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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깅업 Jul 10. 2024

토토로가 보여주는 어른과 아이의 차이

영화 <이웃집 토토로> 리뷰

영화 <이웃집 토토로>의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뒤늦게 <이웃집 토토로>를 봤다. 국내에는 2001년에 개봉한 영화인데, 23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보게 됐다.


출처: 위키백과 <이읏집 토토로>


2001년에  봤다면 다른 감상이었을 것 같다. 아이들과 토토로의 이야기에 집중해서 어린 소녀들의 모험기로 봤을 듯하다.


하지만 어른이 돼서, 아이들보다는 아이들 아빠와 훨씬 가까운 입장이 돼서야 보게 된 한줄평은, ‘동화 같은 가족 영화'였다.


어른이 보는 세상.


영화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만 놓고 보면, 사실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다. 영화의 줄거리를 현실의 사건 위주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새 집으로 이사를 간 아빠와 어린 두 딸. 어느 날 아빠는 서재에서 공부하고 언니는 학교에 가서, 놀아줄 사람이 없는 4살 여동생은 심심하다. 혼자 상상 속 모험을 하다가 숲 속 어딘가에 피곤해 잠이 든다. 상상 속에서 아이는 '토토로'라는 친구를 만난다.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진 날, 아빠가 우산을 챙기지 않은 걸 알게 된 언니는 우산을 들고 아빠를 마중 나간다. 동생을 혼자 둘 수 없어 데리고 나왔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아빠가 탄 버스가 오지 않는다. 다행히 시간이 흘러 비는 그치고, 아빠가 탄 버스가 도착해 셋은 집으로 향한다.


버스 정류장에서 언니는 씨앗 주머니를 하나 발견했다. 집에 돌아가서 주운 씨앗을 심고 싹이 나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언니와 동생의 꿈에 토토로가 나타난다.


몸이 안 좋아 입원 중인 엄마가 오기로 한 주말, 엄마의 병세가 갑자기 악화돼서 못 오게 된다. 속상한 동생과 이를 달래야 하는 언니는 서로 싸우게 되고, 동생은 울다가 길을 잃어버리고 만다. 온 동네를 뒤져 다행히 언니는 동생을 찾고, 대견하게도 둘이서 버스를 타고 엄마 병원에 간다. 엄마랑 아빠가 걱정할까 봐 선물하려던 옥수수만 두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간다.


'토토로'가 없는, 동심이 없는 현실을 이랬을 것이다. 아이 입장에서는 제법 큰 사건이지만,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커가는 과정의 일들일뿐이다.


아이가 보는 세상과 그걸 이해해 주는 어른.


아이들은 심심해도, 낯설어도, 무서워도 상상을 한다. 나뭇가지는 칼이 되고, 돌멩이는 전설 속 보석이 되고, 잎이 풍성한 나무는 토토로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상상을 나누면서 아이들은 즐거워하고, 형제자매는 우애가 깊어진다.


어른이 되면 다시 돌아가기 어려운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게 되는 모양이다. 그리고 이야기 속 아빠도 그게 가능한 존재로 표현된다.


이야기 속 아이들의 아빠는 아이가 보는 세상을 이해하고 존중해 주는, 정말 멋진 어른이다.


어렸을 때 다들 놀다가 길을 잃어서, 걱정하는 부모님께 등짝을 맞아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아이가 없어져서 한참을 못 찾다 숲 속에 누워 있는 걸 발견하게 되면 걱정스러운 마음에, 또 앞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혼내기 쉽다. 그런데 아이들의 아빠는 혼내는 대신 태연하게 이런 데서 자고 있었냐고 묻는다. 그리고 아이를 찾아다니느라 지쳤을 텐데도, 아이가 '토토로'를 만나게 해 주겠다며 데려가는 길을 기꺼이 같이 헤매준다.


