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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축구 May 28. 2016

인생이 버거운 날엔 <소림축구>를

소림축구(2001) | 코미디, 액션 | 87분


좋은 축구영화를 찾겠다는 망상


그건 레스터시티가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우승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스크린 속 축구공이나 축구선수가 당신을 울리거나 감동시키길 기대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산티아고 뮤네스가 주인공인 <골(Goal, 2005)>을 봤나? 지네딘 지단과 라울 곤살레스가 까메오로 출연해도 영화를 살릴 수는 없었던 것 같다. 가끔씩 축구영화를 추천해달라는 이들에게는 이렇게 답했다. 


"감동이나 재미를 바란다면 축구장에 가든지, 그냥 축구 중계를 봐라"


그러니 "최고의 축구영화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내용의 전화를 받고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오늘의 축구' 당신은 그런 축구영화를 본적이 있었는지 묻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민방위 교육훈련소집통지서는 거부해도, 외고 청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밤새도록 고민, 다행히 안 했다. 아는 축구영화 이름을 떠올리다 갑자기 한 영화에서 생각이 멈췄고, 막 웃었다. 왜 웃었냐고? 주성치가 감독과 주연을 모두 맡은 <소림축구>를 주제로 글을 쓰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진지하고 담담한 축구영화 이야기를 바란다면 여기서 그만 읽어도 좋다. <소림축구>로 무슨 진지한 이야기를 하겠나. 감독이 주성치, 주연이 주성치인 축구영화가 제대로 된 이야기 구조와 유려한 연출을 담고 있을 리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볼 가치도 없다는 말은 아니다. 볼 가치가 없었다면 이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소림축구>에는 2016년 축구가, 현실세계의 축구가 갖지 못한 무언가가 있다.



루저들에게도 ‘둥근’ 공


이 영화에 나오는 이들은 거의 다 밑바닥 인생이다. "루저, 외톨이, 센척하는 겁쟁이"가 다수 출연한다. '황금 오른발'로 축구계를 평정했던 명봉은 20년 전 후배(강웅)의 승부조작 제의를 거절하지 못하고 명예와 건강을 모두 잃었다. 20년 동안 비굴하게 강웅의 구두를 닦으며 기다렸지만, 결국 강웅에게 배신당했다. 명봉이 백화점 앞에서 만난 씽씽(주성치)도 마찬가지다. 소림무술 연구자라고 자신을 소개하지만, 결국 폐지와 분리수거물품을 주워 파는 '개인 고물상'에 불과하다.


씽씽이 "너무 예쁘다"고 관심을 보인 아매도 태극권 능력을 만두 만드는데 쓰는 식당 직원이다. 게다가 아매는 자신감도 없다. 주인이 구박해도 반항조차 제대로 못한다. 명봉과 씽씽이 축구팀을 꾸리기로 한 뒤 찾아간 4명의 사형과 1명의 사제도 모두 마찬가지다. 대사형은 철두공(머리를 철처럼 단단하게 하는 무공)을 술집사장의 화풀이용으로만 쓰고 있다. 술집사장은 시도 때도 없이 대사형 머리를 술병으로 내리친다. 다른 사형, 사제들 모두 변변한 직업이 없다.



이들은 처음에는 명봉과 씽씽의 제안을 거절했다가 이내 축구팀을 만들기로 한다. 축구팀을 만들어도 변변치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동네 '노는형들'과의 연습경기에서 흠씬 두들겨 맞을 때까지도 그랬다. 이들은 두들겨 맞다가 자신들의 능력을 되찾는다. 이들이 맞다가 갑자기 한 명씩 각성해 하늘로 떠오르는 장면은 웃기면서도 뭔가 찡한 게 있다. 절세무공을 지니고도 신세한탄만 하던 이들이 처음으로 자신의 밖이 아닌 안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삶의 끝까지 내몰린 이들이 자신을 믿기 시작했고, 그들 앞에는 공이 있었다. 아마 다른 운동이었다면 이런 장면이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조금 달라졌지만, 사실 축구라는 게 22명이 공 하나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가난한 자의 운동'이었다. 11명이 한 팀으로 뛰기 때문에 변수도 많다. 모두 좋은 선수가 아니더라도 좋은 팀을 만들 수 있다. 디디에 데샹 프랑스 대표팀 감독이 즐겨 하는 말이 있다.


