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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민 케인 Jun 06. 2021

복지는 어떻게 설계되어야 하나.

경제가 곧 에너지라는 사실은 이전의 글에서 설명한 바 있다. 경제는 에너지를 이용한 가치의 창출이며, 되먹임 과정을 통하여 이를 확장해가는 과정이다. 따라서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창출된 가치를 소비와 재투자의 영역으로 분리하여 관리할 필요가 있다.


만일 경제를 관리하는 자가 에너지를 모두 소비하는 데에 써버린다면 되먹임 과정은 멈추어 경제의 불씨는 꺼질 것이고, 에너지를 모두 되먹임 과정에 집어넣는다면 굶주림에 자멸할 것이다. 경제를 현명하게 관리하는 것은 바로 이 가운데 균형을 찾는 것에 있다.


특히나 구성원에게 투자가 아닌 소비의 개념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 가족과 국가의 경우 이런 균형점을 찾는 것이 거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여기서 말하는 기업은 개인사업자를 포함한 이들을 포함한다)의 경우 투자가치가 없는 구성원은 해고라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할 수 있지만, 가족과 국가는 구성원을 그런 식으로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라는 집단은 필연적으로 성장성이 기업에 비하여 뒤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이것이 자본주의가 진행됨에 따라 국가의 경제가 기업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때문에 국가는 사회의 무력을 독점함으로써 기업의 부를 통제하고, 그 독립성을 제한하는 형태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역할을 하는 군사집단이 외부의 침탈로부터 부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며 기업활동의 안전을 보장하는 역할로 발전한 것이다. 즉 자본주의 국가에서 가치의 소비는 국가가, 가치의 창출은 기업이 하는 것으로 역할이 분담되었다.


국가는 기업으로부터 세금을 거두어 자신의 몫을 정한다. 그리고 이 몫은 위에서 말했듯이 에너지의 되먹임이 멈추지 않는 선에서 정해져야 한다. 에너지의 순환 자체를 망가뜨릴 정도의 세금이 거두어진다면 경제는 멈추게 되고, 시체 위에서 구더기들이 들끓는 것처럼 남은 몫을 위한 피의 항쟁이 시작된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너무 적은 양의 세금이 거두어진다면 국가는 존립의 정당성을 잃고 기업에 종속되어 버린다. 기업에 종속된 국가는 구성원을 구조 조정하며 자신의 몸집을 키우고, 약육강식의 정글에 아이들조차 먹이로 내던지는 잔인함을 보인다.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국가의 세금은 구성원에게 생존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복지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복지는 태생적으로 투자의 개념이 아닌 소비의 개념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복지를 통해 경제발전을 이루겠다는 말은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한들 그것은 이미 효율면에서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효율은 기업의 역할이고, 세금은 효율의 개념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사용되기 위해 거두어지는 것이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구분은 엄격히 지켜질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기업이 국가의 역할을 탐하고, 국가가 기업의 역할을 탐한다면 가치 창출과 소비, 그리고 재투자라는 순환의 고리가 모호해지고 결국 앞서 설명한 실패의 사례를 재현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만일 어떤 정부가 세금을 이용하여 경제를 발전시키겠다는 논리를 펼친다면 반드시 그 세금의 출처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인 효율로는 이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이야기이지만, 미래의 가치를 당겨 쓴다면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금을 통해 경제를 발전시키는 정부는 언제나 빚을 지게 되며, 이것이 지속된다면 끝내 파멸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복지의 역할이 최소한의 생존의 보장이라는 데에 동의한다면 다음 문제는 그 최소한도가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보장받는 집단은 어떻게 선정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자연이 아닌 사회에서의 생존의 최소 조건을 어떻게 합의할 수 있을 것인가? 또한 어느 수준부터가 혜택을 받을 만큼 불우하다고 생각될 수 있을까? 이것은 복지 자체만큼이나 중요한 질문이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박탈감이며, 가장 즐기는 것은 특권의식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은 시기하고, 자신이 가진 것은 남들은 가질 수 없도록 하려는 인간의 속성은 복지를 설계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문제이다.


먼저 보장 집단의 선정에 대한 것이다. 선별식 복지를 택한다면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이 바로 혜택을 받을 집단과 각각에 배분되는 자원의 비율이다. 이것을 공정하게 설정하기 위해서는 자산과 소득의 규모를 정확히 추적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정확히 추적하지 못한다면 자산이 많음에도 소득이 적다는 이유로 복지혜택의 수혜자가 될 수 있고, 이것은 공정성 시비를 일으킬 가능성이 생긴다. 이것을 정확하게 추적하기 위해선 개개인의 모든 거래내역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하며, 소지하고 있는 모든 물품에 대한 가치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고, 모든 계좌가 실명으로 전환된 지금도 비자금을 추적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에서 비추어 볼 때 매우 비현실적이고 효율이 낮은 것이다. 


