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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듀이 Jun 17. 2020

지금은 '쉬어가는 시대'

코로나 시대의 이상하지만 좋은 여유


타인과는 거리두기, 내면과는 안아주기





퇴사라는 상징적이고 기괴한 유행이 우리 사회를 한차례 휩쓸고 떠나갈 무렵, 코로나는 바이러스가 들이닥쳤다. 코로나 초기의 다급함과 공포를 지나고 돌아보니, 부지불식간에 우리는 어느새 '쉬어가는 시대'로 흘러온 것 같다. 지구가 평소보다는 느리게 회전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고, 오후 7시가 훌쩍 지나도 아직 밝은 도로를 보며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고 느끼는 건 기분 탓이겠지만.

나도, 사람들도, 쉬어가는 요즘이다. 외출도 만남도 미뤄가며 너와 나 사이의 거리를 둔다. 무엇이든 "해야 한다", 누구든 "만나야 한다", 혹은 시간을 밀도 있게 "채워야 한다"는 강박에서 한걸음 물러나 주변을 살필 수 있는 시간과 여유를 갖게 된다. 한 번의 약속에도 신중하고, 그만큼 누군가와 만남의 귀함을 피부로 느끼기에 충분하다.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과 함께 집 꾸미기 어플 '오늘의 집'의 다운로드 수가 2배 넘게 증가했고, 가구 유통의 온라인 매출이 20%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그 소식에 오호! 놀라면서 내심 기분 좋아지는 부분이 있다. 다들 평소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자신만의 공간에 체류하며 마음에 숨 돌릴 여유가 생기게 되었을 거라는 짐작. 그러다 보니 집의 구석구석이 눈에 보이고 여러모로 관심이 가게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 덕분이다. 이렇게 쉬어가는 시대에 접어들며 '나'와 나를 둘러싼 공간에 집중할 여유가 생겼는지 모른다. 그렇게, 그런 방식으로, 자신 스스로를 더 잘 살피고 위해주는 게 아닐까. 빡빡한 이 사회를 견뎌가며 정신없이 여기저기로 분산되었던 신경이 오롯이 '나'라는 기준점 안으로 다시 모여드는 것 같아서, 우리에게 그랬던 시간이 자주 오진 않았던 것 같아서, 그래서 반가웠다.

주변에 잠시 쉬는 이들이 많아졌다. 주위의 지인들을 둘러봐도, 평일 낮 카페에 모여든 카공족들을 봐도,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돌려봐도, 평일 오후에 직장에 매여있지 않는 사람들이 확연히 증가한 것 같다. 존버 장인들이 끝내 선택하게 되는 자발적 퇴사, 코로나로 인한 경영악화에 기인하는 비자발적 퇴사, 관광여행업계 장기침체로 인한 무급휴직, 전반적으로 채용시장이 둔화되면서 자연스레 길어진 이직 타이밍 등이 '쉬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생산하고 있다.

어릴 적 자주 불었던 색색의 고무풍선을 떠올려본다. 한번 큰 힘을 들여 크게 불어놓으면 다음번 불 때는 한번 늘려놓은 면적까지 꽤나 쉽게 풍선의 크기를 키울 수 있다. 그 사실은 스스로에게 여유와 힘이 된다. 사람, 돈, 일에 치여 쪼그라든 풍선처럼 정신없이 살다 보면 그 '한 번의 큰 힘'을 쓸 여유를 내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매번 닥치는 일을 벼락치기처럼 치워내기에 급급하다 보면, 다급해진 마음에 문득 뒤를 돌아봤을 때 허망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 허무함은 종종 불안이라는 고점에서 나를 절망의 바닥으로 밀어버리곤 했다. 그래서 나는, 쉬어가는 사람들에게 일말의 여유가 보장될 수 있다는 전제가 있다면 더욱이, 이 휴식의 기류가 조금은 반갑다.

코로나 종식을 위해서 우리들의 작은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강한 연대를 통해 하루빨리 종식을 이뤄내길 바란다.


다만, 사람들이 이 쉬어가는 시대를 정말 잘 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동안 쪼그라들었던 부분이 있으면 충분히 펴내고 부풀게 할 준비를 해가면서. 그렇게 나를 위해주면서, 스스로를 옭매었던 부분이 있다면 조금은 벨트를 풀어가면서, 그렇게 나를 안아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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