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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a Sep 21. 2017

형용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이 있다면 뷰티풀마인드

뷰티풀 마인드 (2001)




한계를 마주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에게 친근한 일이다. 나는 학창시절에 의지가 부족했고 특히 지식적인 면에서 그랬다. 지식에 대한 낮은 자긍심은 나를 괴롭게 하고 동시에 게으름으로 이끌고 가기도 했다. 이처럼 한계를 마주하는 것은 약점을 극복하는 것, 바뀌지 않을 것 같은 생각과 감정과 의지들, 환경을 바꾸기 위해 도전하는 것 등이라고 할 수 있다. 빠져나올 수 없는 상처나 앙심같은 것들도 비슷하다.

그런데 오래된 벗이 내가 만든 환영이라걸 깨닫게 된다면 어떨까. 이야기는 달라진다. 정부가 필요로 하는 뛰어난 수학자인 존 내쉬(러셀 크로우)는 학부 시절 룸메이트를 시작으로 일생동안 세 명의 생생한 환영을 본다.






정신분열증 치료과정을 이겨내는 것은 게으름처럼 친근한 한계와는 다른 것이다. 영화 중반에서 관객은 존과 그의 가정이 파괴되는건 아닐까 우려의 눈빛을 보내게 된다. 존은 치명적일 정도로 현실과 환영을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결국 약물치료와 정신병원 치료를 받으면서 존은 치료를 지속하면 그가 일평생 열정을 쏟아온 연구를 더이상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영화의 중요한 전환점에서 나는 아내 엘리사(제니퍼 코넬리)를 보았다. 그녀는 <내일을 위한 시간>(2014)에서 우울증으로 휴직했었던 산드라(마리온 꼬띠아르)가 불의한 상황에 부딪히고 직장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할 때 그 곁을 지키는 남편 마누(파브리지오 롱기온)과 같은 존재다. 이런 조력자는 무너질 것 같은 삶에서 잘보인다. 소중한 사람이 포기하지 않도록 옆에서 돋우는 역할을 하며 그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기다려준다. 어떤 것이 현실인지 알 수 없을 때 현실과 이상, 그 자체가 되어준다. 정신질환을 앓는 인물이었던 존과 산드라는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자기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큰 고통을 받는다. 끈질긴 우울증으로 자존감이 낮아져서 난 존재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며 죽을 듯 쓰러지는 산드라를 일으켜 안는 마누의 한마디는 이 모든 것을 뒷받침한다. “ 당신 여기 있잖아, 사랑해. ” 이런 종류의 것은 말한마디 이상으로 존재의 이유인 사랑이 된다. 사랑은 그것만으로도 누군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






다시 환영을 보고 아기를 죽음의 위험에 빠뜨린 존, 그리고 엘리사는 그가 다시 병원에 갈 것인지 가지 않을 것인지를 두고 결정해야 할 국면을 맞는다.

그 때 엘리사는 그를 놓아버리지 않는다. 지금 병원으로 돌아간다면 다시는 집에 돌아올 수 없을거라고 말하는 존의 손을 천천히 붙잡아 준다.

그 날이 오기까지 엘리사는 사랑하는 남편이 혼미해지고 무기력해가는 모습을 괴롭게 지켜봐야 했으며 남편이 가정을 해치지 않을지 걱정해야 했고 육아와 생계 꾸리는 일을 홀로 도맡아 해야 했다. 그와 섹스도 할 수 없었다. 그것들은 당연히 로맨틱하지 않을 뿐더러 둘러 말하지 않아서 더 현실같은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엘리사가 존을 떠나지 않고 남아서 그를 돕기로 한 것은 짐을 함께 짊어지는 헌신이며 어디서 온 사랑일까 뒤돌아볼법한 것이다.







문득 내가 나를 확신할 수 없을 때, 순수하나 강철같은 믿음과 사랑으로 나를 봐줄 사람을 떠올릴 수 있다면 얼마나 따듯한 일인가. 그는 굳어진 나의 뺨에 손을 올리고 서늘해진 나의 가슴 언저리에 심장 소리를 들어줄 사람이며 험악한 꿈에서 깰 수 있도록 흔들어 깨워줄 사람이다.





정신분열증을 극복하는 것을 넘어서 한계를 안고 분연히 살아간 존 내쉬의 인생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여러가지다. 그 견딤의 진가는 존이 노인이 되었을 때 드러난다.

존은 병원에 돌아가지 않기로 한 후 모교로 돌아가 연구를 다시 이어간다. 조롱과 고통의 시간이 지나 마침내 그는 다시 그의 연구를 인정받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노후를 보낸다. 여전히 가지고 있는 자신의 질병을 농담으로 넘겨버리는 여유도 놀랍지만 그는 젊었을적 어깨 너머로 본 성공이라 부르고 싶던 것을 직접 마주한다. 누구나 아, 저렇게 될 수 있다면 후회 없는 삶이라 부르리 하며 그려보는 것이 있을것이다. 존에게 그것은 은퇴기의 위대한 공로자로써 젊은 학자의 자부심이라고 할 수 있는 만연필을 많은 이들에게 받고 존경의 인사를 듣게 되는 것이다. 그가 인터뷰를 이유로 우연히 앉아있던 탁자에 연이어 만연필이 놓이는 모습은 이 영화에서 과연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그러나 백발이 된 존 내쉬가 노벨상을 수상하며 연설했듯,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은 위대한 학문보다 이해할 수 없이 믿어주는 그 진실한 사랑일지도 모르겠다.










뷰티풀 마인드 (A Beautiful Mind, 2001) / 론 하워드

드라마 / 2002.02.22 개봉/ 135분 / 미국 / 12세 관람가

출연 - 러셀 크로우, 에드 해리스, 제니퍼 코넬리, 폴 베타니, 애덤 골드버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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