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사이드 아웃 2> 리뷰 #2
<인사이드 아웃 2> 리뷰로 1편과 2편에 대한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디즈니 산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픽사>에 자주 붙는 수식어는 '어른들을 위한'이다. 아이가 주로 주인공으로 나오는 전체관람가 영화들이지만 어른이 혼자 보러 가도 이상하지 않고, 아이와 함께 가도 재미있게 보고 나온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에서는 같은 경험을 하기가 어렵다. 그 이유는 두 제작사의 화법 차이에 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는 주로 그 타깃이 아이들이다. 어른들은 그런 아이들의 보호자로 극장에 올뿐이다. 그래서 디즈니는 아이들을 대하는 화법을 쓴다.
디즈니는 관객에게 심고 싶은 메시지가 있고, 이걸 '가르침'의 형태로 전달한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 본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들은 대부분 '권선징악'을 깔고 갔다. 거기에 더해 <알라딘>에서는 진실되라고 가르치고, <라이온킹>에서는 책임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겨울왕국>에서는 자신을 받아들여함을 강조했다. '권선징악'에 더해 '무언가 해야 한다'라는 가르침을 얹는다.
아이일 때는 가르치면 잘 듣는다. 신념과 가치관을 형성해 가는 단계이기 때문에, 좋은 가르침을 그대로 흡수한다. 디즈니는 그런 사회적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가르침'의 화법을 써왔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어른들은, 가르치면 듣지 않는다. '네가 뭔데.', '내가 알아서 할게.' 이것이 가르침(a.k.a 훈수)을 대하는 어른의 기본자세다.
<픽사> 영화는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도 좋아한다. 어른 혼자 보러 가서 울고 오고, 아이랑 손 잡고 가서 같이 울고 나온다. 이건 픽사가 아이들을 위한 화법 속에 어른들을 위한 화법도 같이 쓰기 때문이다.
픽사도 '무언가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는다. <인사이드 아웃 2>에서는 '모든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가르치고 있다. 물론 그 가르침 자체가 '권선징악'이나 디즈니에서 전하는 일반적인 메시지보다 폭이 넓고 깊이가 깊어서 그 자체로 더 울림이 있다.
하지만 픽사 영화의 중요한 점은, 어른들을 위한 '깨우침'의 화법을 쓴다는 것이다. 픽사 영화는 '무언가 해야 한다'라고 가르치기보다는, '무언가 잊지 않았어요?'하고 물으며 관객이 스스로 그 답을 깨우치게 한다. 그리고 이런 '깨우침'은 아이들보다 어른들에게 더 강렬하게 다가오며 큰 울림을 준다.
영화 <소울>에서는 꿈만을 좇다가 순간의 소중함을 잊은 것은 아닌지 묻는다. 국내와 동양 문화권에서 특히 성공한 <엘리멘탈>에서는 부모 세대에 대한 감사를 잊은 건 아닌지 생각해보게 한다. 그리고 <인사이드 아웃> 1편에서는, '모든 감정이 중요하다'는 가르침 속에 '빙봉'을 통해 어른들에게 동심을 잊고 산 건 아닌지를 물었다. 그래서 어른들이 유독, 그 장면에서 펑펑 울었다.
<인사이드 아웃 2>에서 가장 큰 울림을 준 장면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어른들은 다음의 대사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인사이드 아웃 2 명대사로 압도적 1위 좋아요를 받은 걸 보면, 확실히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이 있었던 것 같다.
<인사이드 아웃 2>도 1편과 마찬가지로 '기쁨이'가 본부에서 튕겨 나와 본부로 돌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하지만 2편은 1편과 상황이 많이 다르다. 1편에서는 본부에 남은 감정들 모두 기쁨이의 복귀를 기다렸고, 기쁨이 자신도 해결사라는 확신이 있었다. 2편은 새로운 감정인 '불안이'가 제어판을 잡으면서 '기쁨이'가 더 이상 라일리에게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쫓아낸 것이다. 그래서 본부에 남은 감정들은 기쁨이의 복귀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 때문에 라일리의 고등학교 생활을 망칠 뻔한 위기를 겪고 쫓겨난 기쁨이도 더 이상 스스로가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
라일리의 사춘기와 함께 새롭게 찾아온 감정들이 보기에 '기쁨이'는 너무 일차원적이고 단순하다. 새로운 감정들 중 '따분이'는 애초에 다른 일에 관심이 없지만 기쁨이에게 치명타가 되는 대사를 하나 날린다.
Joy is so old school.
기쁨이는 너무 구식이다.
