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 이동도서관

당신의 도서관에 초대합니다.

by 호야
서가를 구경하시렵니까?

늦은 밤 정처없이 거리를 걷고있다 낡은 버스를 만났다. 그건 이름하여 심야 이동도서관이었다. 그냥 지나칠 법도 했지만 호기심에 문을 두드리자 나이가 지긋한 신사 한 분이 있었다. 그는 서가를 구경하겠냐고 물었다. 얼떨결에 발을 내딛게 된 그 버스 도서관 안에는 낡고 어디선가 익숙한 느낌이 드는 책들로 가득했다. 책이라고 하기에는 이상스러운 전화번호부, 시리얼 상자 같은 것들도 있었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을 때 즈음, 나의 일기장을 발견했다. 이게 대체 왜 여기에? 서가의 주인 오픈쇼 아저씨는 이곳은 한 사람만을 위한 도서관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지나쳐온 모든 책들, 나의 인생 그자체가 그곳에 있었다.

오드리 니페네거, 『심야 이동도서관』 (이숲, 2016)


나의 인생으로 채워진 도서관에 간다면 어떤 기분일까?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따뜻한 상상에 젖어들었다. 어떤 책이 꽂혀있을까. 어릴 때는 동화책을 읽는 것을 참 좋아했다. 엄마와 매주 이솝 도서관에 가서 책을 둘러보고 맘에 드는 책 몇 권을 집에 가져오는 것은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내 깊은 곳 어딘가에 따듯한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그때 많은 책을 읽었는데 사실 제목이 무엇이었는지 하나하나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 책을 나만의 도서관에서 다시 마주하는 기분이란. 묘한 감정이 들었다. 순수했던 나의 어린시절과의 만남이면서 위로이면서 또 아픔이기도 했다. 책 하나하나는 각각 나에게 다른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다른 의미를 가졌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제목이라도 기억했으면 좋을텐데.. 어렴풋이 그때의 잔상만 떠오르는 책들이 섞여있다.


심야 이동도서관은 나에게 '어린 시절'이다. 성인이 된 내가 어린 나의 마음 속에 들어간 것만 같았다. 어린 시절의 의미는 각자에게 다양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가장 보편적인 의미는 '순수함'일까. 내 어린 시절도 순수함이었다. 하지만 순수한 아픔이기도 했다. 내성적이고, 소심하고, 마음이 여렸던 아이였다. 그 내면에 무한한 상상력과 에너지가 있었지만 상처를 스스로 치료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그렇게 그냥 내면에 쌓여만 가는 상처는 나의 도서관 속 책들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산토끼 가족의 이사』라는 동화책에 나오는 두려움이 많은 막내 토끼를 참 좋아했다. 막내 토끼는 항상 작은 토끼 인형을 꼭 안고 다녔는데, 토끼에게 인형은 인형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안식처였을 것이다. 나는 막내 토끼가 그 인형을 안고있는 그 포근함과 안정감을 좋아했다. 그때 당시에는 내가 그 책을 좋아했던 것은, 특히 막내 토끼를 좋아했던 것은 단순한 기호였다. 그저 '나는 이 책의 토끼가 너무 귀여워서 좋더라!'라고 할 수 있는 정도의 기호. 하지만 지금 그 때의 어린 나에게 물어본다면 그것은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어린 나 자신에 대한 위로였다. '내가 너를 소중하게 생각할게' 하는 위로.

어른이 되어 이 막내 토끼를 만나는 건 잃어버렸던 소중한 무언가를 만나는 것이었다. 나는 어른이 되어 토끼를 바라봤고, 아직도 여전히 어린 막내인 그 토끼는 내가 누군지 몰라보는 듯했다.


"기억 안나? 나 그 때 그 아이야! 나 지금은 이렇게 용감해. 너도 나처럼 멋지게 클 수 있을거야."


영문도 모르는 표정으로 큰 눈을 반짝이는 토끼에게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안아주고 싶었다.


