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부에서 문장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기자의 사적인 장면①

by 무민

‘인사가 떴습니다.’ 이 한 문장에 심장소리가 귀에 들릴 정도로 커지기 시작했다. 팀 점심회식을 마치고 걷던 중 부서 단톡방에 사진 한 장과 함께 메시지가 왔다. 곧장 눌러 들여다봤다. 내 이름이 바로 보였다. ‘전보, 사회부’.


서둘러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뻘뻘 흘리는 땀을 식힐 새도 없이 사회부장에게 전화해 인사했다.

“그래, 앞으로 잘해보자. 너도 오고 싶었던 건 아니겠지만.”


사회부장의 어색한 환영인사에 다소 반발심이 들었다. “저는 사회부 하고 싶었습니다.” 이게 내 진심이었다. 정치·사회부를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하고 연차만 쌓인 한이 짙게 남아있었다.


사회부 이동.png 이미지=챗GPT


약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적응하느라 바쁘다. 다만 사회부가 전에 있던 산업부와 다르게 요구하는 한 가지는 분명하다. 특정인이 아닌 모두를 위한 기사를 쓰라는 것.


단적으로 산업부는 기업을 위해 기사를 쓴다. 때로는 무리해서 만들어낸다. ‘노란봉투법’ 같은 기업에 불리한 법률안이나 정책이 발표되면 경제단체 이름을 빌려 지적하고, 기업에 부담을 주는 판결이 나오면 ‘이러다 기업 망한다’고 우려했다. 자본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게 이유지만 언론사 수익이 기업에 달린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


사회부는 그런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적어도 현장 기자들은 기업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오히려 사람이 중심에 온다. 범죄 피해자, 혹은 교육 정책 영향을 받는 교육현장과 학생들, 이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고민해 볼 법한 그런 사회문제들을 다룬다. 기자가 의식할 대상은 독자다(그리고 회사다).


출입처를 향한 비판이 서슴없다는 점도 이런 면을 보여주는 사례다. 최근 부처 기자브리핑 중 타 언론사 기자가 “이 설명이 왜 보도가 되면 안 되느냐”고 따져 물은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순간 공기가 싸늘해졌고 부처 담당자는 같은 설명을 반복했다. 다른 기자가 개입해 적당히 마무리됐지만 분명 산업부에선 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다른 언론사들 역시 특정 문제점을 대하는 부처 방침에 적극 비판한다. 그러면서도 부처 사람들과 점심을 같이 할 때는 그 어느 때보다 화기애애하다. 적당히 가깝고 너무 멀지 않은 긴장관계다. 이 역시 낯설다. 내가 새 출입 분야를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3년 가까이 기업 입장을 대변해 온 관성이 남아있어서다.


적응 문제는 시간이 약이다. 사실 가끔은 산업부가 그립기도 하다. 모든 분야가 각자의 바쁨을 소화하겠지만 산업부는 사회부보다는 예측 가능하고 잔잔하다. 몸이 편해지면서 마음의 긴장도 느슨해지기 쉽다. 좋으면서도 벗어나고 싶은 욕심에 목말랐었다.


내 커리어를 위해서는 사회부 경험이 절실하다. 기업과의 접점이 더 많았던 약점을 사회부 전보가 보완해 줄 수 있을 거다. 적어도 일단 부딪쳐 보는 자세는 사회부에서 확실히 얻어갈 수 있다. 일에서 얻는 만족감이나 보람 역시 전보다는 더 생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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