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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느무느 Sep 24. 2023

엄마가 깜빡깜빡하는 이유

  ‘육아하느라고 바쁘지?’ 하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조금 찔린다. 아기들이 어린이집에 다니기 때문에 쉬는 시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등원시키고 나면 낮잠도 좀 자고, 소파에 늘어져서 핸드폰도 본다. 하원시간이 다가오면 그제야 부랴부랴 청소기 한 번 돌리고 반찬 몇 개 만들어 놓기 위해 움직이는 게 다다. 나에겐 일종의 균형 감각 같은 것이 있는데, 하원 후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정신없음을 상쇄하기 위해 아가들 어린이집 가 있는 동안 최대한 게을러지려는 것이 그것이다. 하루 육아 및 가사 노동 총량을 철저하게 컨트롤하려는 본능이다. 나의 하루는 과하게 산만하거나 아니면 과하게 멍 때리는 시간들로 채워진다. 긴 호흡의 글을 읽거나 깊이 있는 사고를 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그러서인지 사고력이 녹슬어 가는 게 느껴진다.


  언젠가는 아침에 세수하려고 세면대 앞에 서서 세안제 대신 치약을 집어 들고 화들짝 놀랐다. 어린이집 등원은 주로 남편이 담당한다. 나는 몇 시간 전 잠자리에서 일어난 모습 그대로 엘리베이터 앞에서 아가들을 배웅하는데, 아침에 일어난 순간부터 쓰레빠 끌고 현관문을 나올 때까지 세수는커녕 눈곱 뗄 시간도 없기 때문이다. 워낙 일찍 일어나는 아가들 덕분에 난 기상 알람을 맞추지 않는다. 아기들이 잠에서 깨, 어쩌고 저쩌고 꺄르르 하기 시작하면 하루 시작이다. 아침밥 먹이고 응가 치우고 일 년 내내 달고 사는 감기약 멕이고 아기들 치카치카시키고 짧은 낮잠도 한 번 재우고 등원시켜야 하는데, 그 사이에 간밤에 예약으로 돌려놓은 아기 빨래를 꺼내 건조하고 어린이집 가방 준비하고 나도 뭣 좀 주워 먹어야 한다. 치약으로 세수할 뻔한 그날은 내가 아기들을 등원시켜야 했던 날이었다. 평소 루틴에 세수가 추가되었을 뿐인데 내 뇌는 과부하가 걸렸다.


  아침처럼 정신이 없을 땐 이해가 되는데 요즘엔 샤워를 할 때도 문제를 겪는다. 나는 샤워할 때 머리부터 감는다. 샤워 물을 맞으며 머리에 거품을 묻혀 놓은 상태로(거품이 머무르는 시간이 길면 두피가 딥클렌징이 될 거라는 느낌이 든다) 세수를 한다. 그리고 한꺼번에 샴푸와 세안제를 씻어낸다. 일거양득! 그다음 몸을 씻고 마지막으로 머리를 컨디셔너로 한 번 헹군다. 그런데 이상하게 얼마 전부터 컨디셔너 통을 집어 들어들 때가 되면 헷갈리기 시작했다. 내가 세수를 했는지 안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샴푸 거품을 내기 시작하면서부터 무아지경에 빠졌는지 정신을 차려보면 컨디셔너를 할 차례이다. 중간 기억이 흐릿하다. 내가 샤워기 물을 맞으면서 세수한 게 어제의 기억인지 방금 전의 일인지 도저히 분간이 안 된다. 결국 기억해 내지 못하고 세수를 한 번 더 하고 마는데 며칠 연속 이러고 있으니 패배감이 장난 아니다.


  ‘하원 후 발생하는 필연적인 정신없음(이걸 뜻하는 독일어가 있을지도 모르다)’은 아기들 밥 준비할 때 최고조에 다다른다. 밥을 준비하고 있으면 아기들은 어느새 알고 달려와 아기 의자 꺼내달라, 수저 달라, 턱받이 달라 옆에서 잔소리를 해댄다. 리드타임이 길어지면 고객님의 짜증이 쌓이고 그러다 보면 밥 먹기 전에 안아서 달래주어야 할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고 그러면 리드타임은 더 길어지고 그러면 짜증의 원인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아가들 잔소리에 성실하게 대답하면서 반찬을 데워서 그릇에 덜고 작게 자르며 촉각을 다투어야 한다. 그 와중에 한 번은 그릇을 꺼내느라 주방의 상부 서랍장을 열어 놓은 채로 급히 몸을 돌렸다. 순간 이마가 찢어질 듯 아프고 눈앞이 깜깜해졌다. 내 머리에 가해진 충격의 정체가 뭐지? 서랍 문 모서리에 셀프로 이마를 갖다 박은 것을 깨닫자 입에서 욕이 나왔지만 시간을 더 지체할 수는 없었다. 아기들에게 안 들리게 욕을 지껄이고 잽싸게 밥을 대령했다.


  쌍둥이 아가들이 말소리를 흉내 내면서 의사표현을 (쉬지 않고) 하게 되니 집은 항상 시끌시끌하다. 거기에 아가 둘이 싸우는 일도 몇 분마다 한 번씩 발생해서 뒤돌아서면 한 명 혹은 둘 다 빼앵 울고 있다. 아니면 식탁 의자에 올려달라고 ‘안아 안아’를 반복해서 외쳐대고 있거나, 원하는 물건을 내려달라고 책장 앞에서 ‘엄마 엄마’ 하며 나를 애타게 쳐다보고 있다. 뭐부터 해야 될지 몰라서 우왕좌왕하다 이마를 찧는다. 이게 바쁜 건가? 아닌 것 같다. 나는 그냥 오븐에서 180도로 달궈진 접시를 맨 손으로 덥석 만지기도 하고 에어컨을 켜 놓은 채로 하루종일 외출하기도 하며 지내고 있을 뿐이다. 바쁘지도 않은데 자꾸 깜빡깜빡하는 건 아무래도 너무 많은 동요 가사를 단기간 내에 습득하게 되면서 오는 부작용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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