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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N Nov 03. 2018

 우리, 엄마, 일기

프롤로그

네가 태어나자마자 쓰기 시작한
너를 위한 일기가 있단다.

제 코도 잘 훔치지 못하던 초등학교 시절, 어렴풋이 기억나는 엄마의 말씀이다.




우리 집은 언제나 가난했다.

찢어지게 가난해서 당장 백만 원이 필요하다면 발을 동동 구르며 사금융에까지 손을 대야 했고.

항상 쪼들려 남들처럼 외식 한번 하는 게 연례 행사급이었다.

대한민국 땅에 우리 것이라고는 달랑 연식이 얼마나 됐는지도 모를 다 찌그러진 구형차 한 대뿐이었다.

자식새끼들 남들과 뒤떨어지지 않게 학원 몇 개 보내느라고 생활비를 감축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타인보다도 데면데면한 한 엄마 아빠를 보며 과연 화목한 가정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의문을 품고서 자라왔더란다. '도대체 결혼은 왜 했냐'며 철없이 매몰찬 질타를 밥 먹듯이 했었다.

나는 항상 궁금했다. 무엇이 지금의 무력한 가정을 만들어 냈는지.


당시(1991년도) 결혼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현재와 달랐으리란 건 안다. 남들도 다 하는 것이고

혼기가 꽉 찬 남녀가 미혼으로 남아있으면 그 자체만으로도 흉이 되는 시대.

아무리 그래도 집 한 채 장만할 여유는 둘째치고 분유값 대기도 버거운 실정에 결혼이라니.

너무 절망적인 시작이 아닌가. 그게 자그마치 30년 정도를 이어오고 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던데. 얼마나 더 버텨야 할까?

염세적인 말들을 보따리째로 늘어놓고 있노라면 엄마는 속도 없이 웃어 보이며

'너도 애 낳아서 키워봐라. 그럼 알게 돼. 얼마나 재미있는데.'라고 받아치곤 했다.

실소가 터져 나오는 말이다. 재미 한번 보자고 나는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걸까.

남들보다 곱절로는 열심히 해서 겨우 얻어낸 소위 명문 대학 타이틀도

결국 높은 학비에 부딪혀 나가지 못하고 제적당하고 말았다.

명문 대학교 타이틀을 따는 것 만이 구질구질한 현실에서 나를 꺼내 줄 구세주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순수한 청소년기의 나를 애도한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다리가 찢어진 다지.


도무지 4인 가족이 생활할 환경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좁아터진 집에 밀린 월세와 늙어만 가는 부모님들,

속절없이 불어나는 학자금 연체를 생각하며, 그 흔한 해외여행 한번 가본 적 없는 나의 불쌍한 청춘.

이렇게 돈 버는 쳇바퀴에 끼어 돌다가 꿈도 미래도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닐까. 두려웠다.

패기 없는 젊은이로 낙오되어버린다는 것이.



앞날도 모른 채 결혼 앨범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엄마와 아빠를 보면서 실낙원을 떠올려야 했다.

돌아올 수 없는 미소들이 야속하게 그곳에 박제되어 있었다. 웃는 사진이 이렇게 잔인해질 수 있구나.




흥청망청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돌아온 저녁이었다.

베개 위에 올려져 있는 낡은 노트 두 권.

'이런 걸.. 대학노트라고 하던가?'

물컹물컹한 까만 인조 가죽 안의 너덜너덜하고 누렇게 변색된 내지에서 새금새금한 향이 나는 다이어리.


 "엄마 이게 뭐야?"

"내가 너 태어나자마자 쓰기 시작한 다이어리! 읽어봐!"


술이 안 깨 불콰한 상태로 자리에 철퍼덕 앉아 그것을 읽기 시작했다.




*본 에세이에 삽입된 엄마의 일기는 원본을 바탕으로 교정, 교열 등의 편집을 거친 것입니다.

엄마가 당시 일기를 쓰셨을 때의 기분이나 생각이 고스란히 담기기를 바랐습니다.





LEN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

인스타그램: lotus_hee_illust

메일: choyeonhee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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