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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깅업 Jul 05. 2024

인사이드 아웃을 보고 컨츄리 음악이 떠오른 건에 대해

영화 <인사이드 아웃 2> 리뷰 #1

<인사이드 아웃 2> 리뷰로 1편과 2편에 대한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춘기', 근데 이제 픽사의 상상력을 곁들인...


<인사이드 아웃 2>는 1편으로부터 2년 후, 13살이 된 라일리를 주인공으로 한다. 13살은 사춘기의 초입이다.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어른이 되어가는 시작점이다. 새로운 감정들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이때부터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하는 새로운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출처: 나무위키 <인사이드 아웃 2>


'자아가 형성된다'는 게 픽사의 상상력을 거치면 어떤 모습일까?


1편에서 가장 중요한 자아의 단위는 '핵심 기억'이었다. 라일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겪는 일에 '감정'들이 관여해서 '기억'을 만든다. 그 기억들 중 라일리를 바꿔놓을 만큼 중요한 기억은 '핵심 기억'이 되어 라일리의 자아를 형성하는 기반이 된다.



2편에서는 그런 중요한 기억들이 '신념 저장소'로 간다. 거기서 기억이 '신념'화 돼서 저장된다. 그리고 그런 '신념'들이 충분히 모이면 다발이 되어 감정통제 본부에서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하는 '자아'의 꽃을 피운다.


출처: https://press.disney.co.uk/gallery/inside-out-2


1편이 감정  기억 까지만을 다뤘다면, 2편은 감정  기억  신념  자아의 관계까지 확장해서 보여준다.


어릴 때까지는 파편화된 기억만으로 충분했지만, 자아를 형성해 가면서 라일리를 이루는 구성 요소들이 더 복잡하고 밀도 높아진다. 기존에 제안했던 설정을 확장해서 '자아가 형성되는 사춘기'를 표현하는 픽사의 상상력은 언제 봐도 놀랍다.


뛰는 '기쁨' 위에 나는 '불안'


'기쁨'이는 라일리를 가장 위하는 감정이다. 하지만 그 방식이 조금 극단적이다.


1편에서는 '기쁨'의 반대편에 있는 '슬픔'이가 라일리한테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해 모든 순간에서 배제시키려 했다. 그러다 보니 슬퍼야 할 때 슬퍼하지 못한 라일리는 결국 다른 감정들로 이를 메우려고 하다 망가져서 가출까지 하게 됐다.


하지만 여러 사건들을 겪고 라일리에게 '슬픔'을 포함한 모든 감정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은 기쁨이는 2편에서는 모두와 조화를 이루며 지낸다. 이전까지는 라일리의 모든 '기억'을 기쁨으로만 채우려고 했지만, 정말 중요한 '핵심 기억'은 여러 감정이 섞인 순간임을 깨닫고 다른 감정들을 존중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기쁨이는 '감정' 자체는 존중하게 되었다. 하지만 모든 '기억'을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는다. 하키 경기 중 반칙을 한 기억이나, 친구의 이름을 까먹은 기억 같은 것들은 라일리를 위해 잊어버리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기쁨이는 이런 감정을 '기억의 저 편'으로 날려 버린다. 그렇게 남은 기억들만 장기기억 도서관으로 보내고, 라일리한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핵심 기억은 '신념 저장소'로 가져가서 신념화시킨다.


출처: https://press.disney.co.uk/gallery/inside-out-2


하지만 라일리한테 하루아침에 사춘기가 찾아오며 새로운 감정들이 생겨난다. '불안', '따분', '부럽', '당황', 그리고 '추억'. 그중에서 '불안'이는 '기쁨'이 보다 더 극단적이다. '따분', '부럽', '당황' 같은 다른 감정들과 합심해서 '기쁨'이와 기존의 감정들에게 "라일리는 이제 컸으니 더 섬세한 감정이 필요해서 너네는 필요 없어"라며 이들을 본부 아래로 유배 보내버린다. 그리고는 불안한 '기억'들을 '신념'화 해서 라일리에게 새로운 불안의 '자아'를 형성해버리기까지 한다.


이제 라일리를 놓아주자


'불안'이 때문에 "난 부족해(I'm not good enough)"라는 자아가 생긴 라일리는 '라일리 답지 않은'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된다.


다른 고등학교에 가게 되어 마지막으로 같은 팀에서 뛰기로 한 베프들과 거리를 두는 건 시작일 뿐이었다. 새로운 친구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베프들과 함께 좋아하는 밴드의 콘서트에서 즐긴 추억에 대해 비아냥 대고, 락커룸에서 마주쳐도 차갑게 대한다. 그리고 하키 경기 중에는 실력을 보여줘야만 한다는 불안감에 자기 팀의 볼을 뺏는 만행까지 저지르고, 나중에는 친구가 다칠 만큼 세게 부딪혀서는 페널티까지 받는다.


