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에일린 그레이의 E.1027
연인을 위해 거침없이 별장을 지은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이 세상에 한둘일까 지나칠 수 있겠지만 그가 아니라 그녀가 했다고 하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이따금씩 다큐멘터리로 만들면 흥미롭겠다 싶은 인물의 이야기를 마주치게 되는데 가구 디자이너로 알려진 에일린 그레이(Eileen Gray, 1878~1976)가 그렇다. 아니다 다를까, 벌써 만들어졌다. '아일린 그레이 E.1027'이라는 제목으로 2024년 국내에도 어느 영화제에서 상영된 적이 있다.
에일린 그레이를 알게 된 것은 몇 년 전 어느 사진전에서였다. 프랑스 남부 지중해 해변, 가파른 절벽에 바다를 바라보며 지어진 심플하고 하얀 집. 테라스 공간에 느슨하게 해먹이 걸려있는 그 사진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이 바캉스하우스의 이름이 E.1027. 에일린의 연인이었던 장 바도비치와 서로 이름의 알파벳 순서를 따라 비밀스러운 암호처럼 붙여진 이름이다. 하나의 질문이 고개를 든다. 여성의 입지가 제한적인 건축계에서 과감하게 이런 집을 지을 수 있는 그녀는 누구였을까.
아일랜드의 부유한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난 에일린은 미술을 공부하다 디자인에 매료되어 전공을 바꾸었다. 에일린보다 나중 세대인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도 '페이퍼에만 존재하는 건축가'라는 말까지 들어가며 유리천장을 뚫기까지 온갖 고생을 다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에일린은 남성 중심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돋보이려고 그다지 바둥거리지도 않았다.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힘을 쓰는 대신 하고 싶은 일을 그저 해내는 것에 집중했던 것 같다. 아마도 무지막지한 그녀의 재력 때문인 것으로 분석하지만, 또 재력만 있다고 다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비교적 느슨해 보이는 그녀의 도전이 있었을 것이다.
E.1027은 에일린의 첫 건축물이었다. 회반죽을 바른 벽, 평평한 지붕 같은 모던한 디자인은 지금 보면 익숙한 것이지만 1929년 지어진 당대에는 획기적이었다. 빅토리안 건축 양식이 주도하던 시대에 '1930년대 모던 건축의 선언 같다'라고 평가받는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은 그 집의 길쭉한 창을 보고 당시 사람들은 공장 창문 같다고 지적했다. 에일린의 대답이 그녀의 성격을 드러낸다. "공장 창틀 같은 게 뭐 어때서?"
여기서부터 에일린의 심상치 않은 성격이 감지된다. 예민한 사람들의 경연대회라도 되는 듯한 예술계에서 오히려 비판에 무던할 수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아무리 성격이 좋은 사람이라 해도 자신의 작품에서 흠을 잡는데 초연하기는 어렵다. 뭐 어떠냐고 묻는 것은 정말로 아무렇지 않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그 대답은 그녀의 하나의 디자인철학을 지켜가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디자인만 혁신적인 것이 아니었다. 거장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집은 삶을 위한 기계'라고 정의했을 때, 에일린은 집은 기계가 아닌 삶을 담는 봉투라고 했다. 언제나 불안하고 긴장 상태로 살아갔던 그녀는 E.1027을 '은신처'라고 표현하고 거주를 넘어 취향과 열망, 영혼을 담은 집으로 만들려고 했다. 집의 내부사진을 찾아보니 그녀의 참신한 아이디어가 반영된 가구와 인테리어 인상적이다. 의자는 누워서 해변을 보도록 만들어졌고, 시선에 맞춰 높낮이가 조절되도록 설계한 책상, 바다멍을 할 수 있는 사방이 투명한 공중전화박스 같은 공간, 파티션의 배치나 매끄러운 타일 바닥 등 그녀의 취향과 스타일이 하나하나 드러난다.
해변의 빌라는 그녀의 바람처럼 평온하지만은 못했다. 이 집이 유명해진 것은 유명한 사건 때문이기도 하다. 에일린을 시기한 어느 건축가가 이 집에 들어와 허락도 없이 벽에 낙서를 해버린 것이다. 그 건축가가 르 코르뷔지에라는 사실이 놀랍다. 그녀의 연인 바도비치가 친분이 있던 르 코르뷔지에 부부에게 이 집을 빌려주었는데, 그는 처음에는 찬사를 보냈지만 속으로는 질투를 느꼈던 것이다. (낙서의 과정은 더 적나라한데, 르 코르뷔지에에 대해 너무 실망할까 봐 생략하겠다.) 에일린은 두 말할 것 없이 그와 절연했다.
그렇게 아름다운 건축물을 남겨온 르 코르뷔지에의 방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E.1027 근처에 4평가량의 작은 오두막을 짓고 미니멀리스트처럼 행동한다. 노년의 거장 건축가가 작은 오두막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작품을 구상하는 풍경이 담길만한 집이다. 그리고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그녀의 작품 바로 뒤에 내 오두막을 지었다. 그러자 E.1027도 내 작품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읽는 이들의 판단에 맡겨야겠다. 르 코르뷔지에의 팬들이 많을 텐데 너무 이미지를 무너뜨리는 일이 될까. 영화는 '욕망의 화신'이라는 제목인데 이런 면에서 거장을 다르게 조명한다. 한편으로 그 정도의 욕망과 질투를 가질 만큼 강한 열정이었기에 세기의 거장으로 남았을 것이라고 본다. 생애에서 도덕성을 논하면 자유로울 수 있는 예술가가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보게 된다. 또, 우리가 아는 신화는 후대 사람들의 포장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하지만 에일린 그레이에게는 부당한 일이 분명했다. 아니, 누가 봐도 부당하다. 후에도 이 집은 에일린의 연인 바도비치와 공동으로 건축한 것이라 소문나면서 점차 에일린의 이름은 희미해졌다. 시대를 앞서간 자유로운 도전으로 이루어낸 결과물은 건축사에서 그만한 대가를 받았을까.
로맨스의 시간은 끝났다. 에일린의 연애는 한여름밤의 꿈처럼 지나갔다. 그녀는 그 집을 연인 바도비치에게 주고 떠난다. 이 로맨스가 영화라 해도 이렇게 멋지게 끝날 수 있을 것인가.
로맨스, 스캔들과 해프닝으로 얼룩진 지중해의 그 집 가까이 파도는 변함없이 밀려온다. 에일린 그레이의 시간은 지워지지 않았다.
E.1027 트레일러 중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KZsfiJPBL6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