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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깅업 Jul 02. 2024

우리를 떠난 빙봉 선생님께 바칩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 #1

<인사이드 아웃> 뿐 아니라 <토이스토리 3>에 대한 스포도 포함하고 있으니 안 보신 분들은 스킵해 주세요!


속편 전 복습은 국룰


<인사이드 아웃 2>를 보기 전에 1편을 복습하려고 다시 봤는데 아예 처음 보는 영화 같았다. 9년 개봉이었으니 사실 당연하다. 기억나는 건 딱 두 가지였다. 좋은 영화였고, 분홍 코끼리 '빙봉' 때문에 무지하게 울었다는 것.


2015년 개봉작 <인사이드 아웃>


명작은 결말을 알고 봐도.


다시 봐도 좋은 영화였고, '빙봉' 때문에 또 펑펑 울었다. 그 대신 기존에는 안 보였던 것들이 보였고, 정리가 안 됐던 메시지가 새롭게 이해가 됐다.


우선 이 작품이 그토록 오래 '좋은 영화'로 기억에 남은 데는 작품 자체의 퀄리티 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퀄리티는 '디테일'에서 나온다.


첫 번째로 인상 깊었던 디테일은 '장기기억'에 대한 파트였다. 영화는 잠에 들 때 오늘 쌓인 기억들이 장기기억으로 간다는 과학적 상식을 기억 구슬이 장기기억 도서관에 보관되는 것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자는 동안 '기억처리반'이 와서 기억을 정리한다.


전화번호는 폰에 다 저장돼 있으니 싹 다 정리하고, 4년 동안 배운 피아노 연주곡 중 '젓가락 행진곡'과 '하트 앤 소울'만 남긴다. 우리나라는 '하트 앤 소울'보다는 '고양이 춤' 이겠지만. 어쨌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를 정말 참신하게 표현한 디테일이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디테일은 다른 인물들의 머릿속을 표현한 장면들이었다. 집 안에서 무게중심을 잡는 진중한 엄마의 컨트롤 타워는 '슬픔'이가 잡고 다혈질인 아빠는 '버럭'이가 잡고 있다. 항상 교통체증에 시달리는 버스 기사의 머릿속에 다섯 개 감정이 모두 있지만 색깔만 다를 뿐 사실 다 '버럭'이다. 고양이의 감정들은 컨트롤 타워에 관심조차 없다.


출처: https://disney.fandom.com/wiki/Inside_Out/Gallery


이런 디테일은 주제의식 전달에 중요하지 않은, 플롯에 별 영향을 주지 않는 씬들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빼도 이야기 전개에 전혀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 사소한 디테일들 덕분에 <인사이드 아웃> 세계관이 더 단단해지고 확장성이 커진다. 제작진이 이렇게까지 깊이 고민한 덕분에, 관객들은 별 고민 없이 <인사이드 아웃>의 세계관에 푹 빠져서 메시지만 전달받게 된다.


그만 좀 울려 빙봉...


다 알고 봤음에도, 빙봉 때문에 또 펑펑 울었다.


출처: https://disney.fandom.com/wiki/Inside_Out/Gallery


빙봉이 기쁨이를 기억의 쓰레기장(Memory Dump)에서 탈출시켜 주기 위해 희생하는 장면은 안 울 수가 없다. 하지만 이 슬픔은 '빙봉'이라는 캐릭터의 스토리 때문이 아니다. 영화는 '빙봉'에게 그렇게까지 공감할만한 서사를 부여해주지는 않는다. 대신 영화는 '빙봉'이 주인공 라일리 안의 '동심'을 의인화한 것임을 분명히 한다. 우리 안에도 한 때 큰 자리를 차지했던 동심이 떠오른다.


빙봉의 희생에서 느끼는 슬픔은 <토이스토리 3>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1995년 <토이스토리> 1편의 '앤디'와 장난감 '우디'는 2편을 거쳐 15년 만인 3편에서 헤어지게 된다. 장난감을 친구로 여길 만큼 어렸던 앤디는 어느덧 대학에 갈 나이가 되었다. 학교에 장난감을 가져갈 수 없는 어른이 되었으니, 그간 함께 했던 장난감 친구들을 동네 꼬마에게 주게 된다. 그러면서 장난감 하나하나에 대해 설명해 주며 자신한테 소중한 친구들이니 잘 대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아쉬움을 안고 떠나는 앤디를 보며, 우디와 친구들은 "잘 가, 파트너"라는 인사를 나지막이 남기고 앤디를 보내준다.



여기서 내 또래의 관객들이 느낀 먹먹함은 단순히 영화 속 등장인물들 간의 이별 때문이 아니었다. 장난감이 베프였던 '앤디'가 '우디'와 헤어지기까지의 15년 사이에, 우리도 어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영화 속 이 장면에서 우디는 떠나는 앤디를 보며 작별 인사를 건네지만, 그 모습을 정면에서 비춰 시선이 관객을 보는 듯 오묘하다. 우리의 동심이 우리한테 작별을 고하는 느낌에 먹먹함이 느껴진다.




어른이 돼서도 동심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어느 순간, 우리는 어른이라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동심을 놓아줘야 한다. 어른스럽게 굴지 않으면 더 큰 어른들이 철들라고 채찍질을 하고, 사회도 얼른 취직, 대출, 결혼 같은 어른의 일들을 하라고 압박을 준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어른이 돼야 한다.


하지만 어른이 된다는 건 한 편으로 슬픈 일이다. 더 이상 철없을 수 없고, 마냥 기쁠 수도 없다. 책임이라는 걸 져야 하고, 그래서 무섭기도 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어렴풋이 느낀다. 어린 시절의 즐거웠던 기억들, 철없던 시절의 추억들이 단단한 행복으로 자리 잡아 어른이 되려는 우리를 받쳐주고 있다는 걸. 시간이 가며 잊히고 사라질지라도, 우리의 앞날을 평생 동안 응원해 줄 거라는 걸.


Take her to the moon for me, okay?
나 대신 달에 데려가 줘, 알았지?

빙봉의 마지막 대사를 듣고, 흐르는 눈물을 멈추기가 힘들었다. 우선 미안했다. 내 안의 동심도 나를 이렇게 응원해 주고 사라졌을 텐데, 나 스스로를 달에 데려가주지 못해서. 그리고 감사했다. 나 같은 게 감히 달에 갈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응원해 줘서.


우리는 어릴 때 말도 안 되는 꿈을 꾼다. 우리의 어릴 때 꿈은 대통령, 과학자, 우주비행사 같은 다소 막연하고 대담한 것들이었다. 그렇지만 어른이 되면서 본인의 능력과 사회적 체면, 주변 사람들의 시선 등을 고려해서 점점 현실적인 목표를 그리게 된다.


하지만 꼭 그래야만 할까. 우리 안의, 사라졌지만 여전히 우리를 응원할 빙봉을 생각하면 달에 데려가주기 위한 노력이라도 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뒤늦게 다시 꿈을 찾아보려고 애쓰는 시점에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새로운 응원을 얻어간다. '빙봉'의 마지막 말에 대한 '기쁨'이의 대답처럼, 이제라도.


I'll try Bing Bong. I promise.
데려갈게, 빙봉. 약속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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