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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a Dec 07. 2017

오니기리맛의 오늘이라는 고요한 행복, 카모메 식당

카모메 식당 (2006)

글쓰기란 두려움을 줄 때도 있다. 다행인 것은 마침표를 찍을 때마다 묘한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고민 고민하며 적는 거북이같은 글들은 매번 그렇듯 첫독자인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카모메식당>의 사치에는 핀란드에서 일본 가정식을 고집하며 일식당을 운영한다. 오픈을 하고 몇 일이나 지났을지 모르는 시간 동안 사치에(고바야시 사토미)의 가게에는 손님이 한명도 찾아오지 않는다. 일본문화 팬이자 젊은 청년인 토미가 첫 손님으로 온 날, 사치에는 뛸 듯 기뻐하며 앞으로의 성공을 다진다거나 첫 손님 이후 또 다시 손님들이 통 오지 않을 때에도 낙심하지 않는다. 그저 생애 첫 손님에게 커피를 늘 대접하겠다 약속한다. 그리고 그가 물어봤지만 기억 나지 않는 일본 만화 갓챠맨 주제가를 고심 고심 흥얼거리며 집으로 귀가할 뿐이다. 걱정이 없는 사치에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저런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치에는 정말 걱정이 없는걸까?



그녀는 아침에는 장을 보고 낮에는 변함없이 음식을 만들면서 가게를 운영하고 수영을 하고 저녁에는 어릴 때부터 해오던 합기도를 한다. 우연히 함께 일하게 된 미도리(카타기리 하이리)의 질문에 “꾸준히 일하다보면 사람이 늘거에요.” 라고 대답하는 사치에의 모습은 그가 걱정이 없다기 보다는 살아내는 구나 생각하게 만든다. ’안경’, ‘수영장’으로도 유명한 매력적인 여배우 고바야시 사토미이기에 더 돋보인다. 그녀의 익살스런 표정과 덤덤한 목소리는 그 맛을 더해준다.



핀란드에서의 일식당이라는 신선함과 함께 카모메식당에는 저마다 사연을 가지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 함께함과 외로움의 그 경계에서 조화를 이루어 간다. 모두의 인생에는 누군가가 계속 해서 찾아온다. 이것이 카모메 식당이 마치 누군가의 인생 같은 이유다. 각자가 무리에 있다가 다시 힘을 얻고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출구도 언제든 막아놓지 않는다.



나이가 꽤 지극한 여중년 마사코(모타이 마사코)는 핀란드에 도착하자마자 큰 짐을 잃어버린다. 그러다가 잠시 들린 카모메식당에서 사치에와 미도리를 만나게 된다. 커피를 가져다주던 사치에는 잃어버린 짐을 걱정하면서 귀중품으로 인해 속상하겠다며 보듬는데 그 때, 마사코는 문득 생각이 깊어진다. 자신의 귀중품이 무엇이었던가 하면서 말이다. 오랜 시간 부모님의 병간호를 해왔던 마사코는 부모님을 여의고 핀란드를 찾은 것이었다. 여유를 찾으러 핀란드 숲에 다녀온 후 마사토는 캐리어를 되찾는데 캐리어를 열어보고 나서야 그녀에게 무엇이 귀중한 것인지 인지하게 된다. 이 장면은 영화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어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될 여지가 다분하다. 하지만 공감이 되는 메세지를 담고 있다. 결국 마사코를 통해서 핀란드에 있었던 것은 짧은 시간일 뿐이지만 매여있던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지금’에서 찾게된 안온함과 여유가 귀중한 것이라는 깨달음을 준다.



카모메 식당은 자칫 그거 지루한 영화 아니야? 라고 질문할 수 있는 영화다. 그러나 음식을 만드는 장면에서의 재미 있는 핸드헬드나 가사가 없는 흥겨운 음악, 은은하고 담백한 커피와 빵의 냄새, 침 고이는 정갈한 일본음식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보는 재미는 충분하다는 생각도 든다.



영화의 노을 같은 장면에서 사치에는 갈수록 늘어가는 손님을 맞고 즐겁게 요리를 하면서 또 그 날도 홀로 수영을 한다. 물 속에서 조용히 헤엄치던 사치에가 “갈매기 식당이 드디어 만원을 이루었다.” 라고 말할 때 고요하던 그 곳은 꽉찬 박수소리로 가득하니 그 순간 관객의 마음도 일렁인다.

우리의 성취, 달리기도 그렇다. 걱정은 뒤로 하고 그 날 만난 손님에게 마음을 쏟고 하루를 마무리하며 또 어두운 방안에서 합기도를 하는 것은 곧 만원의 식당으로 가고 있는 길목이다. 그 길은 분명 외롭지 않을 테고 기분 좋은 향기를 풍길 것이다.

카모메 식당에서 여느 때처럼 꾸욱 꾸욱 오니기리 모양을 내듯 나도 계속 글을 쓴다. 가만히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두려움 없이 글 쓰는 것을 연습한다. 썼다 지웠다 또 옮기기를 반복하면서 말이다.

어디선가, 무던히 요리하면서 만원을 이루어가는 당신의 인생에도.

짝짝짝.












카모메 식당 (かもめ食堂: Kamome Diner, 2006) / 오기가미 나오코

코미디, 드라마 / 2007.08.02 개봉 / 102분 / 일본 / 전체 관람가

출연 - 고바야시 사토미, 카타기리 하이리, 타르자 마르쿠스, 모타이 마사코, 자코 니에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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