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의 축구 Nov 17. 2017

3편: 축구에서, 상황은 두 가지 뿐

'공격적', '수비적'이라는 표현의 오류


축구를 분석할 때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단어 중 '공격적'과 '수비적'이라는 형용사가 있다.


공격수들은 '공격적'인 움직임을 가져가고, 수비수들은 '수비적'인 움직임을 가져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처럼 들린다. 그렇다면 최전방 공격수가 전방 압박을 통해 볼을 빼앗아 득점으로 연결한다면, 그 공격수는 '수비적'인가 '공격적'인가? 이처럼 축구를 분석할 때 막연한 느낌이나 표현에 의존하면 일정한 잣대를 가지고 분석하기 애매한 장면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축구 경기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상황들을 분류할 객관적인 기준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그 기본이 '볼의 소유'라고 생각한다. 볼 소유권을 기준으로 축구에는 순전히 '공격 상황'과 '수비 상황'만이 존재한다. 나아가 이 두 가지 상황이 상호 의존적인 개념임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고교시절 축구를 할 때 간혹 이런 말을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우리 팀이 수비 진영에서 고전하고 있으면, "수비 똑바로 안 해?"라는 말을 저 멀리서 외치는 공격수들. 공격 진영에서 애당초 공을 빼앗긴 것이 문제일 수 있는데 말이다. 본인 또한 원인 제공자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공격은 최고의 수비'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게다가 볼을 빼앗겼더라도 공격 진영에서부터 수비를 돕는다면 팀 전체로 볼 때 보다 수월한 수비가 가능한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물론 반대로 공격수 입장에서는 수비수까지 공격에 가담해 빌드업을 도왔다면 볼을 빼앗기지 않고 계속 공격 작업을 이어갈 수 있었을 거라 받아칠 수 있다. 그러면 화살은 다시 수비수들에게 돌아온다.


극단적인 예를 들었지만, 공격과 수비가 서로 의존적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을 잘 보여준다. 공격수가 수비수를, 수비수가 공격수를 탓하기 시작하면 얼마든지 탓할 수 있다. 반대로 서로가 서로를 도우려면 얼마든지 도울 수 있는 것이 축구다.



축구는 팀 게임이다. 특정 선수나 '수비진', '공격진'을 분리해 책임지울 수 없다. '공격수'나 '수비수'라는 단어는 단순히 포메이션상 배치된 위치에 따른 차이일 뿐이다. 공격수도 볼을 빼앗기면 상대를 압박할 의무가 있고, 수비수 또한 빌드업에 가담할 의무가 있다. 정도의 차이일 뿐 공격과 수비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행해져야 한다. 전방의 선수들이 수비를 덜 도울수록, 후방의 선수들이 공격을 덜 도와줄수록 동료들의 부담은 커진다. 각자가 제 역할, 혹은 그 이상으로 팀에 기여해 승리를 도모하는 것이 프로 경기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스트라이커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득점을 올리는 것'과 같은 표현들은 잘못 이해될 수 있다. '득점을 올리는 것'은 공을 잡고 있을 때의 이야기이므로, 공격 상황에만 해당되는 말이다. 단순히 볼을 잡았을 때 득점을 올리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 뿐만 아니라, 볼을 잃었을 때는 볼 소유권을 되찾기 위해 압박을 돕는 것이 경쟁력 있는 스트라이커의 자세다. 물론 선수의 성향이나 감독의 주문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볼의 소유권을 빼앗긴 순간부터 11명의 선수는 모두 수비수다. 그리고 볼의 소유권을 가진 순간부터 11명의 선수는 모두 공격수다. '공격적'이기만 한 역할의 선수는 없고, '수비적'이어야만 하는 역할의 선수도 없다. 득점 상황에 직접적인 기여를 하는 최전방의 선수들만 공격수고, 결정적인 실점을 차단하는 센터 백과 골키퍼만 수비수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없애야 할 편견이다.



"창의적인 선수일수록 수비 임무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축구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11명의 선수 모두가 공을 잡기 위해 뭘 해야 하는지, 적이 공을 가졌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 주제 무리뉴 (*각주1)




역습 축구는 수비적, 점유율 축구는 공격적이다?


습관적이고 막연한 느낌에 의존할 경우 발생하는 오류들은 우리가 팀 단위 전술을 분석할 때도 쉽게 범하곤 한다. 2010년 당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오른 두 팀을 두고 '바르셀로나는 공격적이고, 인터 밀란은 수비적이다'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명백히 공격적인 색깔을 내는 팀과, 수비적인 성향의 팀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그저 습관적이고 뭉뚱그린 표현일 뿐이다.



16-17시즌 가장 공격적이라고 평가 받은 팀 중 하나인 세비야의 플레이다. 포지션에 집착하지 않고 모든 선수가 슈팅을 가져가고, 공격의 흐름이 끊겨도 전방 압박을 통해 신속히 자신들의 페이스를 회복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히 '공격적 수비'라고 할 만하다.


수비의 의미가 '실점을 막기 위함'이 아닌 '주도권을 이어 나가기 위함'일 때, 그 수비는 공격적인 수비가 된다. 또한 이런 공격적인 플레이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점유를 통한 지배를 실행할 수 있는 높은 기술 수준이 요구된다. 높은 점유율을 바탕으로 많은 찬스를 만들어내므로 다분히 '공격적인 축구'라 해석될 수 있다.


