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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깅업 Jul 03. 2024

‘다 잘 될 거야’라는 위로는 제발 그만...

영화 <인사이드 아웃> #2

<인사이드 아웃> 리뷰로 영화에 대한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기쁨이' vs '슬픔이'


<인사이드 아웃> 1편의 주인공은 '기쁨이'와 '슬픔이'다. 각자 긍정적인 감정의 대표, 부정적인 감정의 대표로 둘 모두 우리한테 너무 중요하다.


출처: https://www.imdb.com/title/tt2096673/


재밌는 건 이 두 감정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양 끝에 있으면서도 항상 붙어있다는 점이다. 우유를 먹다 코로 뿜는 재밌는 기억 속에는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다. '비 오는 날'을 떠올릴 때는 장화를 신고 물 웅덩이에서 신나게 뛰어논 기억도 있지만, 혼자 비를 맞으며 추위에 떨던 슬픈 기억도 있다.



영화 초반에 '슬픔이' 때문에 라일리의 기뻤던 기억들이 슬픔으로 물들려고 한다. 그러자 '기쁨이'는 재밌었던 기억들을 이야기하며 슬픔이를 위로한다. 하지만 슬픔이는 같은 기억 속 슬펐던 순간들만 떠올린다. 그러다 끝내 울어버리는 슬픔이한테 기쁨이가 왜 우냐고 묻자, 슬픔이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울면 좀 진정이 돼,
걱정도 좀 줄어들고

"다 잘 될 거야"보다는 "힘들겠다"


영화는 이 말을 단서로 '슬픔'의 중요성에 대해서 계속 얘기한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라일리와의 추억을 상징하는 로켓이 기억의 쓰레기장에 버려져서 우울해하는 빙봉을 슬픔이가 위로해 주는 장면이다.


출처: https://www.kyobostory.co.kr/contents.do?seq=677


길안내를 도와주기로 한 빙봉이 주저앉아서 우울해하자 기쁨이는 '다 잘 될 거야'라는 말을 건네며, 장난을 치면서 위로하려고 한다. 더 깊은 슬픔에 빠져서 탈출이 늦어지기 전에 어떻게든 다시 기쁜 상태로 만들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 효과도 없다.


그때 슬픔이가 다가와서 빙봉의 슬픔에 공감해 준다. 그 모습을 본 기쁨이는 애를 더 슬프게 하면 어떡하냐고 나무라지만, 실컷 슬퍼하며 울고 난 빙봉은 이내 진정이 돼서 다시 길안내를 시작한다.


기쁨으로는 위로가 되지 않던 빙봉이, 슬픔이 덕분에 위로를 받는 걸 보고 기쁨이는 의아해하며 묻는다.


기쁨이: "어떻게 한 거야?"
슬픔이: "나도 몰라. 그냥 슬퍼하길래... 들어준 것뿐인데..."


어설픈 위로보다는 그냥 들어주는 게 도움이 될 때가 많다. 세상이 무너진 듯 슬퍼하는 사람한테 '다 잘 될 거야'라는 말은 무책임하게 들리기까지 한다. 나는 당장 한 치 앞도 안 보일 만큼 슬픈데 잘 될 거라니.


그래서 슬픈 감정이 차올라서 못 참겠을 때는 울어버리는 게 낫다. 떨어지는 감정을 무작정 끌어올리는 것보다, 바닥을 찍고 튀어 오를 수 있게 한없이 떨어지게 두는 것이다. 그러니 '잘 될 거야'라는 기쁨의 언어보다 '힘들겠다'는 슬픔의 언어가 더 힘이 되기도 한다.


기쁨 + 그리움 = 슬픔


'기쁨이'는 '슬픔이'의 다른 면을 보게 되지만, 여전히 라일리에게 안 좋은 영향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본부로의 탈출구를 발견하자 슬픔이를 두고 혼자 돌아가려고 한다. 하지만 탈출구는 무너지고, 기쁨이는 빙봉과 함께 기억의 쓰레기장으로 떨어진다.


출처: https://twitter.com/Animated_Antic/status/1065751374145585152


거기서 기쁨이는 사라질 일만 앞둔 라일리의 오래전 기쁜 기억들을 보게 된다. 과거의 기쁜 기억이 쓰레기장에서 사라져 가는 모습을 보며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이 장면에서 ‘기쁨이’는 처음으로 슬픔을 느낀다.


