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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느무느 Oct 11. 2023

좋은 감정으로 서로 알아가는 중

  일 년 전만 해도 아가들이 밤에 통잠만 자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일정한 수면 시간만 확보된다면 육아가 한결 쉬워질 것이라 확신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금 할 만 해진 것도 아니다. 아가들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닐 일이 많아지자 가까스로 충전된 체력이 낮 동안 빠르게 소진되기 일쑤였고, 아가들의 인지력이 발달함에 따라 매사에 아가를 설득하고 달래는 것이 우선이었다. 옷을 갈아입자고 해도 도리도리, 기저귀를 갈자고 해도 도리도리다. 내 딸들이 나를 거부하는 순간은 사춘기나 되어야 찾아올 줄 알았는데. 특히 이제 코 자자고 불 끄고 좋아하는 인형을 흔들어 보여도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타협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표정을 짓는다.


  17개월 즈음되자 드러눕기가 시작되면서 상황은 더 어려워졌다. 발달 과정에서 ‘재접근기’라고 부르는 시기인데, 아기가 하고 싶은 일은 많아지지만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다 보니 좌절과 분노를 느끼게 된다고 한다. 이쁜 짓만 하던 아기가 그동안 안 하던 행동을 하기 시작했는데, 요구가 들어지지 않았을 때에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엉엉 울다가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짜증을 표출했다. 밥 먹을 때도 예민해졌다. 아기의 서툰 숟가락질을 도와주려고 내가 손을 뻗으면 기분이 나쁘다고 숟가락을 바닥으로 던지는데 그래도 화가 안 풀리는지 울면서 포크도 던지고 물통도 던지고 그것도 모자라 식판까지 엎으려고 든다.


  이 시기를 버텨내려면 아기와 실랑이를 최소화해야 했다. 일단 재우느라 옥신각신하지 않기 위해 저녁마다 욕조에서 물놀이를 하기로 했다. 아가들 체력이 좋아지면서 짧은 샤워만으로는 충분히 나른해지지 않는 듯했다. 물놀이는 아가들이 물에서 안정적으로 앉고 설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는데 마침내 도입할 때가 된 것이다. 아가에겐 편안한 수면을, 부모에겐 빠른 육퇴를 선물해 줄 해결책이 되길 바라며 새로 산 물놀이 장난감을 구비해 놓고 욕조에 물을 받았다. 그리고 아기들이 낯설어할까 봐 나도 같이 욕조에 들어갔다.


  욕조에 발을 담근 아가들은 내가 물속에 있어도 긴장한 듯싶었다. 흥을 돋우기 위해 뽀로로 입에서 물이 발사되는 장난감을 현란하게 시현하며 좋아하는 동요 메들리를 열심히 불러줬다.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목청을 높이는 내가 노곤해질 때쯤 되어서야 그들은 마침내 마음을 놓는 듯했고, 곧 욕조에서 새로운 관심사를 찾아냈다. 그건 바로 나의 신체였다. 아가들은 물놀이에 집중하지 않고 자신과 다르게 생긴 내 신체 부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 한 손가락질에 나는 웃음이 터졌지만 아가들은 웃지 않았다. 그들은 진지하게 묻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손가락질에 응답을 해주어야 했다. 아가들은 이 날의 물놀이를 통해 새로운 단어 두 개를 배웠다. 바로 ‘찌찌’와 ‘털’이다.


  눈, 코, 입, 귀를 배울 때처럼 정확하게 짚어가며 알려준 건 아니다. 자꾸 가리키길래 지나가듯 말해주었을 뿐인데 아가들의 기억력은 놀라웠다. 아니면 엄마의 알몸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본 적이 없어서 기억에 강하게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아가들은 단어를 계속 활용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ㅇㅇ(자기 이름) 찌찌’라고 말하고 아빠의 가슴을 찌르며 ‘아빠 찌찌’라고 했다. 쌍둥이 아가들끼리 서로의 옷을 꼬집으며 ‘찌찌’라고 말하기도 했다. 급기야 내 가랑이 사이를 가리키며 ‘터… 터…’ 하고 중얼거렸다. 신체에 관한 낯 뜨거운 대화도 사춘기나 되어서야 할 줄 알았는데. 당황스러웠지만 함부로 웃지 않았다. 열심히 단어를 익히는 중인데 깔깔 웃어버리면 또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화를 낼지도 모른다. ‘터… 터…’ 하고 말하는 아가에게 잘했다고 맞장구를 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손가락은 슬며시 접어주었다.


  아기 기분이 상하지 않기 위해 하루종일 상냥하게 말하고 미소를 띠고 있는 것은 까다롭기로 악명 높은 직장 상사를 모시고 회사 생활을 하는 것과 같았다. 내 면전에 종이뭉치를 던지고 결재판으로 책상을 내리 쳐도 나는 싫은 내색 없이 씩씩하게 대답해야 했고, 다시 웃는 얼굴로 회의에 참석해야 했다. 그러려면 아기의 이 모든 행동이 내가 미워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것을 자꾸 되새기는 수밖에 없었다. 육퇴 후에는 오늘 하루 찍은 아기 사진을 보며 사진 속의 아기가 얼마나 이쁜지 상기했는데, 유난히 힘든 날에는 찍은 사진이 없어서 재접근기가 오기 전인 수개월 전 사진을 찾아보기도 했다.


  호되게 혼나가며 버티다 보니 나도 좀 삐딱해졌다. 말도 안 되게 짜증을 부리고 있을 때에는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요놈 나중에 보여줘야지’ 하는 마음도 있었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아기의 생떼를 폭로하는 데에도 쓰였다. 마냥 참는 것보다 고자질하는 것이 스트레스를 푸는데 효과가 있었다. 몇 가지 요령도 생겼다. 일단 어린이집 하원 후에는 절대 집으로 바로 들어오지 않는다. 놀이터나 아파트 단지에 풀어놓고 종종걸음으로 열심히 돌아다니게끔 한다. 밖에선 새로운 자극에 정신이 팔려서 집에서 보다 상대적으로 얌전하다. 실컷 놀다 집에 돌아오면 배고파서 밥도 잘 먹는데, 자기 전에 하는 물놀이와 같이 ‘힘 빼기 전략’이기도 한 셈이다. 물론 집에 돌아갈 때 잘 구슬려야 이 전략이 성공할 수 있다. 유일하게 찾아오는 위기의 순간은 집에 가자고 유모차 태우려고 할 때인데 밖에서 울어재끼기 시작하면 마음이 더 급해진다.


  다행히 아가의 발음이 조금씩 명확해지면서 우리의 소통은 훨씬 원활해졌다. 밥 먹을 때도 원하는 순서로 반찬을 입에 넣어줄 수 있게 되었다. 고기는 ‘꼬어’, 밥은 ‘빱’, 당근은 ‘당응’이다. 재울 때 해석해야 하는 단어는 조금 더 어려웠는데 토끼인형이랑 베개는 둘 다 ‘삐아’라고 한다. 짜증을 부리려고 시동을 걸다가도 내가 원하는 것을 착착 들어주니 머리도 바닥에 찧지 않았다. 더 다행스러운 것은, 내가 더 이상 물놀이에 같이 들어가지 않자 민망한 두 단어를 사용하는 빈도도 조금 줄었다는 것이다. 안 하는 건 아니다. 하고 싶은 말 실컷 다 해도 되는데 내 어딘가를 향한 손가락질도, 드러눕기도 밖에서만 안 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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