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아이

태어나고 싶지 않아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있습니다.

by 호야

자신의 선택으로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지구에 왔지만 그 어떤 일도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 되어버린다.

누군가 말을 시켜도, 강아지가 다가와도, 햇살이 아름답게 비쳐도 아무 상관이 없다.

태어나지 않았으니까.


사나 요코, 『태어난 아이』 (거북이북스, 2016) /『100만 번 산 고양이』 (비룡소, 2002)


이 책의 그림체는 매우 러프하다. 거침없는 선으로 스케치하듯 그림을 표현했다. 작가인 사노 요코의 다른 그림책이 그렇듯, 무심한듯 무심하지 않은 터치가 특징이지만 이 책은 조금 다른 터치를 가졌다. 선 안에 면색이 들어가 있지 않다. 오직 러프한 선으로만 표현되었다. 이는 태어나지않은 아이의 공허한 마음을 아주 잘 표현해준다. 특히 빨간색과 초록색 선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인상적이다. 검은색 선으로 표현된 것보다 빨강과 초록이라는 보색의 조화는 책을 읽는 사람마저 불안하게 만드는 시각적 효과가 있다. 어딘가 정제되지 않은 듯한 느낌을 더욱 극대화 시켜준달까.


이 책의 첫 부분에서는 "태어나고 싶지 않아서" 라고 표현되어 있는 아이가 사실은 책장을 넘길수록 마음 속 깊히 간절하게 "태어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을에서 어떤 재미난 일이 일어나도 자신은 태어나지 않았으니 상관없다고 하는 아이가, 엄마의 품으로 가는 다른 아이를 보자 비로소 엄마를 부르고 태어나게 된다. 엄마의 품에 안기며 어리광을 부리는 이제는 비로소 "태어난 아이"는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편안한 표정을 하고 있다.


부모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는 태어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다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니듯이. 아이 또한 아이답게 보살핌받지 못하면 태어나지 않은 아이나 마찬가지이다.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어?"

"너같은게 왜 태어나가지고."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한 두 대사.

전자는 부모를 향하고, 후자는 자녀를 향하는 대사이지만 사실 모두 다 "태어나지 못한 아이"를 향한 말이다.


이 책의 메시지가 부모가 없는 아이가 부모를 찾는 이야기, 입양된 아이, 기적적으로 출산이 되면서 부모와 만나게 된 이야기처럼 특별하게 읽히지 않았으면 한다.

그저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 수 있음을 받아들였으면 한다.


이 세상의 부모가 자신을 돌아봤으면 한다. 부모로서 충분한 사랑을 주는지,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는지, 보살핌을 제공해 주는지.


당신이 낳은 아이는 정말 태어났나요?

지금이라도 태어날 수 있게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세요.



오늘의 책을 위해 선곡한 곡은 신지훈-가득 빈 마음에 입니다.

자기 전 이 음악을 들으며 어린 시절의 나와 만나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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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득 빈 마음에>


엄만 언제 공허함을 느끼십니까

이건 나태함입니까

애초에 헛된 꿈입니까

채워진 것도 버거워 비어버린 것도

두려우려 사는 것도 아닌데

정답인 위로 없이 나는 살아갈 수 없네

미지근히 사라지는

가득 날 채울 순 있을까

손에 쥐려 애쓴 것들이 이유마저 흩어져

이대로도 괜찮다면 난 어떤 날을 살아야 하나

걱정 하려 사는 건 아닌데

텅 빈 마음을 난 미워해 마주하지 않네

향기같이 사라져버릴

가득 날 채울 순 있을까

손에 쥐려 애쓴 것들이 이유마저 흩어져

이대로도 괜찮다면 난 무얼 위해 살아야 하나

걱정하려 사는 건 아닌데

엄만 언제 공허함을 느끼십니까

이건 나태함입니까

애초에 헛된 꿈입니까

채워진 것도 버거워 비어버린 것도

두려우려 사는 것도 아닌데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