슬퍼하며 우는 기쁨이의 눈물이 하키 경기 후 친구들에게 헹가래를 받으며 기뻐하는 라일리의 노란 핵심 기억에 떨어진다. 소중한 핵심 기억에 떨어진 눈물을 닦아내자, 기쁜 기억이 담겨 노랗던 핵심 기억이 파랗게 물든다. 그리고 헹가래를 받기 전, 경기 중 마지막 골을 놓쳐 아쉬움에 슬퍼하는 라일리의 모습이 나온다. 혼자 나무 위에서 울고 있던 라일리에게 부모님이 와서 위로해 주고, 곧 친구들이 다가와서 헹가래를 해준다. 기쁨만 담긴 줄 알었던 노란 핵심 기억이 사실은 파란 슬픔 덕분이었던 것이다.


엄마 아빠... 그리고 친구들...
슬픔이 덕분에 도와주러 온 거였어.


그렇게 기쁨이는 슬픔이가 라일리한테 꼭 필요한 존재라는 걸 깨닫고 다시 탈출을 결심한다. 기쁨이가 슬픔을 통해 위로를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통해.


슬픔아, 라일리는 네가 필요해


라일리는 갑작스러운 이사에 대해 슬퍼할 기회를 놓쳤다. 이전보다 훨씬 낡은 집에 짐도 제대로 들이지 못해 화도 나고, 무섭고, 까칠해진다. 갑자기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서 적응도 못하니 두고 온 친구들도 그립다. 하지만 라일리는 항상 집에서는 기쁜 아이니까, 제대로 슬퍼하지도 못한다.


'기쁨이'와 '슬픔이'가 없는 상황에 '버럭이'가 컨트롤 타워를 맡는다. 그리고 라일리가 분노에 차서 고향인 미네소타로 돌아가도록 라일리의 가출을 주도한다. 엄마 지갑에서 훔친 돈으로 구한 표로 라일리는 버스를 타고 혼자 미네소타로 향한다. 그렇게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출처: https://pin.it/2ikVdwhEp


그때 '기쁨이'와 '슬픔이'가 돌아온다. 다른 감정들은 얼른 기쁨이가 나서서 라일리의 기분을 북돋아 버스에서 내리게 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기쁨이는 컨트롤 타워를 슬픔이에게 넘긴다. 항상 기쁜 아이인 라일리의 컨트롤 타워를 한 번도 잡아본 적 없는 슬픔이는 주저하지만, 기쁨이는 "라일리는 네가 필요해"라며 슬픔이를 밀어준다. '기쁨'이 처음으로 '슬픔'에 자리를 내어주는 순간이다.


어린아이가 가출까지 할 정도로 우울한 상태에서 갑자기 기뻐질 수는 없다. 라일리에게는 계속 자신의 슬픔을 마주 볼 기회가 필요했다. '슬픔이'가 컨트롤 타워를 잡자 라일리는 무감정에서 슬픈 감정으로 돌아오고 버스에서 내린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 앞에서 그동안 힘들었던 감정을 모두 털어놓고 울어버린다. 항상 기쁜 아이였던 라일리가 무너지듯 우는 모습을 처음 본 부모님은 잠시 당황하지만, 이내 함께 슬퍼하며 라일리를 꼭 안아준다.


출처: https://disney.fandom.com/wiki/Inside_Out/Gallery?file=Inside-Out-84.png


슬픔이 있어야, 기쁨이 행복이 된다


슬픔이가 컨트롤 타워를 잡은 덕분에 라일리는 모든 슬픔을 털어낼 수 있었고, 사랑하는 가족들의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이 순간 기쁨이는 자신의 역할이 없다고 생각해 한 발 빠져있는다. 하지만 슬픔이가 기쁨이의 손을 잡아끌어 컨트롤 타워 버튼을 함께 누른다. 그러자 서럽게 울던 라일리는 비로소 진정이 되고, 한숨 고르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그렇게 슬픔과 기쁨이 합쳐져서 행복한 기억이라는 빛나는 핵심 구슬이 된다.


라일리처럼, 아이들은 대체로 항상 기쁘다. 슬퍼할 일도, 버럭 할 일도, 소심해질 일도 까칠해질 일도 별로 없다. 부모님이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다른 감정들로부터 막아주고 항상 기쁠 수 있게 노력해 주니까.


하지만 성장하면서 우리는 다른 감정들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여러 감정이 섞여야 오래 남는 핵심 기억이 된다. 어린 시절에 그림을 그리며 놀던 기억은 금세 사라진다. 반면, 펑펑 우는 우리를 사랑해 주고 위로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고 느끼는 기쁨은 평생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어른이 되면 울기 힘들다. ‘다 큰 어른이’ 엉엉 우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들 한다. 하지만 영화는 라일리의 성장을 통해 어른들한테도 위로를 건넨다.


가끔은 마음껏 슬퍼해도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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