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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준 Mar 23. 2019

한국사회의 소수자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양강의 '한국사회의 이해' 과제

 우선 소수자에 대한 정의를 내려야 한다. 소수자는 우선 그 단어 그대로를 보자면 적을 () 셈 () 사람 ()로 적은 수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물론 단순히 규모의 개념으로 소수자를 판단할 수 없다. 사회적 지위와 특권을 갖은 지배집단에 종속되는 집단 역시 소수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럴 때 지배집단보다 빈곤하며 정치적으로 약하고 사회참여가 제한된다는 점을 반드시 생각하여야 한다. 필자는 이러한 기준에 따라 강의시간에 등장한 여성의 경우 소수자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작년 실각한 대통령역시 여성이었으며 현 집권당 대표도 여성이며 사회의 많은 분야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커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따라 여성은 사회적 지위와 특권에서 남성과 동등한 비율로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어느 정도 그 방향성을 보아 소수자로 인정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스트들이 여성을 젠더권력으로 인한 소수자라 주장하지만 우선 필자의 정의에서 여성은 소수자의 영역에서 배재하도록 한다.

 필자는 소수자중 우리가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은 성소수자(LGBT; 同性愛者)라고 생각한다. 성소수자는 여성 동성애자(레즈비언), 남성 동성애자(게이), 양성애자(바이섹슈얼), 생물학적 성과 정신적 성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트랜스젠더)로 구성되어있다. 선천적으로 성적 지향성이 다른 이들은 이성애(異性愛)자에 비해 수적 열세가 되며 실제로 사회에서 인간답게 살 권리를 빼앗기며 차별을 받고 있다.

 이들은 사회에서 많은 차별을 받으며 실제로 놀림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LGBT가 사회에서 차별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사회의 보수성도 있겠지만 우리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기독교의 존재가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물론 모든 기독교가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을 제외한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와 같은 보수 기독교계이다. 이들은 조직적으로 집요하게 성소수자들을 박해하는데 앞장서 왔다.

 그동안 성소수자들은 퀴어축제라고 하는 행사를 통해 성소수자에 대한 홍보를 지속적으로 진행해왔다. 이에 보수 기독교계는 교단의 학교에서 LGBT 동아리(모임) 금지, 퀴어축제 맞불집회, CTS, CBS, 극동방송과 같은 기독교계 매체의 부정적인 보도로 통해 성소주자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았다. 

(<- 퀴어축제)

 최근 대학가에서는 소수자와 연대하려는 노력들이 늘어나고 있다. 학생 사회부터 소수자에 대한 연대를 이어 가고 있다. 소수자에 대한 의식이 부족한 선본이 사퇴하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대학교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이다.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에서는 새롭게 당선된 선거본부에 소수자에 대한 의견을 물어 이를 페이스북에 카드뉴스 형식으로 올린다. 서울대학교 치의학전문대학원(이하 치전원) 선거본부(이하 선본)와 의학전문대학원(이하 의전원) 선본이 이에 대한 답변을 성의 없이 하다 실제로 치전원 선본은 사퇴 의전원 선본은 사과까지 하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기도 하였다. 현재 우리학교에서도 ‘한국외국어대학교 소수자인권위원회 준비모임’이라는 단체가 결성되어 서울캠퍼스 총학생회 산하 생활자치도서관이나 여성주의 모임인 ‘주디’와 함께 미디어커뮤니케이션, LD학부 등 학내 다양한 자치 단체에 소수자인권에 대해 질의하고 있다. 이들의 소수자에 대한 정의는 필자의 의견과 다를 수 있으나 그들의 행동은 충분히 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성소수자의 권리는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과 같아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소수자가 우리사회의 소수자이기 때문에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그들과 같은 위치에서 소통해야한다는 것이다. 퀴어축제에서 등장한 다소 선정적인 성기 모양의 빵은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이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거부감이 있는 게 사실이다. 우리가 성소수자들에게 다가가는 만큼 성소수자도 우리에 맞게 행동해주는 것이 효율적인 캠페인을 위한 필요조건이라 생각한다.  현실적인 요건 속에서 소수자가 원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 쉽지 않다. 아쉽지만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필자는 소수자로 구분하지 않았지만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여성평등 캠페인에 대해 들여다보고자 한다. 페미니스트들은 기울어진 운동장 이론을 가장 많이 말한다. 그들은 이 바탕에 젠더권력(성별로 인해 발생하는 권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젠더권력은 도덕적으로 달리 판단되는 사회기준 이를테면 정조관념, 특정성에 대한 멸시에 주어지는 관용 등이다.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이 사회적 경제적으로 위에 있기에 유리천장, 임금격차가 있으며 범죄 가해자의 비율이 높은 것 역시 기울어진 운동장의 근거로 말한다. 