"나는 프랑스에서 축구를 가장 잘하는 23명으로 팀을 만든 게 아니다"




심판매수, 도핑을 이길 수 있는 힘 혹은 꿈


소림축구팀은 승승장구하며 결승전에 오른다. 결승전 상대는 강웅이 이끄는 악마팀이다. 악마팀은 이미 경기 전에 신체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약을 맞았다. 이들이 수영장 안에서 산소호흡기를 쓰고 연습하는 장면에서는 드래곤볼이 떠올랐다. 사이어인들이 부상을 당해서 치료 받는 장면이다. 나처럼 이 장면에서 드래곤볼을 떠올린 이들을 축하하고 싶다. "전국의 아재들이여 부끄러워하지 말지어다!" 강웅은 도핑에 그치지 않고 심판까지 매수한다.


소림축구단은 말 그대로 ‘악마의 능력’을 보여준 악마팀에 고전한다. 골키퍼를 보던 넷째 사형과 셋째 사형이 나란히 실려 나간다. 옷이 찢어질 정도로 얻어 맞고 떠난다. 팀에 합류했던 '동네 노는형들' 중 몇 명은 겁에 질려 떠난다. 7명이 있어야 경기를 이어갈 수 있는데 더 이상 선수가 없었다. 이때 머리를 모두 깎은 아매가 등장한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아매의 머리가 너무 길쭉했다. 외계인인줄 알았다. CG는 아니지만, 분장이었겠지?



골키퍼가 된 아매는 자신만의 능력을 선보인다. 두 명의 골키퍼를 넘어뜨렸던 강력한 슛을 태극권으로 제압한다. 직선적이고 강력한 슈팅을 곡선으로 막아낸 후 씽씽에게 전달한다. 씽씽은 회전회오리슛+독수리슛+총알슛을 엮어 골대를 아예 날려버린다. 도핑과 심판매수 그리고 비신사적인 상대팀의 플레이를 슈팅 하나로 무너뜨린 것이다. 그렇게 씽씽, 명봉과 소림축구단 그리고 아매는 루저들의 반란을 성공시켰다.


씽씽이 날린 마지막슛을 보며 생각했다. 현실에서도 누군가가 저런 슛을 날릴 수 있다면 좋겠다고. 한국 축구는 지금 아프다. 출범한지 34년 된 K리그는 여전히 자생력을 갖지 못했다. 지난해에도 심판매수, 도핑, 외국인선수 영입비리로 시끄러웠다. 학원축구는 더 심각하다. 뇌물과 입시비리 그리고 감독들의 폭력이 여전하다. 소림축구를 보며 낄낄거리다가도 가슴 한쪽이 시큰거리는 이유다.


물론 여러분은 그렇게 심각하게 볼 이유가 전혀 없다. 인생이 갑갑하고, 생각조차 버거운 날 <소림축구>를 보시라. 루저들이 날아오를 때마다 웃을 수 있다. 웃음은 당장 아무것도 고칠 수 없지만, 다시 일어설 힘을 준다. 11년 전, 실제로 한 청년이 그랬다. 거듭되는 자괴감으로 난생처음으로 자살까지 생각했던 한 청년은 <쿵푸허슬>과 <소림축구>를 연달아 보고 '인생 뭐 있어'라는 생각으로 다시 일어섰다. 친구 이야기다. 내 이야기는 아니다. 끝.


영화 공식 예고편



글 - 류청 (풋볼리스트 취재팀장)

사진 - 영화 스틸컷, 포스터

교정 - 오늘의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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