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errychloemas Oct 17. 2021

기획을 합니다.

공간 기획자에서 IT 서비스 기획자까지로 확장을 꿈꿉니다

기획자로 2년 정도를 일하다가 최근 이직을 하면서 다른 직무로 변경을 할 뻔했다. 그런데, 결국 다시 찾은 내 포지션은 기획자. 워낙 하는 일이 자주 바뀌다 보니, 사람들에게 "그래서 너는 하는 일이 뭐야?"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때마다 내가 하는 대답은 10번이면 7-8번은 다르다. 그만큼 다양한 일을 해왔던 것 같다. 사실은 내가 하는 일의 속성이 달랐다기보다는 일하는 분야(산업)가 다양했어서 더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 같다. 어쨌든 그중에서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대답은 '나 공간 운영해.'였다. 내가 생각하기에 물리적으로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 일이 '공간 운영'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대답을 한 것일 뿐, 사실 내가 공간 운영만 해왔던 것은 아니다. 가끔은 사람들이 물어오는 질문에 피곤해졌다. 왜 내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대답하기가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왜 내가 하는 일은 한마디로 설명하기가 어려운 걸까? 그래서 한 동안은 어떤 생각에 사로잡혔다.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을 일을 하고 싶어.
이름만 들어도 아는 회사에 다니고 싶어.


지금에 와서 보면  생각들은  수동적이었던  같다. 그동안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하면서 피곤했던 경험들이 잠시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했다. , 어쩌면 내가 감당해야  일을 다른 사람들의 (누군가가 이미 만들어 놓은 브랜드 혹은 사전적 의미와 같은 것들) 빌려 해결하려고 했던  같기도 하다. 내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그리고 무엇을 하고 싶은 건지 설명하는 건데, 그걸  누군가가 정해놓은  안에서 해결하려고 했을까? 물론 쉽게 설명할  있다는 것에도 장점은 있다.  그대로 다른 사람들을 쉽게 이해시킬  있다는 . 하지만 과연 그게 중요한 걸까?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라면  시간이고 떠들기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오히려 일에 대한 나의 생각들을 정리하고 말할  있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이제  스스로를 '기획자'라고 소개할  있는 시점이 되니, 여러 사람들과 협업하는 기획자로서 말하고 설명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같다. 그래서 스스로를 어떤 틀에 가둬 설명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제는 사람들이 나에게 '무슨 일 하세요?'라고 물어보면, 머뭇거리지 않고 '기획을 합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첫 번째 대상은 부모님이었다. 부모님도 매번 새로운 일을 하는 나에게 '그래서 이번엔 무슨 일 하는 거라고?'라는 질문을 자주 하시곤 했다. 그리고 100% 이해했다는 반응을 한 번도 본 적 없다. 그냥 느낌적인 느낌과 추측으로 이해하시곤 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부모님의 요청으로 내가 하는 일을 정말 여러 번 반복하고 반복해서 설명해드렸다. 여전히 100%는 이해하시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전에 비해서는 훨씬 더 많이 이해하셨다고 했다. 적어도 딸이 무슨 일을 하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겠다고 하셨다. 그게 바로 '기획자'다.


