시면 그때 스케줄 잡아드릴게요~~”


걱정 어린 멘트 하나 없이 사장의 건장한 체격을 닮은 씩씩한 답문이 돌아왔다. 우는 이모티콘이라도 하나 넣어주지. 혹시 꾀병이라고 생각하는 거 아니야? 무덤덤한 사장의 문자에 내 아픔의 진정성이 의심받는 것 같았다. 나는 자기 연민을 경계하며 살아왔다. 특히 아플 때는 서러운 감상에 젖기 십상이라 나처럼 몸이 연약한 사람은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도록 더 주의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번에도 울적해지는 스스로를 질책하며 새로운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내과, 이비인후과, 가정의학과, 정형외과를 부지런히 찾아다녔건만. 억지로라도 씩씩하고자 했던 내 마음이 별안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건조한 문자에 타격을 입었다. 나 진짜 아픈 건데. 나 꾀병 아니고 진짜 아프다고!


난 현재 휴직 중이라 한 달 가까이 아픈 게 다행스럽게도 누군가에게 폐가 되지는 않았다. 동시에 엄청난 외향형 인간도 아니라 휴직하고 나니 딱히 나를 찾는 사람도 없어서 아파서 집안을 데굴데굴 굴러다녀도 ‘나 이만큼 아프다’하고 연락을 주고받을 사람도 없었다. 그러다 뒤늦게 알아차렸다. 자기 연민을 경계한다고 했지만 실상은 동정받고 싶은 마음이 버젓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나 죽도록 아프다!’ 동네방네 소문이라도 내야 위로가 될 것 같았다. 나는 꼴불견을 자처하고 ‘아파 죽겠다’ 소리를 매일같이 트위터에 올려댔다. 어른스러운 처신 따위 알 바 없었다.


몸이 약한 사람은 하나가 탈이 나면 도미노처럼 주르륵 새로운 재앙이 찾아온다. 건강을 회복하는 일은 무너진 도미노 조각을 하나하나 다시 세우는 일이었다. 회복하려면 식사를 제대로 하고 잠을 충분히 자야 했는데, 식사를 제대로 하려면 소화기능이 돌아와야 했고, 잠을 충분히 자려면 기침이 멎어야 했다. 이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 같아 내내 초조하고 짜증이 났다. 장염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새우볶음밥을 충분히 익히지 않고 먹은 과거의 나를 원망하는 마음, 평소 건강 관리를 더 철저히 하지 못 한 것에 대해 후회하는 마음, 진료 볼 때 성의 없다고 느껴진 의사에 대해 불평하고 싶은 마음이 수시로 번갈아가며 등장했다. 이들은 존재 이유가 타당한 자연스러운 감정임에도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히스테릭한 사람이 내뱉는 하소연이 될 뿐이었다. 부정적인 말만 자꾸 내뱉고 싶지는 않았는데. 온갖 까칠한 감정들을 품고 있는 내 모습을 견디는 것은 장염의 고통만큼 힘들었다.


아주 조금씩 천천히 나았다. 조금 기침이 줄자 엉망인 집안이 보였고, 기운이 차려지자 냉장고에 싹이 난 양파가 보였다. 죽 배달 시킬 때 같이 온 반찬들이 냉장고에 한 가득이었다. 아프기 전으로 일상을 돌려놓을 준비를 했다. 못 먹게 된 식재료를 버리고 인터넷으로 다시 장을 봤다. 운동도 곧 시작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생각했다. ‘계속 수업을 미루면 회원권 갱신 날짜가 자꾸 늦춰져서 싫었나?’ 필라테스 사장에게 문자를 보내려다 생각이 미쳤다. 하루 이틀 아파본 건 아니지만, 뒤끝이 이렇게 오래가다니 나도 섬뜩했다. 이번엔 도미노가 제대로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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