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모란디의 세 평 방에서
공중의 정원이 된 길을 걷는다.
서울로 7017. 무성한 초록의 나무들이 길옆을 지키고 있다. 고가도로였다는 과거를 드러내듯 중간에 엘리베이터를 마주친다. 옆으로 시선을 돌리면 아래로 차들이 휙휙 지나다닌다. 차 소리가 아득하게 발밑으로 멀어져 간다. 겹겹이 쌓여있는 도시의 시간을 가로지른다. 차를 신경 쓰지 않고 내딛는 걸음에 리듬이 실린다. 길 끝에 나무 데크로 좁게 난 통로에 이르면 그 전시관에 도착한 것이다.
회현동의 가파른 언덕에 있는 전시관 <피크닉>에서 하나의 사진을 본다. 지인은 이탈리아 볼로냐로 여행을 간다고 했다. 한여름 짙은 태양의 그림자가 드리운 벽돌의 도시를 떠올려본다. '볼로냐에서는 회랑만 따라 걸어도 도시를 탐험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1층에 대리석과 아치로 이루어진 회랑이 40km 넘게 이어지는 그곳. 화가들의 흔적들이 도시 전체를 넘실거리게 하지만, 오직 그 이름 때문에 볼로냐를 택한 것이다.
평생 여행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세 평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렸던 화가 조르주 모란디의 집이 볼로냐에 있다.
직접 살았다는 그 집에 발을 딛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묘미일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도시를 거의 떠나지 않았던 모란디라면 이렇게 내가 사는 곳에서 그 방을 바라보는 것도 꽤 괜찮은 경험이다. 남산을 바라보는 낡고 오래된 전시관에서 한 장의 사진으로 걸려있는 모란디의 작은 방을 가만히 본다.
있을 것만 있는 아주 작은 방. 타일이 깔린 바닥 위로 단출한 침대 하나, 그리고 벽에 바짝 붙여 쌓아 올린 책상과 테이블에는 길쭉한 병들과 바구니, 찻주전자, 페인트통 들이 늘어서있다. 그 작은 공간이 주인이 누구인지를 말해준다. 방에서 평생을 정물화를 그려온 화가. 그 방에 '스틸라이프(still life)'의 리듬이 배어있다.
이 소박한 공간의 테이블 위로 병, 찻주전자, 마른 꽃잎, 붓, 페인트 나이프들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구도를 옮겨보았던 화가의 손길이 있었다. 물건 하나의 결정적 순간을 드러내기 위한 배열을 고르고 또 골랐다. 단순한 형태, 다운되어 있는 모노톤의 색감, 빛의 방향의 변화, 정물 주위의 공간감. 작은 방의 먼지 쌓인 그릇과 병들은 일정했지만, 대신 변주할 수 있는 영역은 확장되었다. 무엇을 보느냐 보다 어떻게 보느냐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 그림을 보고 있으면 고요한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여름 바람이 창가로 들어와 병들 사이를 스쳐가는 순간이 떠오른다. 고독한 묵상에 잠겨있는 사물들처럼 보인다.
모란디의 방의 여행자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것은 먼지이다. 사기, 유리, 금속 같은 각기 다른 재질의 그릇들 의 사람의 손길로 마모된 흔적과 먼지들이 쌓여 독특한 층을 이루고 있다. 시간과 우연이 내려앉은 흔적이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거나 혹은 제거하려고만 했던 먼지가 사물과 만나서 순간과 영원을 동시에 속삭여준다. 사물 위로 쌓여온 시간 그리고 그림으로 태어나는 순간이 마주친 장관이다. 모란디가 지내온 작은 방의 맥락이 그대로 그림에 담겨있다. 병들과 주전자, 그릇의 높낮이에 따라 리듬이 달라지고, 정물의 독특한 질감은 오브제에 집중하게 한다. 군더더기들은 모두 사라지고 고유한 본질만 남는다. 과도한 의미를 피해서 선과 면의 세계로 향한다.
모란디와 같은 고향 볼로냐 출신 학자 움베르트 에코는 전한다.
"모란디의 그림은 척 보기에 똑같은 붉은색이 집집마다 거리마다 미묘하게 다른 볼로냐를 걸어본 다음에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모란디방의 여행자들은 볼로냐의 풍경과 색채를 통과해서 그의 그림에 더욱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먼지의 더께를 감각할 수 있다. 그림 너머의 질감을 만져볼 수 있는 세계다. 모란디가 보낸 시간을 들여다본다.
그런데 왜 모란디는 그렇게 좀처럼 살던 곳을 떠나지 않았을까.
여행이 주는 감흥이 일상의 리듬을 흐트러뜨리는 것으로 바라본 듯하다. 그는 이런 고백을 남겼다.
"2,3일간 전시를 너무 많이 보면 마음에 여진이 남아 힘들다"
모란디처럼 좀처럼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그의 작품은 말을 건넨다. 여행하지 않는 마음이 지어낸 흔들림없는 고요한 세계다. 그림만으로도 충분한 시간이다. 모란디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눈으로 보는 것 이상으로 추상적이고 초현실적인 것은 없다. 물론 물질은 존재하나 자체의 고유한 의미는 없다. 우리는 오직 컵은 컵이며 나무는 나무라는 사실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여행을 좋아하든 아니든, 언제든 떠날 수 있든 그렇지 못하든 우리는 모란디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볼로냐의 작은 방에서도, 혹은 남산의 오래된 전시장에서도 모란디를 각자의 방식으로 볼 수 있다.
어느 쪽이든 다시없을 스틸라이프(strill life)의 세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