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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N Feb 14. 2019

이름으로 부르며

1993년 5월 29일


이름으로 부르며

1993년 5월 29일


쫑알쫑알, 옹알이를 내뱉기 시작했어.

엄마라든가 아빠라든가 하는 단어는 아마 내 귀에만 들리는 소리일 거야.

연희는 어딜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튼튼하고 똑똑하게 잘 자라고 있단다.

28일은 부처님이 탄생하신 날이라 보행기를 이고 지고해서 낙산사까지 다녀왔단다.

연희 이름을 적은 연등도 달고 왔지. 이제는 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도 가능해졌어.

감탄할 정도로 얌전하더구나. 

낯선 사람이 신기한지 또랑또랑한 눈으로 빤히 쳐다보는 모습이란.

모두가 너를 예뻐라 했어. 기특한 우리 사랑둥이.


오늘은 연희 네 이름에 관한 얘기를 하고 싶구나.

네가 태어난 뒤 이름을 지어야 했는데, 작명소 같은 곳에서 돈을 주고 이름을 짓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았어.

큰절의 주지스님이신 엄마의 큰아버지께 부탁드려볼까도 생각했었지만 절에 갈 시간이 나질 않았고.

말일까지 이름을 짓지 않으면 벌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라 고민이 많았단다.

그도 그럴 것이 이름이라는 건 네가 살아가면서 앞으로 가장 많이 듣게 될 단어잖아.

어른들 내키는 대로 이렇게 자그마한 너에게 이름자를 박아버려도 되는 걸까.

무겁게 생각하니까 한도 끝도 없는 것 있지. 그만큼 너에게 의미 있는 것이었으면 하니까.

별처럼 많은 이름들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지 않도록 말이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하던 차에 언젠가 꾸었던 꿈이 떠올랐어.

너를 임신한 지 6개월 정도 되었을 때였을 거야.

이름 모를 누군가가 돌연 네 이름을 연희로 지으라고 하고 사라져 버렸었거든.

어렴풋해서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혹시 그건 삼신할머니가 아니었을까?

삼신할머니는 아이를 점지하시고 가족의 건강을 지켜주시는 분이란다.

오래된 무속신앙일 뿐이라고 웃어넘길 수도 있지만, 삼신할머니께 이름을 받은 아이라니 근사하잖아.

이런 생각에 미치자 네 이름을 꼭 연희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다행히 가족들 모두가 좋다고 하더구나.


연희라는 이름은 한자로 연꽃 연(蓮)에 기쁠 희(喜)를 써.

연꽃 연자를 쓴다는 점이 참 맘에 들었었단다.

연꽃의 꽃말은 청정, 신성, 순결이래.

오래전 중국에서는 질척이는 진흙 속에서 청초하게 피어나는 모습을 두고

속세에 물들지 않는 군자와도 같은 꽃이라 했단다.

불교를 대표하는 상징물이기도 하지. 중생들의 어지러움, 탁함, 더러움을 걸러내는 진리.

세속을 초월한 고상한 풍모를 지니고 있어 성인의 모습에 비유되기도 하고.

연희는 이름 그대로 연꽃처럼 피어나 사람들과 기쁨을 나누는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산다는 게 가끔 조금 버거울 때가 있을지도 몰라.

그래도 쉽게 굴하지 않고 끝내 고결하고 총명하게 자라나길 바란단다.

충분히 그렇게 되리라 믿어.



LEN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

인스타그램: lotus_hee_illust

메일: choyeonhee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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