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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듀이 Jun 15. 2020

결혼 안 해도 난자동결 한다

미혼난자동결 후기 - 결혼 안했어도 지원은 필요해!


날로 먹을 수 없는 것이 인생이었다.


지난봄, 나는 굉장히 낯선 경험을 했다. 바로 난자를 채취해서 동결한 것. 결혼을 한 것도 아니고 아직은 임신을 원하는 것도 아니지만, 현재의 건강한 난자를 미리 채취해서 얼려두고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 하에 난자 동결을 결심했다.


이를 기록으로 남기고자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서 난자 동결을 진행한 분들의 후기가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혼인 및 난임 판정 여부에 따라 특히 비용적인 면에서도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게되었기 때문. 미혼임에도 난자 동결을 진행하는 것은 출산에의 의지(!)가 있는 것인데, 가임력 보존 절차에 대해 기혼자들에게만 지원을 해주는 것은 너무 아쉬웠다. 누군가에게 아주 작은 도움이라도 되길 바라며 당시 메모장에 적었던 내용들을 복기해 적으려고 한다. 다만, 각자의 상태에 따라 내원 횟수도, 처방되는 주사제도, 주사제의 개수도... 모두 달라질 것이기 때문에 비용과 절차는 천차만별일 거라는걸! 잊지 마세용!



먼저 병원을 선택하는 것이 일이었는데, 사실 난자 동결 시에는 이틀에 한번 꼴로 병원을 가야 하기 때문에 병원의 실력과 더불어 회사와의 거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강남차병원. 강남차병원은 아침 진료 시스템이 잘 되어 있기도 하고, 회사와 10분 거리에 위치한 덕분에 휴가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동결까지의 모든 절차를 진행할 수 있었다.


난자 동결(배아 동결 포함)은 월경과 함께 시작된다고 보면 된다. (생리 시작 후 약 1주일간 과배란 주사를 투여하며 난포가 자라는 상황을 계속해서 지켜보고 채취일을 결정하게 됨) 때문에 생리가 시작하기 전에 미리 어떤 선생님과 진행할지 결정해서 예약을 마치고 미리 상담까지 해두면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에 예약하고 1차 내원했다. (참고 링크: https://chaimc.chamc.co.kr/clinic/fecundity/fecundity.cha)



1차 내원


첫날에는 원무과 접수 후 간호 상담실에서 선상담을 진행하고, 이후 각종 검사(혈액검사, 심전도, 소변검사, 흉부 X-ray 등)를 하게 된다. 나는 사전에 이 절차를 미리 확인하고, 며칠 전 세브란스에서 진행했던 수술 전 검사 결과서를 지참해서 전달했다. 안 그래도 미혼 난자 동결은 비용이 많이 든다는데, 이런 검사비에서라도 중복 지출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방문일이 토요일이라 그런지 대기에만 1시간 넘는 시간이 걸렸다. 초음파 후 담당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했고 난자 동결을 진행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치고 귀가했다. (이날 진료는 보험처리가 가능했다 -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초음파와 진료비를 합쳐 약 7만 원 정도 지출)


2차 내원


대망의 월경 시작 이틀 차에 2차 내원했다. 본격 난자 동결 시작을 위한 준비 검사와 초음파를 동시에 진행했다. 추가 초음파, 혈액검사 및 진료비, 자가 주사비 합해서 약 75만 원. 세브란스에서 진행한 수술 전 검사 결과지를 제출했으나, 혈액 관련 검사는 차병원 추가 검사가 필요하다고 하여 혈액검사 추가로 진행했고, 이때 난소 기능 검사와 C형 간염 관련 검사를 병행했다. 이후 시술 관련 설명 듣고, 자가주사 놓는 법 설명까지 꼼꼼히 듣고 귀가. (아침 1대 저녁 1대, 총 하루 2대의 폴리트롭을 자가주사하는 것으로 처방)


호르몬 주사 때문인지 왠지 모르게 쳐지고, 주사 놓은 곳은 뻐근하고 아프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지 무섭고 걱정되고... 막상 일은 저질렀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해서 굉장히 매우 오지게 우울한 날이었다.


이게 바로 폴리트롭. 한 박스당 주사 하나가 들어있다. 용량별로 색깔이 다르다 75IU, 150IU, 225IU.. 등이 있음!


3차 내원


2차 내원 후 처방받은 과배란 유도 주사를 일정한 시간마다 꾸준히 배에 자가 주사했다. (뱃살을 엄지와 검지로 집고 피하지방에 주사하게 됨) 이 주사들은 효과가 있는지, 난포들은 잘 반응하고 있는지, 너무 많이 자라 일찍 배란되지는 않을지를 살펴보는 날. 다행히 난포들이 양쪽 난소에서 잘 자라고 있었다. 다만 과하게 큰 놈들도 있어 조기 배란이 염려된다고 하시며 조기 배란 억제 주사도 함께 처방해주셨다.


그동안 아침 1대 저녁 1대 자가 주사하면서 멍든 배에 더는 주사할 곳도 없는데, 이제 아침 2대 저녁 1대.. 총하루에 3대씩 주사를 맞아야 한다니 기분이 땅으로 쳐박혔다. 오늘부터는 아침 저녁 과배란 주사와 아침에는 조기 배란 방지 주사 추가. 게다가 조기 배란 방지 주사(오가루트란)는 두배로 아픔...


