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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영 Jan 20. 2021

시각장애인의 과거 회상 2

과거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방법

** 이전 글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 신상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하였으며, 아래의 내용은 모두 참가자의 동의를 얻은 후 공유하는 것임을 밝힙니다.


<참가자 소개>


Luis - 30대 중반의 남성, 선천적 시각장애. 친구와 함께 바다를 항해하는 것을 좋아하여 선착장의 작은 요트에서 살고 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비영리 단체에서 상담 및 기술 고문을 맡고 있다.


Ray - 30대 중반의 남성, 선천적 시각장애. 선천적으로 시각이 나빴으며, 태어난 후에는 조금의 시력이 있었지만 3살 전후로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고 한다. 무술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체육관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호신술 및 카운슬링을 맡고 있다.


Meg - 20대 초반의 여성, 선천적 시각장애. 최근 대학을 졸업했다. 안내견과 함께 살며, 날씨 좋은 날에 산책하는 것을 좋아한다.


Carol - 60대 후반의 여성, 선천적 시각장애. 20년 이상 IT 회사에서 경리직으로 일하고 은퇴했다. 시각장애인 남매와 전화로 옛날 얘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Carl - 60대 중반의 남성, 후천적 시각장애. 카메라맨으로 일한 경력이 있으며, 약 15년 전 사고로 시력을 잃었다. 시각을 잃은 후에도 영상과 사진에 대한 열정으로 현재까지도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Jessie - 20대 후반의 여성, 선천적 시각장애. 음악을 사랑하고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음악 심리치료사가 되기 위해 공부 중이다.


Janet - 60대 후반의 여성, 선천적 시각장애. 시각장애인 아이들을 위한 특수반에서 선생님으로 오랜 기간 교편을 잡았다. 은퇴 후 손자 손녀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Frank - 70대 초반의 남성, 선천적 시각장애. Carol의 오빠이다. 어렸을 적부터 자동차와 보트의 엔진 소리를 좋아했다. 보트 트립을 가는 것과 오디오북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Rob - 60대 초반의 남성, 후천적 시각장애. 희귀병으로 인해 20대부터 시력이 서서히 나빠지기 시작해 30대에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단체에서 기술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것과 여행을 좋아한다.




이번 글에서는 각 참가자들과 진행한 9번의 인터뷰를 토대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정리하였다.


1. 과거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방법

    1-1. 감각을 통한 회상

    1-2. 장소를 통한 회상

    1-3. 대화를 통한 회상

    1-4. 다른 사람의 묘사를 통한 회상

    1-5. 형태가 없는 느낌을 통한 회상   


첫 번째 테마는 "현재"에 집중한다. 시각장애인으로서 어떤 방법으로 과거를 기록하고, 지나간 일을 추억하는지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1. 과거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방법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과거를 돌아보고 기억하는 일은 중요하다. 적게는 몇 달에 한 번씩부터 많게는 하루에 여러 번씩. 빈도는 사람마다 달랐지만, 모든 참가자들은 단순히 무미건조하게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일이 아닌, 감성적이고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회상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즐기고 있었다. 추억을 돌아봄에 있어서, 향수를 건드리는 특정한 자극(trigger)이 있다. 참가자들의 경우에도 과거 회상에 관련한 자극이 관찰되었다. 개인의 경험과 취향에 따라 종류는 달랐지만, 공통점을 분석해보니 감각, 장소, 대화, 묘사 그리고 느낌의 5가지의 카테고리로 나뉘었다.


1-1. 감각을 통한 회상

미각, 후각, 청각 그리고 촉각은 과거의 기억과 아주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다양한 감각을 느끼며 기억을 떠올리는 일이 가장 대표적인 회상 방법이었다. 특히, 촉각은 일상에서 가장 많이, 그리고 섬세하게 쓰이는 감각이기에 특정한 패턴에 과거의 기억이 새겨진 경우가 많았다.

