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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깅업 Sep 16. 2024

저작권료 수입 1위 작사가 김이나처럼 쓰는 법

김이나 <보통의 언어들> 독후감

    사람들이 가장 자주, 그리고 반복적으로 접하는 글은 무엇일까? 뇌리에 박혀버린 광고 슬로건이 생각날 수도 있고, 종교인들이라면 경전을 떠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든 가장 익숙하면서 빈번하게 접하는 글의 형태는 노래 가사가 아닐까 싶다. 한 편의 글을 10번 넘게 반복해서 읽을 일은 드물지만, 꽂힌 노래를 수십, 수백 번씩 반복해서 듣는 경험은 누구나 해봤을 테니까.

    처음 수십 번은 멜로디가 좋아서 반복해서 듣다가 천천히 노랫말이 스며들어 곡이 새롭게 다가오는 경우도 있다. 중독성 있는 멜로디뿐이라면 인기를 끌 수는 있지만 오래가지는 못한다. 반면 가사가 공감 가고 울림을 주면 오래가는 것은 물론 뒤늦게 역주행하는 경우도 있다. 보통 '좋은 노래'를 완성하는 것은 가사다.

    특히 노래 가사는 1천 자가 안 되는 짧은 분량 안에서 말맛도 살리고 울림도 줘야 한다. 그래서 '맛깔나게 쓰는 법'을 배우기 위한 책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작사가 중 한 명인 김이나 작사가의 <보통의 언어들>을 보게 됐다.



잘 쓴 글이란, 공감이 되는 글


    김이나 작사가의 에세이를 통해 가사를 잘 쓰는 비결을 배우고 싶었다. 가사를 잘 쓰는 비결이 곧 글을 짧게, 완성도 있게 쓰는 비결일 테니까. 그렇게 읽은 책에서 느낀 가장 중요한 원칙은 '공감'이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공감'을 중심에 두고 쓴 글이다. 누구나 일상적으로 쓰는 '선을 긋다', '속이 보인다', '이상하다' 같은 <보통의 언어들>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감정을 다양한 에피소드와 함께 풀어낸다. 이 표현들을 일상적으로 쓴다는 사실 외에는 공통점이 없을 정도로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작가의 이야기를 보며 많은 공감대를 느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작가가 글을 잘 쓰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공감'이라는 챕터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됐다.


'공감대는 보편적일수록, 테두리가 넓을수록 더 넓힐 수 있다'는 내 통념이 깨지던 순간이었다. (중략) 내가 배운 건, 공감은 오히려 디테일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공감은 기억이 아닌 감정에서 나온다. 즉 상황의 싱크로율이 같지 않더라도, 심지어 전혀 겪지 않은 일이라 해도 디테일한 설명이 사람들의 내밀한 기억을 자극해 같은 종류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것이 바로 공감을 사는 일인 것이다. (<보통의 언어들> / '공감' / 47 p)


    공감은 디테일에서, 그리고 기억이 아닌 감정에서 나온다. 나는 원래 개인적인 소재는 공감이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공감하는 게 에피소드 그 자체가 아니라 에피소드에서 느낀 감정이라면, 소재는 크게 중요하지 않게 된다.

    예를 들어서 내가 써온 QWER 입덕기도, QWER을 좋아하는 사람들한테만 공감을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꼭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무언가가 좋아서 덕질을 해본 경험은 꽤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으니까. 덕질이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응원하고, 그 감정을 실체화시키기 위한 소비를 해본 사람도 많을 테니까. 소재 뒤의 감정을 잘 비추면 충분히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살 수 있다.

    '공감'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책에 나온 아래 한 줄로 정리가 된다. 누군가 어렴풋이 품고 있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있는 작가가 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감정에 대해 누구보다 자세히 이해하는 것이 필수다.


