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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미 작가 Jul 10. 2020

교사가 전문직이라고?

웃기지 마, 노동자일 뿐이야.


“선생님들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뒤통수를 세게 후려갈긴 느낌이었다. 정신이 번뜩였다. 내 귀를 의심했고, 조용히 업무수첩에 방금 들은 말을 옮겨 적었다. 느리지만 정확하게.




2018년 6월 27일 오후 3시. 아침부터 말썽인 컴퓨터가 오후까지도 켜질 생각이 없다. 오늘까지 급하게 제출해야 하는 공문이 있어서 컴퓨터 관리업체에 “빨리” 와달라고 부탁했지만, 수화기 너머 형식적인 답변만 들려왔다. 오지 않는 그분을 마냥 기다릴 수 없었다. 고장 난 컴퓨터를 고치는 가장 빠른 방법은 강제 종료 후 켜기. 쉬는 시간마다 주저앉아 의자 아래 컴퓨터 전원을 길게 눌렀다. 퇴근 한 시간 전, 버튼의 텐션을 느낌과 동시에 빙그르르 파란색 불이 켜졌다. 로그인이 되고 파바박 뜨는 메신저의 [긴급] 알림. 문제가 해결되고 나니, 컴퓨터 본체 뒤 켜켜이 쌓인 먼지가 눈에 들어왔지만 교실에 잠깐 들러 후다닥 종례하고, 종종거리며 회의실로 갔다. 급하게 처리해야 할 공문이 머릿속에서 맴돌며, 어떻게든 가지 않을 궁리를 하다가 포기했다. 오늘 같은 별도의 긴급회의에선 꼭 참석자를 확인하기에, 담당 장학사님께 늦어서 죄송하다는 말을 연거푸 전한 뒤, 구두로 관련 내용을 보고 했다. 어차피 이 일을 완료해도 결제라인 주요 인물들은 회의실에 있으니 그곳에 가는 편이 더 나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여느 때처럼, 속속 선생님들이 들어섰다. 교장선생님이 추진하고 싶었던 사업이 교사들의 반대로 지연되자, 긴급회의가 소집되었고 급기야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의결권은 박탈되었다. 계속된 반대투표로 난관에 봉착하자 선생님들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공식 회의석상에서 하셨고, 모두 침묵했다. 초등학교 시절(나 때는 국민학교였지만), 땡볕에서 들었던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처럼 듣고 있지만 들리지 않는 이야기들을 교사가 된 이래 매주 한 번씩 십 년 넘게 들었건만,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스스로의 자유의지가 있는 생각하는 인간이었음을 망각했던 시간 속에서, 나는 길들여져 갔다. 



그날도 그냥 그렇게 지나쳤을지도 모를 그런 날이었다. 어쩌면 그전에 나는 이 말을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운명처럼 나는 이 날 멈췄고, 생각했다. 
 


[회의 回議] 주관자가 기안한 것을 관계자에게 돌려 의견을 묻거나 동의를 구하는 일.


 '회의'라 칭하지만, 이 속에 자발적 동의는 없었다. 누군가의 의견을 듣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 아닌 일방적 전달만 있었다. 의미 없는 직원회의, 교사들은 서로 눈치 보느라 정작 하고 싶은 말을 삼킨다. 누군가 한 마디 하면 모든 시선이 집중돼서, ‘저 사람 왜 저래?’가 되는 싸한 분위기. (그래 놓고 애들이 수업시간에 말을 안 한다고 열변을 토하는 교사들.)
 
 '누구를 위한 회의인가?'
 '무엇을 위한 회의인가?'

 

평소 내가 가진 생각에 방점을 찍는 교장선생님의 한 마디를 듣고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한 마디(큰 소리로 말하진 못했다. 다시 이 순간으로 돌아가도 못 할 테지만.)
 
 “그럼, 이거 도! 대! 체! 왜 하는 거지?”
 

 고구마를 먹고 체한 듯 불편한 감정이 가슴에서 딱 걸렸다. 평소 같으면 그냥 흘려 들었을 텐데, 원래 그러려니 하며 넘어갔을 텐데, 자꾸만 그 말이 걸렸다. 자꾸만 걸려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대기업에 취업했다고, 공무원이 되었다고 당신의 인생이 성공했다고 착각하지 마라. 그래 봤자 일주일에 5일을 노예처럼 일하고 노예처럼 일하기 위해 2일을 쉰다!” 


사놓고 어쩐지 손이 가지 않아 밀쳐둔 책의 뒷 표지 문구가 왜 하필 이 타이밍에 떠올랐을까. 그날 밤 엠제이 드마코의 <부의 추월차선>을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책을 읽고, 훈육과 획일화를 통해 아이들의 개성을 말살하고 복종을 가르치며 ‘착한 노동자’를 양산하는 학교 시스템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했다. 교육은 학생들이 ‘의심’을 포함한 ‘의문’을 품기를 원하지 않는다. 교사도 마찬가지. 그저 시키는 대로 하라는 대로 말 잘 듣는 아이들을 원했다. 순응하지 않는 사람을 끊임없이 쳐내고 솎아내고 다듬어서 더 이상 튀어 오르지 못하게 입을 막았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 창의성과 선택권. 자기 결정권을 잃어버리고 보통의 인간이 되어버리는 현실. 그 중심에 있는 나. 교사라는 직업이 가진 한계. 혼란스러웠다. 
 


'왜 그 순간 용기 있게 말하지 못했을까?'

'왜. 왜. 왜....'

나 역시 교장선생님 면전에 대놓고 이야기 못하면서 뒤에서 불만을 토로하는 겁쟁이였음을 인정했다.
 
전문직이라는 허울 아래, 나 역시 시키는 대로 일하는 노동자인 건 아닐까. 내 안에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멈출 수 없었다. 내 꿈이 있다고 생각한 공간에서 절망을 보았고, 학교라는 메커니즘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회오리처럼 밀려들었다. 그 뒤로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하고 싶지가 않아졌다.
 
나도 정작 하지 못하는데 아이들에게만 그렇게 살라고 말하는 모순덩어리 나를 견딜 수 없었다. 다음날 수업시간. 아이들 앞에서 입 열어 무언가를 말할 수가 없었다. 


지금껏 나는 나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다. 교사로서, 나는 꽤 괜찮은 교사였다. 그게 나의 버팀목이었다. 씹다만 풍선껌처럼 한없이 커져있을 땐 몰랐다. 바람이 빠지고 나니, 나는 아무것도 아닌 일개미일 뿐이었다. 일반 회사에 비해 수평적 관계 속에서 일하는 조직이기에 남들보다 조금 더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다. 오만이고 착각이었다.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삶은 죽음과 같다.”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는 공간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멈췄다. 

일도.

마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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