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40. 죽은 줄 알았던 화분에서 새싹이 피어났다.

작은 화분이 알려준 기다림의 힘

by 베러윤
이번 주말에도 그대로면 이 식물 버려야겠어


올해 초, 회사가 새로운 사무실로 이사를 했다. 새로 지은 모든 것이 새것인 곳이었다. 집에서 많이 멀어지기는 했지만 새로운 공간에 들어간다는 건, 그 자체로 마음을 환기시키는 일이었다. 새 책상, 새 의자, 새로운 서랍, 모든 게 낯설었지만 그 낯섦 속에서 오히려 설렘이 피어났다. 일도 더 열심히 해보리라는 다짐과 함께.


새로운 보금자리로 출근하는 날, 기획팀에서는 모든 직원에게 책상에 놓을 수 있는 공기정화식물을 하나씩 주었다. 내가 받은 건 '스타티 필름'이라는 식물이었다. 평소 식물과 거리가 멀었던 나였지만, 새 공간에서 처음 받은 선물이니 잘 키워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image.png?type=w1

출근하면 가장 먼저 잎을 살피고, 물을 갈아주었다. 퇴근 전에도 혹시 식물이 목마르지 않을까 살펴보곤 했다. 매일 들여다볼 땐 별 차이가 없어 보였는데, 며칠만 바쁘게 지나가고 나면 훌쩍 커져 있는 게 참 신기했다.


처음에는 한 줄기만 받아왔는데, 새 줄기가 나고 꽃을 피우면서 화분 하나가 꽉 차 버렸다. 그래서 화분 하나를 더 만들어 분리를 시켜줬다. '나 가드닝에 소질 있나 봐'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묘하게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한 쪽은 무럭무럭 자라 꽃봉오리도 틔우고 새로운 줄기가 나오는데, 다른 한쪽은 어느 순간 시간이 멈춰 버린 듯했다. 새 줄기가 나오려는 듯하다가 그대로 굳어 버린 모양새였다.


나는 매일 물을 갈아주고, 영양제까지 사서 챙겨주었다. 하지만 반응이 없었다. 새로운 줄기가 나올 준비를 했는데 나오지는 않고 그 상태 그대로 몇 주 멈춰 있었다. 식물이 자라지 않으면 더 이상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주말에도 그대로면 그냥 버려야겠어.' 동료에게 말했다. 동료는 웃으며 조금 더 기다려보자고 했지만 속으로는 '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긴 연휴를 보내고 사무실로 다시 복귀했다. 그런데 내 눈을 의심했다. 분명 이제 자라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멈춰있던 화분의 밑동에서 아주 연약한 새싹이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내 말을 들은 듯 말이다.


나 아직 살아 있어요. 버리지 말아요.


그날 이후 나는 더 정성껏 물을 주었다. 그러자 멈춰 있던 화분은 오히려 옆의 화분보다 더 풍성히 자라났다. 새 줄기는 매일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뻗어 나가며 자기 모양을 찾아갔다.




그 작은 화분을 보면서 미안한 마음과 함께 어쩌면 지금 나의 모습도 그 화분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매일 아침 쓰는 모닝페이지, 하루 10분의 책 읽기, 작은 기록과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었고, 그래서 이게 나를 성장시키는 게 맞는지 의문이 자주 찾아왔던 요즘이었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으니 조급했고, 그러다 보니 하나하나가 다 또 다른 숙제로 다가왔던 것 같다.


@betteryoon (2).jpg

하지만 죽은 줄 알았던 화분도 결국 새 줄기를 품어냈듯, 내 삶의 노력도 어딘가에서 자라날 준비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지금도 아주 천천히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다시 마음을 다잡아 본다. 내가 할 일들을 적으며, 당장에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언젠가 미래의 내가 나아가는데 큰 자양분이 될 것을 믿으며, 묵묵히 해보기로. 오늘의 작은 물줄기가 내일의 꽃을 피우듯, 나의 하루도 언젠가 뜻밖의 새싹을 품어낼 것이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