한편, 세비야의 예와 반대되는 '선 수비, 후 역습' 전술도 있다. 역습 축구를 구사하는 팀들은 주로 상대 팀에게 주도권을 내어 주지만, 결정적인 득점을 차단하는 것을 가장 높은 우선 순위로 삼는다. 따라서 수비 라인 역시 낮은 위치에 형성된다. 하지만 빈틈을 잡으면 역습을 통해 한 번의 결정적 기회를 노린다. 이런 플레이는 수세적, 보수적으로 경기를 풀어 가기 때문에 '실리 축구'라고도 불린다.


요컨대 점유를 통해 흐름을 지배하는 팀은 공격적, 수비와 역습을 통해 실리를 추구하는 팀은 수비적이라고 둘로 나눠 분류할 수 있을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현대 축구에서 많은 팀들이 택하는 '유행 전술'일 뿐, 한 팀을 규정할 수 있는 정확한 수사가 되긴 어렵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3골을 실점해도 4골을 넣어 이기는 16-17시즌 첼시. 과연 수비적인 팀이었을까?


첫째, 실리 축구를 추구하는 팀이 항상 적은 점수차의 승리만 거두지는 않는다. 어설픈 점유율 축구를 완벽히 깨부술 때, 역습을 구사하는 쪽이 오히려 대량 득점을 만들어 내는 '공격적'인 팀이 된다. 주제 무리뉴 감독이 부임했을 당시의 레알 마드리드 역시 선 수비, 후 역습을 매우 공격적인 스타일로 구사했다.


둘째, 이와 같은 스타일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전술 지능과 수비 기술이 필요하다. 한 번의 기회를 득점으로 연결하기 위해 날카로운 공격 또한 갈고 닦아야 한다. 로베르토 디 마테오 감독이 이끌며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한 11-12시즌 첼시가 그랬다.


따라서 어떤 팀의 성향을 '공격적'이나 '수비적'이라는 이분법적 틀 안에 가두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쪽이든 둘 다 잘해야 하고 중요하다. 축구 경기에는 공격과 수비, 두 가지 상황만이 존재하고 상호 의존하며 빈번하게 변할 뿐, 이를 통계적으로나 습관적으로 뭉뚱그려 '공격적 팀'이나 '수비적 팀'이라 표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실제 2017년 현재 유행하고 있는 쓰리 백 기반의 전술도 최후방 수비를 견고히 하면서 동시에 점유를 통한 지배가 가능한, 굳이 표현하자면 '수비적이면서도 공격적인' 전술로 각광받고 있다.



새로운 발상이나 패러다임은 유연한 사고에서 시작된다. 1980년대 브라질은 자신들의 공격 축구에 대한 파해법으로 유럽식 빗장 수비가 효과를 거두며 급부상하자, 공격을 더 강화하는 선택보다 그 후 20여년 간 이어진 '실리 축구' 노선을 택한 바 있다. 그 과정에서 세레조-팔카웅처럼 2명의 공격적 재능이 뛰어난 중앙 미드필더를 기용하는 체제를 버리고, 수비력을 갖춘 둥가-삼파이우, 질베르투 실바-필리페 멜루로 이어지는 2명의 '더블 볼란치' 계보를 여러 세대에 걸쳐 이어오기도 했다. (*각주2)


과연 '공격적' 또는 '수비적'인 팀을 구분하는 객관적 기준을 잡는 것이 가능할까? 득점 숫자는 운만 따른다면 세트 피스와 페널티킥만으로도 다득점을 올릴 수도 있다. 점유율? 수비 진영에서 볼만 돌리는 팀도 점유율에선 앞설 수 있다. 슈팅 숫자? 허무하게 중거리 슈팅만 남발하는 것은 어리석다. 이렇듯 객관적인 수치로 '공격적', '수비적'인 팀을 나누는 건 무리다.


이런 표현을 막연히 반복하는 건, 새로운 시각이나 분석의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여전히 그저 모호하고 주관적인 '느낌'의 수사에 얽매여 있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많은 사람들이 경기를 분석할 때 '선이 굵다', '저돌적이다'와 같은 형용사들을 자주 쓰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눈으로 보는 축구 경기를 언어로 풀어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때론 누군가의 그런 주관적 언어들이 청자로 하여금 경기 상황과 장면의 본질보다 표현에 현혹되게끔 만들 수 있다. 번지르르한 표현들은 눈에 보이는 상황을 전달하는 데 분명 도움되지만, 본질은 그게 아닐 수 있음을 명심하자.



"통계는 비키니를 입은 여자와 같다. 흥미롭고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정작 핵심적인 부분은 보이지 않게 숨어 있다"

– 아론 레벤스타인




[요약]

1. 축구에서 공의 소유권을 획득한 상황은 '공격 상황', 잃은 상황은 '수비 상황'이다.

2. 공격 상황은 '수비를 통해' 공의 소유권을 얻는 것을 전제로 하고, 수비 상황 역시 '공격 작업을 하다가' 소유권을 잃음을 전제로 한다.

3. 따라서 공격과 수비는 상호 의존적이다.



글 - 우지원

사진 - 오늘의 축구, Mike Kaplan (af.mil)

교정 - 오늘의 축구


'오늘의 축구'는 축구를 주제로 브런치카톡 플러스친구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풀어갈 작가분을 모십니다. football@prmob.kr 로 간단한 자기소개를 담아 메일주시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카톡에서 친구맺고 놓쳐선 안 될 축구 소식도 받아보세요! 친구맺기



1) <스페셜 원 무리뉴 새로운 리더의 시대> 후안 카를로스 쿠베이로, 레오노르 가야르도, 고인경 옮김 | 88p

2) <한 눈에 훑어보는 축구전략의 역사 – 1권> 이수열 | 116-131p

매거진의 이전글 2편: 축구를 입체적으로 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