아이가 데려간 곳에 토토로는 없다. 당연히. 근데 토토로를 아빠한테 소개해주지 못해 실망한 아이한테 '항상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무가 도와줘야 만날 수 있다"라고 말하며 동심을 지켜주고, 아이를 믿어주고, 오히려 사랑해 준다.


출처: 스튜디오 지브리


언니가 토토로를 만난 밤. 비는 장대같이 쏟아지고, 밤은 깊어가고, 버스 정류장에 사람은 없고 아빠는 안 오는 상황에서 12살 소녀는 무서웠을 것이다. 그나마 있는 동생도 졸리다고 업혀서 자기만 하니 혼자 더더욱 무서웠을 것이다. 그 무서움을 이겨내기 위해 아이는 상상력을 동원해 토토로를 보게 된다.


머지않아 도착한 아빠한테 안기는 두 딸은 토토로 덕분에 무섭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무서웠을 아이들이 토토로 덕분에 오히려 신나 하자 아빠는 안심하며 흥미롭게 이야기를 들어주고, 슈퍼맨처럼 한 팔에 한 명씩 안아서 집으로 돌아간다.


이 장면에서도, 나였으면 어땠을지 상상해 보게 됐다. 아이들이 버스 정류장에서 밤늦게까지 기다리고 있었으면 걱정되는 마음에 혼냈을 것 같다. 왜 위험하게 이 시간에 나와 있냐고, 동생이라도 두고 오지 그랬냐고.


그 후 아이들의 아빠는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토토로에게 받은 씨앗을 심고 언제 싹이 나냐고 묻는 아이들한테, 너무 당연하단 듯이 "토토로가 알지 않을까"라고 대답한다. 아이들이 보는 세상을 볼 수 없는 사람이라면, 대부분의 어른이라면, "물을 잘 주고 사랑을 많이 주면 곧 싹이 필 거야"라고 대답해 주는 정도가 최선일 것이다.


이렇게 아빠는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주는 걸 넘어 완전하게 어울려주고, 그렇게 사랑받은 아이들은 동네 사람들과 친구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다. 그리고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 상상 속의 낯선 토토로한테도 우산을 내어줄 만큼 착하고 바른 아이들로 자란다.


<이웃집 토토로>는 아이들의 눈으로 본 세상을 보여준 작품이다.


보는 내내 나 자신이 아이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설레고, 두근 댔다. 어른의 관점에서 보면 흐뭇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이웃집 토토로>를 너무 잘 표현한 히사이시 조의 노래들의 힘도 정말 대단했다.


메이가 도토리를 줍는 모험에서 도토리 줍는 모습과 노래가 착착 맞는 장면은 안무가 착착 맞는 퍼포먼스처럼 짜릿하기도 했다. 그리고 계속 반복되는 토토로 테마가 마지막 씬에서 가사와 함께 나오면서 영화를 아름답게 포장하는 느낌도 좋았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상상력도 대단했다. 투명화가 되는 토토로나 달리는 고양이 버스 같은 것들. 특히 달리는 고양이 버스의 디자인이 괴이하면서도 그럴듯해서 정말 매력적이었다. 헤드 라이트 역할을 하는 고양이 눈, 올라갔다 내려가는 고양이 문, 푹신한 고양이 의자, 그리고 무엇보다 바람보다 빨리 달리는 12개의 고양이 다리까지. 정말 아이들이 할 법한 상상을 구현하는 능력이 놀라웠다.


'인생 영화다'라고 할 정도의 깨달음을 주는 영화는 아니었다. 당연하다. 동화니까.


그렇지만 동화로서의 역할을 너무 잘 해내서 잠시나마 동심으로 돌아가게 해 주고 순수한 마음을 갖고 싶게 해 준 영화다. 그리고 내가 훗날 아이를 갖게 되면, 어른의 눈으로 가르치려 하기보다는 아이가 보는 세상을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해 준 영화였다.


아이는 '동화'를 보고, 어른은 '가족'을 볼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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