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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이 Feb 16. 2024

삶은 그저 츄라이츄라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조금 수다 떨어본 글.

정말 오랜만에 새벽을 하루의 시작으로 삼았습니다.

새까맣던 창 밖이 서서히 푸른 빛을 띠는 군요.


뭐랄까, 저는 유튜버를 꿈꾸는 사람 중 한 명인데요. 

이것 참, 도저히 못해먹겠어요.

영상이라는 매체가 가진 무궁무진함이, 또는 수고로움이 자꾸 저를 시험에 들게 만듭니다.


그리고 영상으로는 내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인지 떠오르지 않습니다.

글이라고 뭐 그리 다를까 싶지만서도 저에게는 그나마 글이 좀 쉬운 편입니다.

음. 그렇다고 글로 써낼 대단한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긴 해요. (ㅎㅎ;;)


그치만 변명을 해보자면 저는 워낙에 주제와 정보가 명확한 글보다 신변잡기적인 글을 좋아하거든요.

사소한 것들을 이야기하면서 느끼는 묘한 안정감? 그런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 것들 중에 몇몇은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아도 사소하게 행복과 자존감에 영향을 준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가끔 별 것 아닌 걸로 무지 재미있는 글을 써내는 사람을 보면 지나칠 수가 없더라구요.


아, 그런데 제가 최근에 읽은 책은 제목은 가벼운데 내용은 가볍지 않은 책이었습니다.

바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었는데, 

심오한 제목.... 존재를 논하면서 또 그게 가볍다고? ㅎ 

벌써 어렵습니다.


솔직히 유명세때문에 번쯤은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책인데...

되게 철학적이고 서술도 복잡하고 

내용만 설명하자니 이건 뭐 막장드라마 뺨을 치고도 대여섯 번은 쳤고.

반 이상 넘어가기 전에는 너무 힘들게 읽었는데 끝날 무렵에 드디어 인상적인 대목이 나타났어요.

그것은 주인공이 키우는 개, 카레닌의 입장에서 서술된 2-3페이지 밖에 안되는 부분이었는데요.

카레닌이 얼마나 삶을 충만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느껴지는데, 

그게 뭔가 대단한 것으로 인한 게 아니고 그저 아침에 눈을 뜨면서 하루가 시작된 것에 행복을 느낀다는 거에요.

사람이 매일 아침 하루가 주어진 것을 감사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은 쉽지 않은데

테레자, 토마시와 함께 살고 있는 카레닌이 느끼는 그 행복은 전혀 억지스럽지 않았어요.


왜 살다보면 평소에는 잘 모르던 거대한 어둠이 그 모습을 드러내며 손을 뻗쳐올 때가 있잖아요.

평소에는 흐린 눈으로 잘 피해다니다가도 어느 순간 발목부터 그 어둠 속으로 빨려들고 있을 때가 있어요.

저는 그게 언제냐면 욕심을 부릴 때 그렇더라구요.

이것저것 다 내 꺼였으면 좋겠고, 돈도 왕창 벌든 모으든 해서 좀 편하게 살고 싶고, 

좀더 마음껏 일하고 돈도 많이 버는 직장을 가질 수 있다면... 

때로는 문득 우울해지고 비관적인 생각이 머리에 가득 찰 때도 있죠...

새까만 어둠은 끝이 없어요. 어디까지 빨려들어갈지도 알 수 없죠.


테레자도 토마시도 사비나도 모두들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삶의 풍랑을 겪어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들은 계속 거주지를 옮기거나 다른 직업을 찾거나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요.

어떻게든 운명과 맞서보고 도망도 가보고 그렇게 삶의 궤적을 그려나갑니다.


의사였던 토마시는 유리닦는 기술자, 트럭운전수가 되었고,

테레자는 사진작가로 데뷔했지만 곧 그 직업을 포기하고 살아가죠.

사비나는 끊임없이 거주지를 옮기며 살아가고요.


철학적인 소설이라서 문장들이 의미심장하고 여러 번 읽으면 또 내용이 다르게 다가온다고 하는데,

솔직히 여러 번이나 읽고 싶은 책은 아니었어요.

그래도 고전은 고전인 것이 읽고 나서 쉽게 흘려 버릴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어서 좀 신기합니다.


가볍고 무겁고, 그런 것은 어쩌면 처음부터 중요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떤 삶이 무거운 삶이고, 어떤 삶이 가벼운 삶인지 책을 읽고 나니 구분이 안 가더라구요.

책의 제목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니까 그래서 그 가벼움이 뭔데! 하면서 읽게 만드는 작가의 장치였을까 괜히 딴지도 걸어보고요.


아, 그러니까 저는 소설의 많고 많은 대목 중에서 주인공들의 격정적인 삶의 모습보다 개 한 마리가 아침을 시작하는 그 장면이 제일 좋았습니다. 사소하고 따뜻하고 풍요롭고.


네. 사족에 더 눈이 가는 스타일입니다.

편지를 받으면 편지의 내용보다 추신에 더 킥킥대며 웃는 사람이 저입니다.

직장에서 친한 동료와 사소한 일에 같이 욕도 좀 하고 의미 없는 농담에 크게 웃기도 하고.

예전에는 말을 할 때 헛소리는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과연 어떤 말이 헛소리고 어떤 말이 참소리일까요.

이것은 아마 '참을 수 없는 말의 가벼움' 같은 것일까요.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나는 너무 많은 것들을 무겁게 느끼며 살았구나라는 생각.

그러지 않았어도 될 것들이 있었을 텐데 싶고요.


뭔가를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 버릇부터 버려 보는 게 어때?

뭔가를 조금이라도 못하면 도태되고 버려질 거라 생각하는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 보는 게 어때?


그래서 요즘은 한껏 가벼워지려고 생각을 바꾸고 있어요.

잘되지 않아도, 어려워도 계속 츄라이츄라이 해보는 것이 인생이라고 느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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