 페미니즘은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로 우리사회의 큰 화두로 떠올랐다. 당시 가해자가 남성이었고 여성이 피해자였으며 남성 가해자가 여성을 타켓팅하고 범죄를 저지른 것이 화근이었다. 이 사건으로 발생한 논리 역시 기울어진 운동장의 근거가 되었다. [남성->신체 능력의 우위-> 성폭행을 저지를 능력을 가짐-> 잠재적 가해자-> 남성은 반성해야함] 이러한 논리가 생겼으며 당시 남성 페미니스트 사이에는 ‘#저는 잠재적 가해자 입니다.’라는 트위터 운동이 불기도 하였다.     

< 인터넷 갈무리>                      

또 다른 캠페인은 일명 ‘미러링’이라는 것이었다. 극우사이트인 일간베스트의 화법을 거울로 다시 보여주는 듯한 미러링은 그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하여금 자신들이 겪는 고통을 느껴 보라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이는 레디컬 페미니즘(급진적 페미니즘)의 지지자에서 크게 유행하였으며 현재도 이는 지속되고 있다. 디씨인사이드의 메르스 갤러리에서 시작된 메갈리아, 그리고 이에서 분화된 워마드에서 주로 발현되었다. 현재 메갈리아는 더 이상 운영되지 않고 워마드만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조류는 급변해 약자와 소수자도 남자면 멸시해야한다는 주장으로 팽창하기도 하였다. 이는 곧 여성우월주의를 표방했으며 패륜적 언행을 재현했고 성소수자        워마드 홈페이지 갈무리<www.womard.life>         등 약자에 대한 멸시로 이어졌다. 이는 2년전 이야기였다. 워마드만 이렇게 위험한가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 일베, 소라넷, 유머저장소와 같은 극우 사이트에서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이 일상적으로 사용된다. 본래 미러링의 목표가 ‘한남유충 낙태는 에티켓이 아니라 디폴트노’라는 단어의 사용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미러링이 계속될수록 남/녀 사이의 갈등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어떤 소수자 문제가 그러하듯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소수자가 아닌 사람과 함께 연대하여야한다. 하지만 소수자들이 원하는 만큼 변화가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다. 소수자가 아닌 사람들은 이를 역차별로 느끼기 쉽기 때문이다. 이상은 현실과 다르다. 하지만 이상으로 방향성은 유지하여야 한다. 점진적인 접근만이 이상으로의 접근이라 생각한다. 급진적인 것은 워마드 미러링의 사례에서 보았듯 역효과를 불러온다. 변화 속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런 상황속에서 가장 효과적인 것은 대학이 주도적으로 성평등 또는 반 성폭력 교육을 이끌어 나가는 것이다. 고려대학교, 홍익대학교, 부경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대학,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한양대학교, 서강대학교 등 이름을 다 말하기도 벅찰 만큼 많은 대학에서는 성희롱 단톡방이 문제가 되었다. 소수자의 영역을 떠나 이러한 것들을 예방하기 위해 학생자치단체와 학교가 함께 대응해 나가는 것이 좋다. 페이스북에 대학관련 글을 쓰는 ‘하인혜’씨는 다음과 같은 해결책을 제안한다. 학내 소모임에서는 남학생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 교양강의 정도의 깊이감, 교양강의와 학내 소모임을 연계, 닿지 못하는 단위에 대한 지역 여성회, 학내 성평등센터, 여성학 수업연계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교육에서 단순한 피해서사만 나열하거나 어려운 책을 읽게 하여도 사회에 나가서 응용, 실천하지 못한다면 이는 말짱 꽝이라는 것이다. .

 소수자의 권리를 신장시키는 캠페인을 진행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연대자들에게 피로감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이다. 퀴어는 연대자들이 피로를 느껴 실패한 행사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실제로 퀴어 축제에서는 같은 동성애자 역시 피로감을 느낄 정도였다. 또 중요한 것은 소수자의 집단이 이익단체처럼 보이면 안 되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캠페인에는 절대 시위가 포함되면 안 된다. 집단의 목적이 어떠하든 시위는 노동조합과 같은 이익집단이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의사를 피력하는데 사용한다. 시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단순히 더 강한 의사표현 그 이상이 의미를 갖고 있다. 

 지금껏 소수자의 문제가 해결된 배경을 보았을 때 혁명에 가까운 사람들의 열망이 있었을 때 가능했다. 노예해방이 있었을 당시 전쟁이 일어났으며 90년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백 갈등에서 흑인이 정치테러로 9000명 이상 사망했었다. 현재 사회는 이런 일이 반복되기 힘든 구조로 이루어져있다. 다르게 말하면 폭발적인 물리력으로 문제해결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대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국가기구가 존재한다. ‘국가인권위원회’를 잘 활용해야한다. 지난 9년간 보수 정권하에서 인권위의 역할은 매우 한정되어 이를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현 정권에서 임명된 조영선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은 인권위가 성소수자를 비롯한 소수자들 문제에대한 해결해야 한다는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권고 수준에 그치는 인권위원회지만 이를 잘 활용한다면 소수자 인식개선/소수자 인권개선의 시발점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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