물론 이것을 제대로 추적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은 현재의 세금 시스템 또한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현재의 세금 시스템 또한 선별적으로, 차등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소득이 투명하게 잡히는 직장인들에게 비자금을 형성한 사업자들의 세금이 가중되는 형태가 되어버린다. 이것은 세금의 공정성을 크게 해치는 것이고 세금 납부에 대한 의욕을 저하시킨다. 따라서 세금과 복지는 보편성을 지니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공정한 것이다. 단일 기준으로 전체에 적용되는 것에는 공정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오기 어렵다. 또한 세금이 누진적으로 증가하지 않는다면 높은 수수료를 부담하면서까지 비자금을 형성할 동기가 줄어들 것이고, 결과적으로 세금 납부를 더욱 공정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소한의 생존은 어떤 기준으로 설정할 수 있을까? 보편적으로 이것은 의, 식, 주로 대표되어온 것으로, 매슬로우의 욕구 위계 이론에서 생리적 욕구에 해당하는 것들로 여겨진다. 인간의 물리적인 생존과 안녕이 가장 우선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경제의 영역으로 넘어올 때 생겨난다. 


의, 식, 주는 그것이 가장 기본적인 만큼 가장 다양한 취향을 반영한다. 예컨대, 채식주의자가 굶는다고 해서 그에게 고기를 주는 것이 복지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복지가 아닌 시혜이다. 시혜는 도움을 받는 자가 아닌 도움을 주는 자의 만족을 위한 행위이다. 때문에 이것은 같은 자원을 사용하였을 때 최대의 만족을 추구하여야 한다는 공리의 원칙에 위배된다. 시혜에 개인의 자산을 사용한다면 문제 될 여지가 없지만 세금을 이용하는 복지에서는 이러한 사소한 디테일이 커다란 불만을 야기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때문에 복지는 현물로 제공되는 것이 아닌 화폐로 지급되어야 한다. 화폐의 형태로 정제되어야 복지는 모두에게 공정하고 만족스럽게 제공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급되는 금액은 어떻게 책정되어야 할까? 현재 각 국가에서는 자국의 물가를 고려하여 최저생계비라는 것을 책정한다. 그러나 최저생계비를 계산하는 기준으로 물가를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방식이다. 왜냐하면 물가를 기준으로 최저생계비를 구하는 것은 실상 삶에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정하는 것을 공무원의 손에 맡기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겐 하등 필요 없는 것이 공무원의 시선에서는 최소한의 필요라고 느껴질 수도 있고, 이것은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더욱 공정하고 논쟁의 여지가 없는 기준이 필요한 것이다.


예컨대 국가의 중위소득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중간계층의 소득이다. 대개의 중위소득은 국가가 창출할 수 있는 가치의 평균치에 도달하기 때문에 빈곤과는 거리가 멀다. 만일 특정 국가의 중위소득이 빈곤을 벗어날 수 없는 수준이라면 그 국가는 이미 실패한 것이고, 파산을 선고받은 것으로서 복지를 기대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따라서 복지를 고려할 수 있는 여건의 국가들 중에서 중위계층의 소득은 중산층으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 있으며, 이들의 소득을 기준으로 복지 급여를 책정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합당한 귀결이 될 것이다. 


예컨대 중위계층의 한 달 소득의 8%를 매달 지급한다면 1년간 총합하여 중위계층의 한 달 소득을 지급받는 셈이 된다. 한국을 참고한다면 한국의 1인 가구 기준 중위소득은 2020년 1,757,194원이다. 즉 1인이 1년간 받는 총 복지비용이 1,757,194원이 된다는 것인데, 이는 한국의 2019년 노인 1인당 복지 비용이 연간 1,808,331원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적절한 수준이라 판단된다.


이것이 현금으로 개개인 모두에게 지급된다고 할 때, 5161만 인구 기준 연 90조 6887억 원의 예산이 소요된다. 현재 복지비용이 2020년 기준 총합 182조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약 절반의 예산으로 집행이 가능한 것이다. 또는 182조로 1인당 연간 3,514,388원을 지급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정도의 복지급여는 4인 가족 기준 연간 14,057,552원이라는 상당한 규모이다. 대신 기존의 복지 혜택은 이러한 복지급여로 일원화하여 소비를 효율화하고, 구성원 개개인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이 지속적인 경제발전에 적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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