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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깅업 Aug 01. 2024

창작자들이 알아야 할 창의성의 속성

데이비드 이글먼/앤서니 브란트 <창조하는 뇌> 독후감

어쩌다 보니 창의성에 대한 책을 세 권 연속 읽게 됐다. 딱히 목표 의식을 가지고 본 건 아니다. 태생적 맥시멀리스트인 내 책장을 채워주며 먼지만 쌓여가던 책들인데 최근에 자연스럽게 손이 갔을 뿐이다. 요즘 나의 화두가 창의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첫 번째 책은 더 나은 '글쓰기'에 대한 힌트를 얻기 위해 집어든 <누구나 카피라이터>였고, 제법 도움이 됐다. 유감스럽게도 하루아침에 내 글이 잘 쓴 카피처럼 임팩트 있게 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못 쓴 글에 대해 죄책감 정도는 느낄 수 있게 됐다. 작가로서의 양심을 길러준 책이다.



두 번째 책은 더 좋은 '기획'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읽은 <믹스>였다. 전혀 다른 책이지만 큰 맥락에서 <누구나 카피라이터>와 비슷한 내용들이 있는 게 흥미로웠다. '창의성의 비밀'은 거기서 거기인 걸까.



이번에 읽은 <창조하는 뇌>는 글쓰기, 그리고 이를 위한 기획에서 한 단계 더 들어가, 글쓰기 기획을 하는 '뇌'에 대해 이해하려는 목적으로 읽게 됐다. 단 세 권으로 확정 지을 수는 없지만, 여기까지 오니 '창의성의 비밀'은 정말 거기서 거기구나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1)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 결국은 잘 휘고, 쪼개고, 섞는 것.


훗날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창의력은 그저 이것저것을 연결하는 일이다. 창의적인 사람에게 어떻게 그걸 해냈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자신이 실제로 그것을 한 것이 아니라서 약간의 죄의식 같은 걸 느낀다. 그들은 단지 무언가를 봤을 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이 분명해 보이면 여기에 자신의 경험을 연결해 새로운 것으로 합성한다. (51 p)


너무도 유명한 'connect the dots'가 나오는 스탠퍼드 연설 영상 / 출처: 유튜브 채널 <Stanford>


<누구나 카피라이터>에서도, <믹스>에서도 반복적으로 나왔던 개념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으니 많이 참고하고, 많이 베끼고, 많이 훔치라는 것. 이 내용을 책에서는 다음의 한 줄로 간단히 정리하고 있다.


인간의 창의력은 진공 상태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인간은 자신의 경험과 주변 원재료를 토대로 세상을 리모델링한다. (52 p)




나는 아이디어의 소스를 굉장히 따진다. 회의를 하다가 뉴스레터에서 본 내용을 언급한다면 "어피티에서 본 건데요"라고 하거나, 다른 팀원이 말했던 의견을 발전시키는 거라면 "팀장님이 말씀하셨듯이"라고 하는 식으로 굳이 원작자(?)를 언급한다. 이게 그들의 권위를 빌려 내 의견에 공신력을 더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면 좋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태까지는 그저 양심 이슈로 악착같이 원작자를 언급해 왔을 뿐이다.


하지만 위에서 설명하고 있듯, '창의력은 그저 이것저것을 연결하는 일'이며 '진공 상태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물리적으로 그럴 수가 없다. 내 사고를 이루는 언어와 기본 상식들조차 결국은 어딘가에서 보고 배운 것인데, 사고의 '진공 상태'라는 것 자체가 있을 수가 없다.


그러니 결국은 이미 있는, 가능하면 좋은 원재료를 어떻게 나만의 방식으로 요리하는지가 핵심이다. 이미 널리 알려진 원재료라 할지라도, 그걸 변형하고 합성하는 아이디어 자체가 창의성이다. 아래 또카소, 아니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에 대한 설명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피카소는 자기 주변의 원재료를 캐낸 덕분에 자신의 문화를 전인미답의 길로 이끌어갈 수 있었다. 그가 자신에게 영향을 준 것을 찾아냈다고 해서 그의 독창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그의 동료들도 그가 접한 자원을 접했지만 누구도 그 영향을 한데 모아 <아비뇽의 처녀들> 같은 걸작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59 p)


출처: 나무위키 <아비뇽의 처녀들>


2) 양적 증가가 질적 향상으로 이어진다.


피카소는 천재다. 그러니 당시의 동료들 누구나 접한 폴 세잔이나 폴 고갱의 작품들을 보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조합해 내 미술사의 흐름을 바꾸는 <아비뇽의 처녀들> 같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천재이다 보니, 창작을 쉽게 할 것만 같다. 여러 원재료를 접한 후에 손쉽게 엮어내서 단 하나의 걸작을 뚝딱 만들어낼 것 같다. 하지만 사실은 하나의 걸작을 만들기 위해 15점이나 되는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이는 다른 유명 화가들도 마찬가지다.


