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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민 케인 Jul 28. 2021

인구감소의 미래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가.

한국의 인구감소 문제는 20여 년 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었던 문제이지만 해결되기는커녕 점차 악화되기만 하였다. 그 결과 한국은 전 세계 최저 출산율을 기록하였고(출처: https://mnews.joins.com/amparticle/23564231), 현재도 상황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급속도로 붕괴되는 인구구조는 이미 출산율을 평균치 이상으로 끌어올린다 한들 막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인구절벽과 인구 소멸은 우리가 마주하게 될 현실이 되었다.


저출산을 극복하겠다고 여러 가지 정책을 내보았지만 번번이 실패만 맛보아온 한국의 상황에서 저출산 극복은 사실 닿을 수 없는 신기루를 좇았던 것이 아닌가 한다. 비혼 문화와 화려한 싱글이라는 패러다임의 변화로 일어난 현상을, 단순히 "돈"이 없어서 발생한 것이라 착각하여 무의미한 현금 살포에만 집중한 것이 아닐까? 만일 출산에 있어 돈이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이었다면 전쟁국가보다 출산율이 낮은 상황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또한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출산율이 낮아진다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발견도 아니다. 그 어떤 선진국도 현금 살포를 통해 출산율을 끌어올리지 못하였다.


선진국 출산율 증가의 모범사례로 꼽히는 프랑스의 경우 사실 그 비결은 옛 식민지 인구와 난민의 유입이었고, 그 결과 마린 르펜과 같은 기독교계 백인들의 반발이 심해지며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백인 없는 프랑스 축구대표팀을 보며 우스갯소리로 아프리카팀이라고 하는 것을 보며, 과연 저것이 출산율 증가의 "모범사례"인가 의심해볼 수밖에 없다. 이는 미국 또한 마찬가지로, 히스패닉계 이민자들의 꾸준한 유입을 통해 인구구조를 지탱하고 있을 뿐이고, 이런 인구구조의 갈등 속에서 트럼프를 중심으로 한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가 Make America Great Again을 외치며 백인 중심이었던 과거의 미국을 되찾고자 한 것이다.


이 모든 증거들이 출산율에 있어 돈은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계 합계출산율 데이터를 보면 그것이 명확하게 드러나는데, 기대수명이 길수록,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그리고 종교적 영향력이 적을수록 출산율이 내려간다. 한국은 공교롭게도 이 모든 조건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데, 한국의 기대수명은 전 세계 2위이며(출처: https://ko.m.wikipedia.org/wiki/%EA%B8%B0%EB%8C%80%EC%88%98%EB%AA%85%EC%88%9C_%EB%82%98%EB%9D%BC_%EB%AA%A9%EB%A1%9D), 소득 수준은 세계 10위이며(출처: https://www.yna.co.kr/view/AKR20210111158500002), 교육 수준은 OECD 2위이며(출처: https://www.yna.co.kr/view/AKR20201231120000530), 무신론자 비율은 세계 12위이다(출처: https://mnews.joins.com/amparticle/17607771).


이처럼 한국은 저출산을 이루기에 이상적인 사회구조를 지니고 있다. 고도의 압축성장 과정에서 출산 통제를 통해 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아졌으며, 소득과 기대수명이 폭증하며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풍조가 높아졌고, 무신론자의 비율이 높아지며 가족에 대한 의무가 줄어들었다. 출산의 중심이 여성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여성의 권리 신장이라는 현대의 패러다임은 여성에게 엄청난 페널티를 부과하는 출산을 기피하도록 만들었고, 교육 수준이 높은 여성일수록 결혼과 출산을 피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뻔한 이야기를 길게도 적어놨지만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저출산은 정치가들이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글로벌 시대에서 문화란 일개 정부의 정책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고, 그 흐름을 돈으로 바꾸려는 것은 재정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좋은 정치라고 한다면, 좋은 정치는 저출산 극복을 위해 돈을 뿌리자는 단순 무식한 주장을 하지 않아야 한다. 오히려 저출산 시대를 인정하고, 이것이 일으킬 시대적 격변을 대비하여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저출산으로 발생할 문제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파악하고 출산율을 증가시킨다는 무의미한 대책 이외에 다른 방법은 뭐가 있는지 논의해야 한다. 