나는 '기획자'다. 기획자 하면, 요즘에는 보통 IT기업에서 서비스를 기획하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나 또한, 그런 기획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전까지는 다른 기획자였다. 나는 주로 공간을 기획하는 사람이었다. 오프라인에 존재하는 물리적인 공간들을 대상으로 그 안에 어떤 기능을 넣고,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해 계획을 세우는 기획자였다. 그렇게 내가 기획한 공간들이 늘어갈수록 나는 오프라인 공간에 대한 한계를 느꼈다. 워낙 IT기술의 발전 속도가 빠르기도 했고, IT강국이라 말하는 한국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더더욱 IT에 대해서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커져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COVID19 이후로는 오프라인 공간이 가진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그 와중에 너무 다행이었던 것은, 오프라인 공간 기획의 커리어 중간에 나에게도 IT기업에서의 경험과 경력이 있었다. 일 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었지만,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이었기에 기획자가 아니었음에도 기획에 일부분 참여할 수 있었다. 특히나 내가 만난 팀은 개발자와 비개발자의 소통이 정말 원활했던 곳이라, 개발자들과 일하는 것에도 어려움보다는 즐거움을 느꼈었다. 그래서 그때의 기억으로 언젠가는 꼭 IT기업에서 개발자들과 IT 서비스 기획을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다. 그리고 최근 이직을 하면서 내가 꿈꾸던 기획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내가 맡은 일이 앱/웹 기획이지만, 주요 비즈니스 모델이 오프라인 공간이었기에 오프라인 공간에 대한 이해가 필수인 기획이다. 나의 커리어 대부분이 오프라인 공간 기획과 운영이었기 때문에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이해가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가장 잘 아는 분야였고, 그래서 이 사업에 필요한 앱/웹 서비스를 기획하는 것은 내가 그동안 꿈꾸던 목표에 가까웠다. IT 서비스를 기획할 수 있는 것은, 그동안 느꼈던 오프라인 공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오프라인 공간 기획자로서의 커리어의 끝에 도달하는 것과 같았다.


덕분에 요즘은 하루가 멀다 하고 야근을 하고 있다. 그동안 내가 해왔던 오프라인 공간에 대한 기획을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일을 하고 있다. 앱/웹 서비스 기획에 대해서는 아직 공부하고 배워야 할 것이 훨씬 더 많기에 퇴근하고도 강의를 들으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고 있다. 너무 힘들고 어렵지만 정말 재미있다. 매일 다른 팀, 다른 직무의 동료들과 소통하면서 새삼 기획자가 얼마나 많은 대화를 하는지 느끼고 있다. 종일 대화만 하다가 하루가 끝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결국 기획할 시간이 부족해서 야근을 하면서 조금씩 기획서를 작성해나가고 있다.


기획자의 하루를 기록해봐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에 몇 명과 만나서 대화했는지 혹은 하루에 몇 시간을 대화했는지, 실제로 기획자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커뮤니케이션에 사용하는지 측정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실제로 관련된 흥미로운 데이터를 본 적이 있는데, 기획자들이 협업 툴을 사용하는 빈도수도 다른 직무에 비해 훨씬 높았다. 같은 협업 툴을 사용하는데도 유난히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할 수밖에 없는 역할이다. 늘 누군가에게 질문을 하고, 무언가를 요청을 하고, 들어온 질문에 답변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기획자는 어떤 프로젝트의 전체 일정을 조율하고, 모든 부분에서 문제가 없는지 끊임없이 확인하면서,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정말 많다. 처음에는 나는 '기획자는 기획만 하면 되는 거지, 왜 다른 일들까지 신경 써야 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어떤 기획자가 쓴 글을 읽고 생각이 달라졌다. 기획자는 기획한 일이 끝까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만드는 사람이라는 내용이었다. 즉, 기획이 실패하지 않도록 어떤 일이든 필요하면 하는 사람인 것이다. 기획자이지만, 디자인에 대한 지식이 더 필요할 때도 있고, 갑자기 가구에 대한 공부가 필요할 때도 있다. 또, 기획자이지만, 예산을 이해하기 위해 재무회계적인 이론을 공부해야 하고, 사업에 문제가 없도록 행정적인 절차에 대해서도 이해해야 한다. 그렇게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나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지?'라는 괴로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은 나의 기획이 성공적인 결과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일이라는 목표의식을 잊지 않는다면 기획자로서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 여전히 나는 '기획자가 이런 것도 해야 해?'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지만, 그때마다 되새기곤 한다.



기획자의 목표는 기획을 성공시키는 것이다.
그 길에 있는 모든 과정과 소통은 기획자의 몫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