Luis의 말에 의하면, 촉감은 과거의 기억뿐만 아니라, 미세한 감정과 상황까지 떠오르게 한다.

시각장애인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감성적이 되는 것 같아요. 우리는 많은 부분을 기억에 의존해야 하거든요. 촉감에 관련된 기억이 특히 많은데, 굳이 특정한 기억이 담긴 물건이 아니더라도 종종 과거의 기억이 떠오를 때가 있어요. ... 예를 들어, 가끔 낡은 헤드폰이나 오래된 테이프 레코더를 만질 때면, 어린 시절의 기억이 한꺼번에 떠올라요.
사실 이게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에요. 제가 16살 때 아주 친했던 삼촌이 돌아가시고 나서 삼촌의 물건을 몇 가지 받게 되었는데, 그 당시 삼촌이 쓰시던 물건과 비슷한 물건을 만지게 되면 그립고 슬픈 느낌이 아주 강렬하게 떠오를 때가 있어요. 아마 제가 삼촌의 얼굴을 떠올릴 수 없기 때문에 비슷한 촉감에 특히 더 예민하게 느끼는 걸 수도 있지만요. - Luis


Janet은 부드러운 실크 재질에 물방울무늬가 있는 패턴을 만질 때마다 오래전 여동생의 결혼식이 떠오른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Frank도 자녀의 결혼식에서 웨딩드레스를 직접 만져보며 감각을 기억했다고 하는데, 비슷한 재질의 옷을 만질 때마다 그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고 언급했다.

참가자들은 특정한 패턴이 있는 재질을 오래 사용하다 보면 (또는 특정한 상황에서 기억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면), 그 패턴이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굳이 만져보지 않더라도 느낌을 떠오르며 회상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촉각 외에 다른 감각도 과거를 회상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일상의 인상을 기억에 남겼다. 특히, 여러 감각이 복합적으로 섞일 때 더욱 풍부하고 깊은 회상(또는 감상)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계절에 따라 도시마다 느껴지는 냄새가 달라요. 일상생활에서 우연히 닮은 냄새를 맡게 되면 문득 여행을 갔던 장소를 떠올리게 되는데 놀랍게도 아주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 Janet
저에게는 후각이 제일 강렬해요. 숲 속을 걷거나 바다를 보며 걸을 때 나는 냄새를 좋아해요. 풀밭을 지나오는 바람 냄새도 좋아하고요. 이런 냄새에 집중하다 보면 나무에서 나는 다양한 소리에도 감사하게 돼요. 단지 나무에 바람이 스칠 뿐인데 미묘하게 소리가 달라서 그 나무가 활엽수인지 침엽수 인지도 알 수 있거든요. -  Rob


1-2. 장소를 통한 회상

과거 회상에 큰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인은 바로 "장소"였다. Janet의 말을 빌리자면, "모든 장소에는 추억이 깃들어 있다." 참가자들은 단지 어떤 장소에 있는 것만으로도 여러 가지 기억이 떠오른다고 입을 모았다.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어디인지 묻는 질문에, 바다를 좋아해서 요트를 개조한 집에 살고 있는 Luis는 배 위의 특정한 장소를 콕 집어주며 설명해주기도 했고, 안내견과의 기억이 얽혀있는 Meg의 침실, 그리고 수많은 아침을 보내며 일상의 기억이 잔뜩 쌓인 Jessie의 부엌까지, 참가자들은 다양한 장소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가장 좋아하는 장소요? 두말할 것도 없이 조타석(Cockpit)이에요. 햇살 좋은 날이면 친구와 바다로 나가곤 하는데, 제가 음식을 하는 동안 친구가 배를 조종하거나, 제가 키를 잡으면 친구가 음식을 하러 가요. 아니면 배를 잠시 세워두고 이것저것 수다를 떨죠. 가끔은 배 아래의 선실이 더 기억에 남기도 해요. 비가 오는 날이면 피자를 한판 시켜놓고 실없는 농담을 하며 시간을 보내거나 우리의 다음 항해를 상상해보기도 하니까요. - Luis
제 침대의 바로 옆에는 전 안내견 Milo의 침대가 있었어요. Milo는 첫 안내견이어서 그런지 지금도 생각이 많이 나요. 재미있는 추억이 많았죠. Milo가 침대 옆에서 잠을 자면서 코도 많이 골았어요. 여전히 그리운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특별한 공간이에요. - Meg
생각해보면 아주 많은 시간을 부엌에서 보냈어요. 여기서 처음 베이킹을 배우기도 했죠. 첫 작품은 아주 멋지게 망했지만요. 쿠키를 구웠는데, 달달한 돌이 나왔어요 (웃음). 아무튼.. 부엌은 저에게 참 뜻깊은 곳이네요. 아주 많은 아침을 맞이했으니까요. 아일랜드에서 등교하기 전에 허겁지겁 아침을 먹던 날도, 여유롭게 아침을 보내던 날도 전부 기억이 나요. ... 어떤 장소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수록 그 장소가 더욱 특별해지는 것 같아요. - Jessie