주느비에브 위리에, 『산토끼 가족의 이사』, 동아 출판사



다시 책 '심야 이동도서관'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주인공 알렉산드라는 자신만의 심야 이동도서관의 사서가 되고 싶어했다. 하지만 오픈쇼 아저씨는 그건 불가능하다며 단호히 거절한다. 그녀는 재차 부탁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안된다는 말 뿐이었다. 이에 지역도서관의 사서가 되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게되지만, 여전히 심야 이동도서관의 사서가 되는 꿈을 버리지는 못했다. 이 책의 결말은 다소 충격적이다.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겠지만, 나는 두 가지 엔딩이 모두 공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해피엔딩은 그녀가 결국 그토록 꿈꾸던 심야 이동도서관의 사서가 되었다는 것.

-새드엔딩은 그녀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


그럼에도 새드엔딩 보다는 해피엔딩에 가까웠다고 생각한 이유는 그녀가 목숨을 끊은 후에 드디어 자신의 꿈꾸던 심야 이동도서관의 사서가 되었을 때 아주 행복해보였기 때문이다. 심야 이동도서관이라는 소재 자체가 판타지적 요소이기 때문에 알렉산드라의 자살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현실에서 방황하던 나의 죽음과 사후세계에서 이룬 꿈. 이는 주인공 알렉산드라의 삶의 방향 전환에 대한 용기를 보여준 장치가 아닐까.


꽃에서 정성스레 추출한 향이 향수에 담겨 있듯이, 책장에 꽂힌 책들에는 내 삶이 스며 있었다. 나를 바람맞힌 소개팅 상대를 기다리며 카페에서 읽은 바버라 터크먼의 『희미한 거울』이 보였다. 여러 번 읽어 두툼해진 『안나 카레니나』도 있었다. 나는 『중력의 무지개』를 집어 들었다. 책을 펼치자 글이 57쪽까지만 있었고 그 뒤로는 없었다. 끝까지 읽지 못한 책이었다.


이 책에 그녀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는 그녀가 읽은 책을 통해서 아주 조금 유추가 가능할뿐 자세히 이야기해주고 있지 않다. 독자인 나의 입장에서 그녀를 바라본 느낌은, 굉장히 사색적이고 자신만의 세계가 뚜렷하지만 자신의 꿈에 과감히 도전하고 진취적인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런 그녀가 이 세상 선택지 중 가장 과감하다고 할 수 있는 '죽음'을 감히 선택한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죽음'으로 표현되었을 뿐 사실은 그녀의 내면적 결심인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에서 '죽음과도 같은 용기'를 낸 것이고, '죽음과도 같은 노력'으로 꿈을 이뤄냈다.

또 다른 관점에서는 그녀가 꿈을 이뤄낸 것이 아니라, 그녀 자신을 이해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오롯이 나 자신이 되는 과정.


하지만 이 책의 진짜 마지막 반전에 대한 해석은 독자들 각자에게 맡기겠다.

알렉산드라 씨! 축하해요. 합격입니다! 담당하실 이용자는 세라 리베카 와이스입니다.
그게..., 그럼 제 서가는요? 제 이동도서관요?
아, 그 서가는 처분했죠. 안타까운 일입니다만. 도서관은 말이죠, 살아 계신 분들만 이용할 수 있어요.




오늘의 책을 위해 선곡한 곡은 재주소년-유년에게 입니다.

자기 전 이 음악을 들으며 어린 시절의 나와 만나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유년에게>


난 돌아온 것 같아
널 다시 본 순간
내 모습처럼 공을 차는 아이들

널 안아보았을 때
난 느낄 수 있었지
네 몸짓처럼 작아져버린 나를

텅빈 운동장에 앉아
붉게 해가 지는 곳을 보며
나의 유년에게 인사하네

두고온
마음을
사랑을

하염없이 철이 없었던
그 친구가 기억나지 않아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