어렴풋이 품고 있는 생각을 누군가 구체적으로 말해줄 때 오는 쾌감이 있다.
(<보통의 언어들> / '기특하다' / 200 p)


비슷한 단어의 미묘한 어감 차이


    '공감'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글을 잘 쓰는 원리에 대한 이야기라면, 작가의 기술적 강점은 '미묘한 어감 차이'를 구별해 내는 데 있다고 느꼈다. 김이나 작사가는 너무 미묘해서 가장 어렴풋한 '어감의 차이'를 디테일하게 구별하고 맛있게 써먹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반짝이다', '빛나다'라는 말이 시각적인 기억을 주로 환기시키는 반면, '찬란하다'는 표현은 내겐 유리조각들이 부딪혀 챙그렁대는 소리가 나는, 공감각적인 그것에 가깝다. 뜨겁게 빛나는 태양보다는, 그 빛이 내리쬐어 물결에 빛나는 모습이 '찬란하다'와 어울리는 것 같다. (<보통의 언어들> / '찬란하다' / 101 p)


    '반짝이다', '빛나다', '찬란하다'는 일상적으로는 대충 유의어로 묶인다. 뉘앙스 차이 때문에 모든 상황에 완벽하게 대체해서 쓸 수 없다는 건 알지만, 그 '뉘앙스 차이'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누군가 물어본다면 설명할 자신은 없다. 차이가 있다는 걸 감각적으로는 아는데, 구체적으로 말하기란 참 어렵다.

    하지만 <보통의 언어들> 책을 보면 작가는 평소에도 이러한 훈련을 계속해왔던 것 같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수십 개의 단어와 표현들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이 10쪽 이내의 글로 정리되어 있다. 이렇게 어감과 그 표현에 대한 감정을 자세히 이해하고 사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500자가 안 되는 제한된 '가사'라는 형식에서 효율적으로 가장 효과적이고 울림이 있는 표현을 써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소란스럽다'는 표현에 대해 쓴 아래의 글도 마찬가지다. '개가 짖는다'는 현상은 동일하지만, '시끄럽게' 짖느냐, '소란스럽게' 짖느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 차이에 대해 명확하게 인식하기는 어렵다.

    김이나 작사가는 그 차이를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역시, "어렴풋이 품고 있는 생각을 누군가 구체적으로 말해줄 때 오는 쾌감이 있다." 이 책에 나오는 <보통의 언어들>에 대해 나만의 방식으로 풀어내보는 것도 좋은 훈련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어떨 때 '시끄럽다', '정신없다'는 표현을 놔두고 '소란스럽다'는 말을 콕 집어 사용할까? 같은 상황을 다른 말로 표현해 보자.
'개가 시끄럽게 짖는다.'
'개가 소란스럽게 짖는다.'
나는 '시끄럽게 짖는 개'는 좀 조용히 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고, '소란스럽게 짖는 개'는 저 개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해지는데, 당신은 어떤 차이가 느껴지는지? (<보통의 언어들> / '소란스럽다' / 118 p)


대중을 상대하는 프로의 세계


    이런 류의 책을 읽을 때 얻게 되는 의외의 수확이 '프로의 세계'에서 느끼는 고민과 현실에 대한 이야기다. 성공한 사람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어떻게 극복하는지에 대해 풀어주는 이야기들이 은근히 흥미롭다.


    하지만 진성 바위게(QWER의 팬덤명)인 나는, 이런 이야기를 보며 자연스럽게 QWER을 떠올렸다. 대중을 상대하는 직업은 밖에서 봤을 때 빛나는 만큼, 그 뒤에 지는 그림자는 더 크고 짙을 수밖에 없다. QWER 멤버들은 각자가 인플루언서 혹은 일본 아이돌로 성공하는 과정에서도, 새로운 이야기를 써나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편견을 상대하며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가고 있다. 계속해서 멋지게 정면돌파 하고 있지만, 이번 선공개곡 <가짜 아이돌>  '울지 않고 아껴둔 힘 모아서'라는 가사처럼 울고 싶은 순간도 정말 많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대중을 상대하는 직업이 받는 '미움'의 크기는 일반인으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들다.

    김이나 작사가는 작사가로서는 특이하게 공인의 삶을 사는 사람이다. 그래서 자신이 느낀 '유명세'에 대해 아래와 같이 풀어놓는다. 직업 특성상 미움을 받는 게 어쩔 수 없다면, '대충 미움받고 확실하게 사랑받는 것'이 정답이라고.


