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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이 Nov 30. 2018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사사키 아타루

다시 읽으며 드는 생각들.

자주 상기시킬수록 스스로를 부끄럽지 않게 해주는 일들이 있다. 오늘 밤은 '읽기의 즐거움'이다. 며칠 째 '제 1장'도 다 읽지 못하는 수준으로(속도로)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읽기의 혁명'을 주제로 하고 있다. (아마도) 내 수준에서 혁명까지야 모르겠다만 읽는 일을 재미로 삼고 꽤 변하긴 했다. 그러다 뭔가를 읽는 일이 시들해지면 다시 이 책을 읽는다. 읽는 일이 읽는 것으로 갱신된다.

줄글 속에서 헤매는 게 기분 좋다. 때론 싫고 싫어지면 떠났다가 다시 줄글의 세계로 돌아온다. 헤매고 싶은 세계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그 세계가 던져줄 즐거움을 기대하고 살아가는 것도 기분 좋다. 누군가 좋다는 책만 쫓아 읽는 주체적이지 못한 독서활동이라도 뭐, 재미만 있으면 그만이지 싶은 마음이 들어버렸다. 스스로 선택해야하고 모든 결과는 다 내 탓이고, 내게 돌아오는 것들을 모두 받아들여야 하는 게 당연히 힘들다고 이야기해주는 게 좋다. 받아들이기 힘들수록 읽을 만한 책이고 일러 주는 부분이 명쾌하다. 어려운 책을 읽으라는 게 아니라 불편한 책을 읽으라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읽음으로 세상에 혁명을 일으킨 옛 사람들처럼 내가 책을 읽어서 뭔가를 발견하거나 남다른 감상을 남길 리 없지만, 인풋과 아웃풋이 항상 비슷한 양으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버리고, 끝까지 다 읽어야 하고 빈틈없이 읽어야 한다는 생각도 버리고, 그렇게 그냥 다 버리고 나면 읽는다는 일 하나가 남는다. 불편한 걸 가만히 참고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읽지 않거나 뛰어들거나. 참아주면 쌓여서 터지게 되어있다. 나는 그 둘 중 하나를 반드시 좌우명 같은 것으로 여기고 살아갈 생각도 없다. 그냥 그때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 거니까. 내가 녹아들었던, 나를 녹여주었던 무언가의 일부가 아까울 때는 분명히 존재한다. 참았던 건 그만큼 소중했던 거니까. 그래도 선택은 해야 한다. 솔직히 그것이 좋고 싫고, 재밌고 재미없고, 정리가 되었건 안 되었건 그런 것을 떠나서 드는 생각은 누군가의 생각을 읽는 법 중에 제일 쉬운 방법은 글일 테다. 촘촘히 켜켜이 쌓이고 갈래가 얽혀드는 것은 글이니까.

어쨌거나 읽어도 글, 안 읽어도 글. 읽는 게 나를 덜 부끄럽게 만들어 준다. 나는 항상 부끄럽다. 나의 무언가가 계속 모자라고 부족하고 못난 것 같다. 책 읽는 모습은 덜 모자라고 덜 부족하고 덜 못나 보이는 것 같다. 그래서 좋기도 하다. 책이 채워주는 허영심. 나는 그게 가장 좋았다. 그게 조금은 나를 살게 해줬다. 그래서 읽을 수 없었을 땐 쉬운 말로 죽고 싶었다. 질기게도 죽지는 않았다. 삶의 관성은 쉽게 끊어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저 태어나지도, 존재하지도 않았을 세계를 상상하며 위로 삼을 뿐이다.

‘읽는다’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니어서 좋다. 아무도 안 시켰는데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 좋다. 그리고 앞으로는 그렇게 살기로 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내 스스로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사는 것. 읽는 일은 나를 지키는 법을 알려줬다. 어떻게 하라는 명령은 없었지만 그냥 과정을 겪어보니 그렇더라는 시시한 이야기다. 그리고 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글을 정말 싫어한다. 그러나 온갖 이래라 저래라에 흔들리다가 겨우 중심 잡는 이야기는 좋아한다. 중심 못 잡고 끝나도 좋다. 흔들린다는 것 자체로 그런 글은 읽어보고 싶다. 당신의 흔들리는 모양은 무엇인가요, 그게 궁금합니다. 그래서 다시, 읽기다.

오늘 캐나다로 떠나보겠다는 결심을 했다. 돌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항상 콤플렉스로 남았던 영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열등감에 쩔어서 새벽에 울어버리는 시간 같은 건 이제 없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의지 같은 것이었다. 누군가가 노력을 통해 얻은 것을 시기하고 비열하게 낮잡아 보는 생각도 하지 않고 싶어졌다. 이런저런 복잡다단한 이유도 있고 충동적인 부분도 있지만 난 한국에서는 답을 찾지 못하겠다. 물론 외국이라고 답이 있을 거라 생각지도 않는다. 별 생각 없이 가서 좋은 공기 마시고 영어로 소통하다 오고 싶다.

내게 상처가 되었던 것, 내게 상처를 준 사람들 다 잊으려고 한다.

다른 기억도 함께 사라지겠지만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려 한다.

지금까지 곁에 있어준 사람들만이라도 붙잡고 살 테다.

그리고 아무도 시키지 않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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