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이기에 포기했던 순간들에 대해..
2011년 12월 03일 결혼
2012년 10월 29일 출산
2013년 12월,
14개월 된 아이 기저귀를 검색하다 우연히 보게 된 영화 개봉 소식.
CGV 어플 속 "내가 본 영화" 리스트는 2012년 6월 9일 [마다가스카 3]에서 멈춰있었다. 임신을 한 1년 내내 엄마가 영화를 보는 동안의 공포나 놀람, 무서움이 행여 태아에 영향을 미칠까..라는 생각은 디즈니 영화나 휴먼 드라마만 봐야 한다는 강박으로 이어졌고 영화관으로 향하는 나를 가로막았다.
이틀 전, 두 번째 맞이하는 결혼기념일은 생각보다 로맨틱하지 않았고, 근사한 저녁식사 자리 대신 울고 있는 아이를 업은 채 서서 입 속에 꾸역꾸역 밥을 밀어 넣다가 멈췄다.
눈물이 뚝 떨어진 그 자리를 닦으려고 주저앉았다가, 시선이 멈춘 싱크대 아래 선반을 열어 남편이 쟁여둔 김치 사발면 하나를 부욱 뜯어서 뜨거운 물을 부었다. 모유 수유 때문에 먹지 못했던 그러나 마음속으로 욕망하던 컵라면 하나.
출산 후
처음 마주한
특.별.한. 밥.상.
예쁜 꽃은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저 일찍 들어와, 나 대신 아이 밥을 먹이고 조금 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여느 때처럼 그 사람은 늦었다.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허기가 오기가 되었을까.
아이 엄마는 왜 영화를 보면 안 되지?
보고 싶었다. 어쩌면 어바웃 타임 영화가 아니라 금지된 것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친정엄마에게 잠깐 맡기고 다녀올까?라고 생각했을 법도 한데, 기어이 나는 아이를 안고 집을 나섰다. 최대한 잠을 재우지 않고 놀아주다가 영화관으로 들어간 순간 잠을 잘 수 있도록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영화를 나는 14개월 은찬이와 함께 봤다.
평소 뒤에서 세 번째 줄 중앙 자리를 선호하지만 오늘만큼은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구석진 자리 맨 뒤...
평일, 그것도 월요일 낮 3시 영화.
예상처럼 사람은 많지 않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운데 자리를 선택했다. 예상대로 펼쳐진 광경에 엷은 미소를 지으며, 구석에 몸을 숨겼다.
그.런.데...
어둠 속에서 한 여인이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임신했나?'
트렌치코트 속 불룩한..무언가..
어깨엔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고, 두 눈은 주변을 살펴보느라 중간중간 멈칫했다. 자신의 자리를 찾은 그녀는 당황한 듯 내 앞자리에 앉았다. 시간이 정지된 느낌..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고개를 돌려.. 나에게 작은 목소리로 자신의 모습을 해명했다.
죄송해요... 영화가 너무 보고 싶어서..
아이가 울면 바로 나갈게요..
7년 전, 내가 했던 말을 그녀에게서 들었다. 왜 그토록 미안했을까.. 들어오지 못할 곳을 들어온 자의 궁색한 변명처럼 목소리는 기어들어갔다.
괜찮아요.
아니, 이렇게 양해 구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돈 내고 들어오셨잖아요.
엄마가 되면 사라지는 권리들. 꿈을 찾겠다고 거창하게 이야기하는 것보다 다시 일을 하고 싶은 것보다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에 브레이크가 걸릴 때 나는 더 절망스러웠다.
아이를 안고 영화를 보러 나서기까지 수없이 고민하고 고민했을 그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신호를 무시하지 않은 엄마의 시도. 그 마음을 온전히 느낀 아이는 숙면으로 답을 대신했다..
'아이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해..' 대신 '아이와 함께여도 괜찮다'는 그 첫 번째 시도는 엄마에게도 아이에게도 더 큰 세상을 열어주었으리라.
7년 전의 나처럼-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에 온전히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7년 전 '나'의 두려움을 온전히 품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수시로 출몰하는 정경미와 마주하고, 어쩌면 나보다 더 많은 것을 내어주고 살았을 나의 엄마의 삶을 떠올리다, 정수리까지 차오르는 눈물을 참아내지 않고 마음껏 흘려보냈습니다.
불이 꺼진 영화관에서
나의 시작,
나의 두려움과 만났고,
이제는 시도하기 전에
실패를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 글. 정경미.
+덧, 오늘은 하나뿐인 아들의 생일이에요.
"엄마 내 생일인데 뭐해줄 거야?"
"엄마가 은찬이 낳느라 힘들었으니까
은찬이가 엄마에게 뭐해줘야 하는 거 아냐?"
"그래? 그럼 내가 미역국 끓여줄게."
"좋아... 내일 부탁할게.."
어젯밤 모자의 대화입니다.
분명 미역국을 끓여주겠다 약속했던 아들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근데 엄마, 엄마는 엄마 생일에 할머니한테 뭐 해줬어?"
"어? 어....... 마음을 줬지......."
"그럼 나도 엄마한테 마음을 줄게.. 괜찮지?"
나의 삶은 그토록 찾고 싶어 했으면서 나 역시 엄마에게 받았던 수많은 권리를 당연하게 생각했음을 아이를 통해 깨닫습니다. 엄마가 주는 사랑을 '의심 없이' 엄마의 몫이라 여긴 나를 발견하고 나니, 이렇게 자각할 수 있게 자극을 건넨 그 순간이 참 고맙습니다.
아이가 태어난 뒤
나는 엄마가 되었고,
이제야 진짜 엄마의 사랑을 깨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