열 명의 사람 중 두세 명에게서 미움을 받는다면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게 백 명, 천 명이 넘어가면 두렵다. 퍼센티지로는 동률이어도 숫자로 세어지는 마음이 미움이다. 살면서 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어느 순간 이에 대한 선택을 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긴 대로 살아야겠다는 것' 말이다. 방송을 하면서부턴 더더욱 그랬다. 어쩔 수 없이 호불호의 평가를 받아야 되는 일을 시작한 이상, 내 방향성은 더 명확해졌다. 그건 바로 대충 미움받고 확실하게 사랑받는 것이다. (<보통의 언어들> / '미움받다' / 24 p)


    당사자들의 역할이 대충 미움받는 것이라면, 그런 프로를 좋아하는 팬들의 역할은 '확실하게 사랑'받게 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의 아래 글이 정말 마음에 와닿았다. QWER 악플러들에 대해 쓴 글의 마지막에 통째로 옮겨 적어야만 했을 만큼.


혹시 악플에 상처받는 이들을 보고 마음이 아파본 적이 있다면, 좀 더 요란스럽게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말들을 써보기를 부탁한다. 그 한마디가 어쩌면 소중한 그 누군가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보통의 언어들> / '비난' / 71 p)





    공인이 되겠다는 꿈은 없지만, 내 글이 더 많은 사람들한테 읽혔으면 하는 소망은 있다. 공감할 수 있는 디테일을 쓰고, 미묘한 어감 차이를 살릴 수 있는 작가가 되면 지금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당연하게도 내 글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생길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한 마인드 컨트롤을 아주 일찍부터 고민해 볼 수 있게 되어 감사했다. 내가 위 글을 접한 후 QWER 콘텐츠들에 보다 적극적으로 선플을 달고 있는 것처럼, 언젠가는 몇 사람이라도 나의 글에 대해 좋은 말을 해주는 사람들이 나타나기를 바랄 뿐이다.


결론은 픽사의 비결도 창의력(물리)


    글을 잘 쓰려면 어렴풋한 감각을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하고, 미묘한 어감 차이도 선명하게 구별해서 쓸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해서 훗날 알려지기라도 하면, 대충 미움받고 확실하게 사랑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거기에 이르기까지 지속하는 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책의 마지막 부분, 김이나 작사가가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한 이야기들을 묶은 챕터가 나온다. 여기서 나온 에피소드 중 하나에서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제작사이자 창의력으로 유명한 '픽사'가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비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작품이든 시작할 땐 다 형편없죠. 매일 하는 회의에서 나오는 아이디어도 사실 대부분은 별로 쓸모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괜찮아요. 계속해서 아이디어를 내고 수정하면서 더 분명한 형태로 진화하니까요."
실제로 픽사에서는 처음 나온 작품의 초안을 대부분 버린대요. 가장 먼저 떠오른 아이디어들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흔한 것들이기 때문이죠. 우리는 그에게 배웁니다. 결국, 완벽한 결과물을 만드는 데 필요한 건 하늘에서 떨어진 능력이 아닌, 열정과 끈기라는 걸요." (<보통의 언어들> / '완벽의 비결' / 222 p)


    내가 여태까지 읽은 '창의력의 비결'에 대해 다룬 여러 권의 책들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개념이 또 나왔다. 창의력은 결국 양에서 질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점이다. 처음부터 완벽하겠다는 건 망상일 뿐이니, '열정과 끈기'로 계속 고민하고 써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글도 정말 오랜만에 쓰는 글이다. 잔잔하게 공유되고 읽힌 <지금이 바로 QWER에 입덕할 때>를 브런치북으로 내고 났더니 더 이상 영감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예 글 쓰는 방법을 까먹었다는 기분마저 들었다. 지금 이 단순한 독후감마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려 겨우 완성하게 됐다. 그만큼 꾸준히 글을 쓴다는 건 쉽지 않다.

    그래도 이렇게 잘 쓰는 작가들로부터 하나씩 배우면서, 훔칠 수 있는 작은 것들이라도 따라 해보면서 계속 써보는 수밖에 없다. 작가로 성공하는 게 아니더라도, 이런 글쓰기 감각은 내 본업에도 큰 도움이 되니까. 어쨌든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최종적으로 지향해야 할 건 하나다.


어렴풋이 느낀 걸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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