다음 내원은 3일 뒤, 그때 난자 채취 일자를 정한다고 하셨다.. 또륵

오늘 비용은 약 41만 원. (아침저녁으로 폴리트롭, 아침에는 오가루트란 추가)


날카로운 폴리트롭 바늘에 놀라서 0_0 찍음. 사실 얘가 제일 안 아픈 주사였는데....


3차 내원과 4차 내원 사이..


아침에 일어나 폴리트롭이랑 오가루트란 두 개를 연달아 맞았다. 더는 찌를 곳도 없이 아랫배가 온통 쑤시고 멍들고 난리도 아니다. 주사를 맞기 시작하면서 계속해서 배가 부풀어 올라서 옷 입는데도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라 불편한 정도이다. 배가 살찐 것이 아니라 붓는 것처럼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다.


하루는 진을 완전히 뺐다. 익숙한 폴리트롭 주사하고 오가루트란으로 넘어가는데 웬걸 오가루트란 뚜껑이  열리는  (ㅠㅠ)  플라스틱이 내부 고무패킹을 두고 홀로  빠져버렸다. 다시 뚜껑을 끼우고 살살 돌리고 어르고 달래 뚜껑 뽑고 주사할  있었음... 어휴 식겁할 뻔했다. 주사 값도 값이지만 타이밍  맞추면 헬되는 거라고 익히 들어서 ㅠㅠ... 얼른  모든 과정이 끝났으면 좋겠다... 하루 빨리 호르몬의 노예 생활을 종결하고 싶다... 우울해..


4차 내원


출근 전 아침 진료로 예약했다. 초음파 검사하고 선생님 진료를 봤는데, 난포가 양쪽에서 다 생성되고 있고 최대 n개의 채취가 예상된다고 말씀 주셨다. 과배란 주사와 조기 배란 억제 주사 동시 투여를 이틀 더하고 다음 진료 보는 것으로 하자고 말씀 주셨다. 난자 채취는 6차 내원일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도 알려주심.


오늘부터는 아침에만 주사 2, 폴리트롭225 오가루트란.  25  수납.


5차 내원


진료 전에 최종 초음파 보고 난자가 최소 n개 이상 채취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의견을 들었다. 조기 배란 억제 주사와 채취 36시간 전(꼭 그 시간을 지켜서 맞아야 한다고 5번은 이야기를 해주신!!) 맞는 난포 터지는 주사 처방. 호르몬 검사를 위한 채혈을 하고 주사 맞고 나왔다. 오늘 진료 및 주사비 약 14만 원에 약값 7천 원 별도.


아 드디어 끝나는구나 행복해ㅠㅠ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지긋지긋한 이놈의 호르몬 잔치는 이제 안녕이다 ㅠㅠㅠㅠ 처방받은 바에 따라 저녁 11:20에 알람을 켜 두고 난포 터지는 주사 두 방을 연이어 맞았다. 마지막까지 잘 영글어서 나와줘 my 난자s~!


그간 체중은 3-4kg 증가했고 배가 임신한 것처럼 빵빵하고 묵직해서 무척 힘들다.

얼른 돌아와 줘 내 몸. ㅠㅠㅠ


6차 내원, 채취일


수면 마취를 한다고 해서 휴가를 내고 병원 방문.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시원 섭섭 + 얼른 끝났으면 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회복실에서 수액 맞으며 대기하다가 수술실로 들어가 수면마취를 하고 깨어보니 모든 것이 끝났다. 수술 전에 대바늘로 혈관 잡을 때 혈관이 약해서 다 터져버려 몇 번 다시 주사했던 것이 제일 아팠고, 그 후 모든 절차는 그럭저럭 지나 갈만 했다. (기억이 없으므로^^) 채취가 끝나고 맥박이 안 올라 회복실에서 꽤 오래 누워있던 기억이 난다. 더는 어지럽지 않을 때 일어나서 마무리하고 귀가했다. 이날 지출한 비용 약 230만 원.


귀가 후 많이 쉬었다. 배가 여전히 빵빵해서 힘들었다. (이 빵빵함은 한 10일 정도에 걸쳐 서서히 사그라든다. 그쯤 월경을 하게 되는데.. 극강의 월경통을 맛보게 됨....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1주일 뒤 추가 내원


1주일 뒤 마지막으로 내원해서 채취된 난자의 개수와 상태에 대해 확인하고 5년간 동결보존이 잘 되었다고 설명을 들었다. 여러 가지 주의사항을 듣고 병원 문을 나서면 난자동결절차는 끝!!!!!


수술 전 검사는 타 병원에서 진행했으니 제외하고, 소요된 비용 약 400만 원.


이래저래  2~3주가량 고생을 하게 되었던 난자 동결. 주사 맞는 내내 멍이 많이 들고 배가 부풀어 오르는 신체적인 고생과 더불어 비용적인 지출도 심리적 압박도 있었다. 특히 결혼하지 않았다고 해서 어떠한 지원도 없는 것이 매우 비합리적이라고 느꼈다. 출산율이 낮아 사회적 문제라면서요....?


그래도 해두니 심리적으로 든든하다. 나의 건강하고 어린 난자s가 잘 성숙되어 세상에 나와 안전하게 동결되었다니 왠지 모르게 뿌-듯한 마음이 가득. 하지만 다시 하고 싶지는 않다. 평소에도 우울감이 많은 편이라 그런지, 과정 내내 많이도 우울했기 때문... 차병원, 내 삶에 건강한 난자s가 필요해질 때까지 잘 지켜주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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