이렇게 페널티 박스로 쫓겨나자 계획이 어긋난 '불안'이는 폭주하기 시작한다. 불안함에 일을 그르치고, 이를 수습하려고 더욱더 걱정하고 불안함에 라일리를 몰아붙인다. 그렇게 불안이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라일리는 점점 심장이 뛰고 숨 쉬기가 힘들어진다. 그러다 결국은 제어판 주위로 폭풍이 생길 만큼 정신없이 날뛰는 불안이 때문에 라일리는 더더욱 거친 숨을 몰아쉬고 심장을 부여잡는다. 다른 감정들도 감히 다가갈 수가 없다. '공황발작'이 일어난 거다.


다른 감정들과 함께 본부로 돌아온 '기쁨'이는 겨우 겨우 제어판으로 다가가 '불안'이에게 말한다.


"라일리가 어떤 사람이 될지는
네가 정하는 게 아냐.
불안아... 이제 라일리를 놔줘."


이건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렇게 불안이를 제어판에서 떼어낸 기쁨이는 라일리의 공황발작을 멈추기 위해 다른 감정들과 합심해 '불안'의 자아를 떼어내고 '기쁨'의 자아를 꽂는다. 하지만 그래도 불안함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그때 감정들이 본부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함께 딸려온, '기억의 저 편'으로 날려 보냈던 나쁜 기억들이 신념화 돼서 새로운 '자아'를 형성하는 걸 보게 된다. 이 모습을 보고 기쁨이는 무언가 깨달은 듯 '기쁨'의 자아를 뽑아버린다.


결국 '기억의 저 편'으로 날려졌던 나쁜 기억들이 합쳐서 완전히 새로운 '자아'의 꽃이 피어난다. 그렇게 새로 생겨난 자아는 기뻤다가 슬펐다가, 불안했다가 당황했다가, 버럭 했다가 소심하다. "나는 좋은 사람이야"라는 신념과 "나는 못된 친구야"라는 신념, "나는 이길 수 있어"와 "나는 부족해"라는 신념이 섞여 긍정적인 자아와 부정적인 자아가 모두 어우러진 모습을 보인다.


감정들은 그런 라일리도 사랑하기에, 라일리의 새로운 자아를 인정하며 이후의 일은 라일리가 스스로 풀어갈 수 있도록 믿어준다. 라일리의 감정을 통제해서는 안 되듯이, 라일리의 기억도 통제해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닫게 된다. 모든 감정이 필요한 만큼, 모든 기억도 중요하다.


모든 감정, 모든 기억까지 나였다


출처: '이동진' 평론가 블로그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봤을 '이동진' 평론가의 한 줄 평이다. 이야기의 핵심은 이 한 줄로 요약이 된다. 잊고 싶은 '감정', 지우고 싶은 '기억', 버리고 싶은 '신념', 고치고 싶은 '자아'가 있을 수 있지만 결국은 그 모든 것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것. 동시에 <인사이드 아웃 2>가 '사춘기'라는 소재만 빌렸을 뿐, 사실은 어른들에게도 충분히 닿을 수 있는 이야기라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다소 뜬금없지만, 이 메시지를 보고 떠오른 노래로 이번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내가 인생 노래라고 생각하는 Darius Rucker의 <This>라는 노래다. 뮤비만 봐도 이해가 가는 노래이니 한 번쯤 들어봐 주시면 좋겠다.



Every stoplight I didn't make
Every chance I did or I didn't take
All the nights I went too far
All the girls that broke my heart
All the doors that I had to close
All the things I knew but I didn't know
Thank God for all I missed
'Cause it led me here to this


"나를 멈춰 세운 모든 신호들, 내가 잡았거나 놓친 모든 기회들, 지나치게 달린 밤들과 나에게 상처를 준 모든 여자들. 내가 포기해야 했던 모든 가능성과,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몰랐던 것들. 이 모든 것들을 놓친 것에 너무 감사해. 그 덕분에 '지금 여기' 있으니까."




우리는 살면서 많은 후회를 하고, 아쉬움을 남긴다. 그래서 과거로 돌아가고 싶기도 하고, 과거를 지워 버리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우리 마음대로 안 좋은 기억을 '기억의 저 편'으로 보내 버릴 수도 없고, 자아를 갑자기 갈아 끼울 수도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잊고 싶은 기억도, 우리를 힘들게 했던 감정도, 모두 감사하며 돌아볼 수 있게 하는 멋진 '지금 여기(This)'를 만드는 것뿐이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우리가 현재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으니까.


모든 감정과 모든 기억의 결과가 지금의 나라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다.


하루하루 더 나은 <This>를 만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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