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땅 그리고 식은 샌드위치
내게 집이라 할 수 있는 공간은 단 한 곳이었다. 꽤나 엄한 부모님 슬하에서 통금시간 11시를 넘기지 않으려 친구들과 어울리는 자리에서 항상 미안한 표정과 함께 먼저 퇴장해야 했던 나였다. 그런 나에게 “외박”이란 단어는 결코 쓰이지 않았다. 대신 가출을 했다, 어학연수를 핑계 삼아 부모님 허락 하에 조금 오래간.
부모님 품을 떠나 와 금발에 하늘빛 눈동자를 가진 사람들이 북적대는 낯선 곳에서의 적응이 그다지 쉽지만은 않았다. 나는 어렸고 여렸다. 살 집을 구할 때까지 당분간 홈스테이(현지인의 집에서 돈을 지불하고 숙식을 제공받는 것)를 하기로 했다. 내가 살게 된 그곳은 현지인들이 가족단위로 많이 살고 있는 꽤나 부유한 동네였다. 집주인은 ‘엔젤라’라는 이름을 가진 50대의 아주머니였다. 그녀는 짧게 민 스포츠머리를 금발로 물들여 있었고 아이보리 빛깔의 큼지막한 상하의의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첫날 밤늦게 도착한 나에게 샌드위치를 건네며 시간이 늦었으니 일단 이걸 먹고 내일 얘기하자고 말하였다. 24시간이 아니라 9시간의 시차까지 더하여 33시간이 되어버린 긴긴 하루였다. 이불도 벽지도 온통 하얀 방 안에 덩그러니 잠시 서 있었다. 너무도 새하얘서 살짝 긁힌 흠집마저 크게 도드라져 보이는 책상에 앉아 조용히 내 숨소리에 집중해보았다. 눈을 감고 너무도 낯선 그곳에서의 앞 날들을 잠깐 그렸다가 눈을 떴다. 그제야 덩그러니 놓인 샌드위치가 보였다. 허겁지겁 먹어 치운 샌드위치가 맛있었다고 말하기엔 딱딱하게 식어 있었다.
다음날 아침, 엔젤라는 아침 일찍부터 나를 깨워 아침을 차려주었다. 샤워는 꼭 아침에만, 5분이내로 마치라는 것이 그녀의 말이었다. 평소 샤워하는 데 20~30분이 걸리는 나였기에 앞으로 매일 아침이 조금 힘들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도 그녀의 집에서 살기위한 몇 가지 규칙들이 있었다. 그다지 어려운 조건들은 아니었지만 순간 머릿속에 어젯밤 식은 샌드위치가 스쳐 지나갔다.
내가 고른 곳은 아일랜드의 더블린이라는 도시였다. 버스킹과 세계적인 흑맥주인 기네스로 유명해 흥이 넘치고 예술적인 느낌이 물씬 드는 아름다운 나라지만, 사시사철 비바람이 불고 한 치 앞의 날씨를 가늠할 수 없는지라 떠나기 전 친구 수정이가 접이식 우산 세 개를 챙겨주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길에서 우산 쓴 사람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참 모순적인 부분임을 지각하며 점심을 먹으려 우산 하나를 챙겨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머지않아 소나기가 쏟아졌고 나는 뿌듯한 마음으로 우산을 펼쳤다. 그 순간 나는 엄청난 바람의 힘을 느끼며 날아가려는 우산을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고 우산과 씨름하다 결국 철사는 사정없이 부러졌다. 내 선물 받은 새 우산은 본디의 모습을 잃어버렸다. ‘안녕.. 앞으로 더 이상의 우산은 낭비하지 않기로 해.’
낯선 그곳에서 처음 학교를 가던 날, 반 편성 시험이 있었다. 주위를 살펴보니 수많은 사람들 중 동양인은 나를 포함하여 달랑 둘이었다. 한 명씩 호명할 때 들리던 지극히 한국적이던 그 이름이 너무도 반가워 ‘안녕하세요 저도 한국 사람이에요’ 하며 생긋 웃어 보이고 싶었지만 조용한 분위기에 위화감마저 느껴 단지 그 자리 그대로 앉아 내 이름이 불리길 기다릴 뿐이었다. 1차로 필기시험을 치르고 그다음으로는 2:1 면접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이지 나는 모든 질문을 이해했다. 그런데 이해만 했다. 어느 반에 들어갈 것 같냐, 새로운 학교는 어떠냐는 물음에 나는 일관성 있게 모르겠다(I don’t know.)라고 대답했다. ‘모르겠다’라는 말은 일상생활에서 꽤나 유용하게 쓰인다. 특히 곤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모르겠다고 답하는 것만큼 간편한 일은 없다. ‘정말 몰라서’ 라기보다는 ‘대답하기 싫어요’라는 뉘앙스를 충분히 풍길 수 있는 쉬운 방법이다. 하지만 나는 그 의미가 아니었다. ‘정말 몰라서’였다. 이 간단한 질문에도 답하지 못하는 내 자신에게 드는 실망감에 놀라 그 짧은 순간 눈 앞이 캄캄해졌다. 이 곳에서의 내 생활도 그와 같지 않을까 하는 바보 같은 생각도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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