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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앤 Oct 26. 2023

유치원 가기싫어증

"엄마, 유치원 가기 싫어."

"엄마, 나 오늘 유치원 안 갈래."

"엄마, 나 유치원 안 보내겠다고 약속해."

아... 또 도졌구나, 유치원가기싫어증. 

이번엔 또 무슨 일이니...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꽉 막혀오는 느낌이 든다. 

"왜 유치원 가기 싫어?"

"몰라, 그냥 가기 싫어."

"왜, 친구랑 무슨 일 있었어? 아니면 선생님이랑?"

"아니, 그런 건 아냐."

"그럼 왜 유치원 가기 싫은데?"

"유치원 가기 싫어어."

"휴, 알았어. 유치원 가지 마."

그래도 일단 유치원 가방도 싸고 아이 옷도 제대로 입힌다. 혹시나 마음이 바뀌어서 유치원 간다고 할지도 모르니까. 그러면서 내 마음 속에선 이런 문장들이 떠오르고 있다.




 어렸을 때 내가 학교에 가기 싫은 티를 내는 날이면 엄마는 얼마나 아프냐고 물었다. 진짜로 아픈 날에나 가짜로 아픈 날에나 나는 꼭 진짜로 아프다고 말했다. 엄마는 그럼 꼭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걸어주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 슬아 엄마예요. 건강하세요? 네. 네에. 다름이 아니라 슬아가 어젯밤부터 토하고 설사를 해서 몸 상태가 말이 아니네요. 오늘은 학교에 못 보낼 것 같아서 전화드렸어요......" 
 그리고 엄마는 선생님과 다정하게 몇 마디를 더 주고받은 뒤 걱정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끊고 나서 나를 꼭 안아주며 물었다. 
 "오징어 넣고 부침개 부쳐 먹을까?" 
 나는 함박웃음을 숨기느라 애써야 했다. 엄마의 세상 속에서 평생 살았으면 했다. 

이슬아,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문학동네, pp86-87



하... 나도 기꺼이 이런 엄마가 될 수 있다면 좋을텐데. 현실은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하는 아이가 야속하게 느껴질 뿐이다. 

이제 여섯 살이니 손이 많이 가지 않아서 하루쯤 집에 있어도 괜찮다고, 엄마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 내일은 유치원가기싫어증이 다 나을 거라고 머리는 말하는데, 가슴은 고장난 것처럼 갑갑해 온다. 

자, 일단 둘째라도 어린이집에 보내자. 

다같이 집을 나선다. '나도 어린이집 안 갈래' 를 시전하던 둘째는 어린이집에 가까이 오니 순순히 들어간다. 

"유치원으로 갈까? 집으로 갈까?"

"집으로."

아... 혹시나 했는데... 

집으로 간다. 차 안에선 침묵이 흐른다. 엄마가 못마땅해 하는 걸 아이도 느끼고 있다. 하지만 고집을 꺾지 않겠다는 의지가 침묵 속에 담겨 있다. 

집에 왔다. 여전히 침묵 속에서 빨래를 널고, 설거지를 시작하려다 아이에게 다시 묻는다. 

"엄마는 집에서 해야할 일들이 있어서 현이랑 계속 놀아줄 수 없는데, 심심하지 않아?"

다가가서 아이를 안는다. 둘째가 없어서 방해하는 사람이 없다. 아이가 울음을 터뜨린다.

"유치원 가는 게 힘들어?"

끄덕끄덕.

"유치원에서 무슨 일 있었던 건 아닌데 그냥 유치원에 가는 게 힘든 기분이야?"

끄덕끄덕.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지내는 게 힘들어?"

끄덕끄덕.

"집에서 쉬면서 엄마랑 놀고 싶은데 유치원 가야 돼서 속상해?"

끄덕끄덕. 

아이 눈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진다. 

얼마 전 유치원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에서 선생님은 현이가 유치원에서 너무나 잘 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선생님 말씀에 잘 따르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크게 갈등이나 문제를 일으키는 일 없이 잘 지내며, 유치원 규칙도 잘 지키고 스스로 잘 해내는 아이라고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기특하면서도 아이가 사회생활을 하며 자기 본성을 억누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는 성질을 있는대로 부리는데, 유치원에서는 그렇게 얌전하다니 스트레스를 받을 만도 하다. 

아이는 엄마 품에서 한참을 울고 끄덕이더니 이제 유치원에 가겠다고 했다. 

"오늘은 엄마가 일찍 데리러 갈까?"

"응, 오후 간식 먹고 바로 와."

"알았어. 엄마가 선생님한테 오후 간식 먹고 나면 몇 시인지 물어볼게."

선생님께 문자로 오늘 지각하게 된 이유를 말씀드리고 10시가 좀 넘어 등원했다. 다정하고 사려깊으신 선생님은 내 문자를 읽으시고 아이를 만나자 "현이 오늘 유치원 오기가 힘들었어?" 하고 아이에게 물어봐 주셨다고 했다. 

"어머니, 현이가 오늘은 소리내서 엉엉 울더라고요. 예전에는 한번도 이런 적이 없어서 저도 깜짝 놀랐어요. 그래서 현이만 따로 데리고 나와서 달래주었어요. 그렇게 울고 나서는 괜찮아져서 내일은 씩씩하게 유치원 오겠다고 했어요. 현이가 유치원에서 엄마 보고 싶어하거나 힘들어하면 혹시 빨리 데리러 오실 수 있으신가요?"

"네, 그럼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선생님도 아이에게 혹시 힘든 친구가 있는 건지, 유치원 생활에서 어려운 점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물어보셨지만 아이 대답은 모호했다고 했다. 역시나 뭔가 특별한 문제가 있었다기보다는 그냥 스트레스가 쌓였던 모양이다.

그렇게 아이는 울음으로 감정을 쏟아내고 나서 정말로 괜찮아졌다. 엄마와 선생님의 집중된 관심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언제나 동생과 친구들에게 관심을 빼앗기는 환경에 있으니 말이다. 

비록 "그래, 오늘 집에서 엄마랑 놀자!" 라고 쿨하게 유치원가기싫어증을 받아주진 못했지만, 그래도 아이에게 집중해줄 수 있어서, 아이의 울음을 받아줄 시간이 있어서, 아이를 평소보다 일찍 데리러 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여섯 살 인생도 쉽지 않지. 

삶이 늘 내 맘 같지 않다는 걸 작은 몸으로 겪어내느라 고생이 많아. 엄마 품은 늘 열려 있으니 언제든 와서 안기고 울어도 돼. 고생 많았어, 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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