많은 옵션을 만드는 것은 창의적인 과정의 초석이다. 피카소는 들라크루아의 <알제리의 여인들>을 15점 그렸고,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를 27점,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58점이나 그렸다. (181 p)




'양적 증가가 질적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개념은 당연히 예술 쪽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이쪽 방면으로 아주 유명한 인물은 토마스 에디슨 선생님이다.


출처: https://www.geckoandfly.com/25857/quotes-thomas-edison/


나중에 에디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조금의 과장도 없이 전구를 만들려고 무려 3,000가지 정도의 이론을 만들었다. 하나하나가 나름대로 다 괜찮았고 가장 이상적인 이론처럼 보였다. 그런데 실험 결과 단 2가지만 진짜였다. (중략) 우리의 최대 약점은 포기하는 것이고 성공에 이르는 가장 확실한 길은 한 번 더 시도하는 것이다." (213 p)


어떤 문제에 대해 단 하나의 해결책이 있다고 할지라도,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1400만 개의 경우의 수까지 보지는 못해도 가능한 많은 고민과 시도를 해봐야 한다. 천재 중의 천재인 에디슨도 전구를 만드는 2개의 방법을 찾기 위해 3천 개의 이론을 고민했고, 피카소도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15점의 그림을 그렸다.


수많은 아이디어들 중 버려지는 것들에만 주목하면 시간과 노력의 낭비로 느껴질 수 있다. 그렇지만 애초에 단 하나의 시도에서 최고의 결과가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폭넓은 대안에 투자해야 해결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니 질적 향상은 양적 증가에서 나오며, '많은 옵션을 만드는 것이 창의적인 과정의 초석'임을 믿고 무작정 많이 만들어내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한 가지, 장착해야만 하는 마인드셋이 있다.


3) 실패 없는 성공은 없다.


"나는 실수 없이 배울 수 있는 환경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실패는 먼저 하면 그 대가가 작지만 마지막에 하면 아주 크다." - 구글 연구 개발 부서 X 책임자, 아스트로 텔러 (247 p)


실수는 부끄럽고 실패는 아프다. 둘 다 웬만하면 피하면서 살고 싶은 공포의 대상들이다. 그렇지만 최고의 해결책을 내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도를 해봐야 하고, 그러면 당연히 한 개의 정답 이외의 모든 것들은 실수 혹은 실패가 된다. 창의적이려면 실패는 당연하게 여길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진짜 실패와 상식에 반해 실패처럼 느껴지는 것은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진정한 창의성은 상식을 앞서가기 때문에 상식의 눈으로 보는 대중의 관점에서는 실패로 보인다. <아비뇽의 처녀들> 같은 작품이나, 베게너의 <대륙이동설>도 처음에는 비상식적이라는 평가를 들어야 했다. 하지만 진짜 실패를 거듭하며 만들어진 이 걸작들은 결국 가짜 실패를 이겨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예술계와 과학계를 바꾸며 역사를 새롭게 썼다.


성공하려면 많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한 번 성공하고 나서도 끝이 아니고 계속해서 수정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영원한 성공은 없기 때문이다.


4) 세상은 항상 변한다.


뭐든 돌에 새기듯 고정하지 마라. 지금 잘 통하는 모델도 5년 후에는 통하지 않을 수 있다. 어떤 모델도 절대 영원히 통하지는 않는다. 창의적인 기업은 반복 억제를 피하고 많은 옵션을 만들며 지금 잘 돌아가는 것이 싫증 나기 전에 바꾸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혁신은 틀에 박힌 것을 뒤집는 데서 에너지를 얻는다. (252 p)


15년 전에 학생들의 필수품이었던 PMP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10년 전에 유행하던 노래들은 추억만 자극할 뿐이다. 모든 창작의 과정에서 실패를 겪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장소에 따라 사회적 맥락과 가치가 다르며, 시간에 따라 이마저도 계속 변하기 때문이다. '창의성에는 한계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우리 뇌와 거기서 나오는 결과물은 사회적 맥락의 영향을 받는다. (133 p)'


하나의 정답을 찾기 위해 수많은 실패를 겪어야 하는데, 그렇게 찾아낸 정답마저 다른 문화권으로 가면 통하지 않을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 틀린 것이 될 수 있다니. 이렇게 밸런스 망한 게임도 없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창의적이기가 그만큼 어렵고, 창의성이 그만큼 귀한 것일 테다.




창의성에 관한 세 번째 책, 반복해서 나오는 '창의성의 비밀'은 단순하다.


1. 인풋을 최대화할 것

2. 아웃풋 역시 최대화할 것

3. 언제든 실패가 될 수 있음을 알고, 끝까지 AS 할 것


결국은 학습과 고민의 양이 창의성을 결정한다. 노력하는 만큼 창의적인 결과가 나온다.


창의성의 속성은 (마법)이 아닌, (물리)였다.


출처: 나무위키 <(물리) 드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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