제어판마저 블루투스로 조절해 버리는 게으름과 효율의 화신인 따분이가 보기에 기쁨이는 너무 구식이다. 지나치게 열정적이고, 비효율적이며, 모든 것에 열심히인 게 유치해 보이기까지 하다. 이런 평가에 줄곧 라일리 감정의 리더였던 기쁨이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불안이’가 보기에도 마찬가지다. ‘기쁨이'가 진지한 순간에 친구들과 노닥거리게 해서 라일리와 사람들의 관계를 위기에 빠뜨린 걸 수습한 게 항상 두세 수 앞을 걱정하며 대비하는 '불안이'였다. 이를 기점으로 '불안이'는 제어판을 잡고, 고등학교에 들어갈 라일리를 위해 새로운 자아를 형성하려고 한다. 기존의 감정들은 이를 용납할 수 없어 막으려 들지만, 불안이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며 기존 감정들을 본부 밖으로 쫓아버린다.
라일리의 삶은 이제 더 복잡해졌어.
너네들보다 더 섬세한 감정이 필요해.
너는 이제 라일리한테 더 이상 필요가 없어 '기쁨아'.
Riley's life is more complex now.
It requires more sophisticated emotions than all of you.
You just aren't what she needs anymore, Joy.
'불안이'가 보기에 '기쁨이'는 지나치게 낙천적이다. 다가올 수많은 위험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대비하지 않는다. 복잡한 라일리의 삶에는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지나치게 단순한 감정이다.
이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기쁨이'는 결국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본부로 돌아가서 '불안이'를 멈출 방법을 찾지 못한 기쁨이는 좌절한다. 그래도 기쁨이라면 방법을 찾아낼 거라 기대하며 묻는 다른 감정들 보며 기쁨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도 '불안이'를 어떻게 멈출지 모르겠어. 불가능할지도 몰라.
어쩌면 이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인가 봐.
기쁨이 점점 사라지는 게...
I don't know how to stop Anxiety. Maybe we can't.
Maybe this is what happens when you grow up.
You fell less joy...
이 장면이 많은 대사들 중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았으며, 극장에서 가장 훌쩍거리는 소리가 커졌던 구간이다. 픽사가 마침내 극장 내 어른들에게 준비했던 질문을 건넨 장면이다.
어른이 되면 '따분'과 '불안'의 영향이 커진다.
많은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따분'함을 느낀다. 허투루 에너지를 쏟기도 귀찮고, 효율적으로 딱 할 일만 하고 싶다. 삶과 사람에 대해 적당한 거리를 두면 큰 기대도 없는 만큼 실망도 없고, 대단히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다. 스마트폰으로 상시 도파민 충족이 가능한 오늘날, 이런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불안' 역시 많은 한국 어른들의 기본적인 상태다. 학생 때는 입시, 대학에 가서는 취업, 직장인이 돼서는 고과. 끊임없는 시험과 평가 속에 계속해서 '불안이에'게 제어판을 내어주고 만다. 진로뿐만 아니라 누구랑 연애를 하고 언제 가정을 꾸릴지, 어디서 살고 내 집마련은 어떻게 할지. 평생을 불안과 싸워야만 한다.
'따분'함으로 인생에 거리를 둬서 반포기 하거나, '불안'함으로 원하는 결과를 이루기 위해 아등바등하거나. 어느 쪽이나 '기쁨'이 끼어들 틈은 없다.
그래서 '기쁨이'가 울면서 뱉는 아래의 대사 한 줄이 어른들의 마음에 날아와 꽂힌다.
어른이 되면서 기쁨은 없어지나 봐...
따분함 혹은 불안함, 혹은 다른 감정에 취해 잊고 있었다. 근데 이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맞다, 최근에 기쁨을 느껴본 게 언제였지?
전체관람가 애니메이션 영화 속 클라이맥스인 이 장면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은 공감할 수가 없다. '어른이 되면 저런 일이 생기는구나'라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슬퍼할 이유는 없다. 어른이 되어 본 적이 없으니까. 아마 아이랑 같이 극장에 간 어른이 있다면, 이 장면에서 어른은 울고 아이는 '아빠 왜 울어?'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조금은 부끄러운 경험을 했을 수도 있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느라 기쁨을 잊고 지냈을지 모른다. 하지만 따분함으로 무미건조한 삶을 살다가도, 불안이 우리를 지배하려고 하다가도 가끔은 멈춰야 한다. 멈춰서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의식적으로 미소를 지으며 '기쁨'을 제어판으로 불러내야 한다. 공황장애가 온 순간을 이겨낸 영화 속 라일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