저출산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큰 이유는 소비인구의 감소와 그로 인한 물가 하락, 디플레이션의 발생이다. 노동인구의 감소는 사실 큰 문제가 아니다. 현재에도 일자리 미스매치가 심각한 상황이고, 인구가 많아질수록 일자리 부족은 심화되면 되었지 개선될 문제가 아니다. 일자리가 없더라도 소비만 가능하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건 코로나 시대의 미국이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과는 다른 경제상황에 놓여있다. 기축통화국이 아니므로 무제한 소비는 불가능하고, 무역에 의존하므로 통화의 균형도 고려해야 한다.


이것을 가장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에너지의 비용을 0에 수렴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경제는 곧 에너지이기에, 에너지의 비용이 0에 수렴한다는 것은 경제의 무제한 성장을 의미한다. 인구구조와 무역 중심의 경제를 초월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기축통화의 지위를 획득한다는 것과 같다. 외부 구조를 고려할 필요 없이 소비만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달성된다면 출산율은 고민할 문제가 아니고 자연스레 시간에 맡기면 해결될 흐름에 불과해진다.


두 번째 방법은 노화의 극복과 노화를 되돌리는 기술의 개발이다. 노화로 사망하는 인구를 제거하여 적은 출산율로도 조금씩 경제활동인구가 증가하도록 만든다면 오히려 낮은 출산율은 축복이 된다. 노화로 죽는 이 가 없다는 말은 곧 부모와 자식이 잠재적인 경쟁자가 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물론 에너지가 무제한이 된다면 이것은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테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자식은 부모세대에 경제적으로 종속되는 형태가 지속될 것이므로 커다란 사회적 갈등으로 발전할 것이다. 따라서 낮은 출산율은 갈등 요소가 적음을 의미하고, 한국은 노화 극복 시대를 가장 잘 적응하는 국가가 될 것이다.


세 번째 방법은 노인인구를 인위적으로 제거하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생산성도 없고 소비력도 낮은 노년인구는 에너지의 제약이 있고 노화가 극복되기 이전의 상황에서는 경제적으로 무조건적인 마이너스 요소이다. 따라서 이들을 인위적으로 제거하여 연금의 고갈 속도를 늦추고, 적은 출산율을 높은 사망률로 보완한다면 낮은 출산율로 인한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다. 그러나 윤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이런 방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네 번째 방법은 이민자격을 완화하고 복수국적을 허용하여 해외동포와 외국인을 한국경제에 편입시키는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국가들은 이런 방식을 통해 저출산을 극복하고 있는데, 외부의 인구를 수입하는 방식은 결과적으로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게 된다. 다인종 정책은 유효할지 모르나, 다문화 정책은 근본적으로 갈등을 내포한 것이다. 로마에 오면 이 로마법을 따르라는 격언이 무너지고, 사회의 규범이 다문화라는 이름에 의해 희석되는 순간 국가의 정체성은 무너질 것인데, 이것이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위의 네 가지 주요한 방법을 고려해볼 때, 우리가 가장 이상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해결법은 첫 번째와 두 번째 것으로, 기술의 발전을 통해서 상황을 극복할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세 번째 네 번째의 것은 정치적인 방안으로, 희생과 갈등을 강요하는 방식이다. 인간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우리가 고통받아왔던 많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한 것은 정치가 아닌 기술의 발전에서 촉발된 것이었다. 기아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는 출산을 제한하는 방식을 사용하였지만, 인류를 만성적인 기아에서 구원한 것은 하버 보슈의 질소 고정법에서 비롯된 화학비료였다. 전염병 사태에서 정치는 격리와 추방밖에 하지 못했지만, 콜레라와 페스트, 수두와 같은 전염병의 공포에서 인류를 구원한 것은 백신과 치료제의 개발이었다.


이처럼 저출산 문제에서 한국을 구원할 것은 정치가 아닌 기술의 발전일 것이며, 훌륭한 정치란 기술의 발전을 지원함으로써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의 정치가 이 사실을 되도록이면 빨리 깨닫고서 어처구니없는 양의 예산을 저출산 극복을 위한 현금 살포에 낭비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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