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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민 케인 May 02. 2021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하여.

인간의 근시안적 태도는 문제가 코앞에 닥치기 전까지는 그 문제를 해결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게으름과 안이함으로 이어졌다. 2000년대 초부터 경고되어온 지구온난화의 재앙은 20년이 지나도록 자본주의의 달콤함에 묵살돼 왔지만, 이제 그 경고는 하나둘씩 현실로 다가오며 세계 곳곳에 이상기후 현상을 일으키고, 인간에게 큰 피해를 끼치고 있다.


더욱 잦아진 태풍과 싸이클론, 가뭄과 홍수, 냉해와 열해, 황충과 전염병 같은 재난은 인간을 생존의 한계로 몰아붙이고 있다. 대부분의 인간은 이러한 재해가 자신의 일이 되기 전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인간은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공유지의 비극은 이기적인 인간이 얼마나 공동의 자산에 대해 무관심할 수 있는지 잘 드러내 주는 이야기다. 현재의 기후위기 또한 인류 전체가 이것을 위기라고 인식하기까지 20여 년이 걸렸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알아차렸을 때에는 이미 상당히 늦어있었다. 심지어 여전히 특정 국가들은 개의치 않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런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우리에게 가장 와 닿는 위기인 기후위기조차 깨닫는 데에 20여 년이 넘게 걸린다면, 인간은 대체 어떤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물이란 말인가?


사실, 우리에게 닥친 위기의 근본은 자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위기의 근본은 바로 우리의 삶에 우리 스스로가 통제력을 잃어버렸다는 데에 있다. 우리의 삶, 우리가 생산하고 소비하는 ,  모든 과정은 사실 지구를 착취하는 것이다. 우리가 필요한 무기물, 유기물 등을 지구에서 획득하기 때문이다. 과거 가장 찬란했던 바빌론조차 수세기간 지속된 농업으로 지력이 소모되어 결국 멸망해버렸다. 이처럼 생산과 소비가 지속적이지 못하고 통제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이어질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근대의 가장 위대한 발명이 화학비료인 이유는 바로 농업을 토양을 착취하는 것에서 지속 가능한 것으로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인류는 지력을 소모하는 것을 최소화하며 농업을 지속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지속가능성이 다른 분야에서는 고려되지 않은 것에 있었다.


식량문제는 그 지속성 가능성이 생존에 직결된 문제였기에 언제나 인류의 최대 관심사였지만, 그것이 생존의 문제를 넘어 상품의 생산과 소비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될 때에 사람들은 그 지속성보다 수익성을 좇게 되었다. 따라서 지속 가능한 식량공급으로 인구는 끝없이 증가하였고, 지속 가능하지 않은 상품의 생산과 소비로 지구는 끝없이 착취되었다. 이런 문제를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쓰레기 문제이다. 가장 가까이서 확인할 수 있지만, 당장 눈 앞에 보이지 않기에 무시되어왔다.


이렇게 지속 불가능한 삶을 영위하는 인구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지구가 착취되는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질 것이며, 결국 인류는 바빌론의 역사를 뒤따를 것이다. 이것을 막기 위해서는 결국 세계 인구를 통제하거나, 아니면 상품 생산과 소비를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만드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세계 인구를 통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번식 욕구와 같은 본능을 통제한다는 것은 많은 반발을 얻을 것이고, 제대로 이행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보다 상품의 생산과 소비를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 훨씬 가능성 있고 효율적이다. 특히, 소비를 통제하는 것보다도 생산을 통제하는 것이 훨씬 간단하고 효과가 크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80억 소비자에게 지속 가능한 소비를 하라고 설득하는 것이 간단하겠는가, 혹은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의 생산을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규제하는 것이 간단하겠는가?


그럼에도 여전히 대부분의 국가들이 지속 가능한 소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이유는 인간의 근시안적 태도 때문이다. 상품의 생산을 통제한다면 경쟁에서 뒤처질 것이라는 생각과, 어차피 지구에 쓰레기를 버릴 곳은 많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멍청한 생각은 점차 우리의 목을 죄어오고 있다. 지구온난화의 경고를 무시했던 20여 년 전처럼, 이제 우리는 쓰레기의 경고를 듣지 못한 채 하고 있는 것인가?


수산물에 포함된 미세 플라스틱의 양은 점점 많아지고 있으며, 쓰레기 매립지의 악취는 이제 우리의 삶의 공간까지 침범하려 한다. 사람들은 수백 년간 썩지 않는 플라스틱, 비닐, 스티로폼을 하루에 수백만 톤씩 만들고, 사용하고, 버리면서도 핵폐기물에 더 관심을 가진다. 우리가 이것을 심각한 위기로 인식하기 시작할 때에는 이미 늦어버렸다는 신호가 될 것인데, 인간은 여전히 경쟁과 이익을 논하며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 이것은 명백한 인류의 실패이며, 후세의 조롱거리가 될 것이니 슬프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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