참가자들의 이야기에서 미루어보아, 특정 장소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와 소리, 냄새 그리고 주변 물건들을 만지며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질감은 짙은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1-3. 대화를 통한 회상

의미 있는 물건을 만지거나 특정한 공간에 있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기억을 떠올리고, 세세한 디테일을 공유하면서 회상하는 방법도 참가자들이 흔하게 경험하는 회상의 한 방법이었다. 과거에 있었던 일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기분, 날씨, 장소, 사건, 사람 또는 소지품 등 어떠한 주제로 인해 이야기가 과거를 추억하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대화에 스토리가 있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을 선호했다.

아내와 저는 언제나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걸 좋아했어요. 우리가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얼마나 많은 성, 교회 그리고 성당을 들렀는지 몰라요. 그런 기억을 떠올리는 건 많은걸 필요로 하지 않아요. 단지 우리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그거면 충분해요. 한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아주.. 그리운 느낌이 들죠. - Rob

또한, Rob은 직접 만져볼 수 있는 형태와 촉감도 좋아했지만, 기념품을 모으는 것에는 결국 공간적인 제약이 생기는 것을 지적했다. Rob과 마찬가지로, 다른 참가자들도 의미 있는 물건을 소유하는 것에 있어서 항상 고심하고, 낡은 것을 버리거나 잃어버리게 되는 점이 안타까웠다고 한다. 반면에, 이야기로 풀어내는 방법에는 이러한 제약이 없었다.

기념품을 하나씩 모으면서 결국 느끼는 것은, 결국 나에게 허락된 공간만큼만 채울 수 있겠구나.. 하는 거였어요. 저는 아주아주 큰 공간에 모든 기억을 전부 담아두는 것을 원하지는 않아요. 자연스럽게 잊혀지는 기억은 아예 사라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대부분은 제 머릿속에 또는 마음속에 남아있죠.
기억을 상징하는 물건을 굳이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지만, 그 기억에 대한 이야기는 꼭 필요해요. 기억이 담긴 물건을 소유하고 있는 것보다는, 그 기억을 살아있게 하는 다른 사람과의 소통이 저에겐 훨씬 소중해요. 제 기억들은 물건이 아닌 이야기 안에 보관하고 싶어요. 언제, 어떤 상황이든 바로바로 꺼내볼 수 있게요. - Rob


1-4. 다른 사람의 묘사를 통한 회상

참가자들이 대부분의 시각적인 정보를 받아들이고 익히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의 소통이 중요했다. 특히, 거대한 수목의 가지가 얽혀있는 모습이나 하늘에 무수히 많은 별, 또는 석양이 흐드러진 하늘처럼, 숨이 멎을듯한 자연경관을 마주할 때면 옆에 있는 누군가의 묘사가 꼭 필요했다.

저는 태어났을 때부터 눈이 아예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인지 기억하고 외우는 것에 아주 익숙해요. 기억의 길을 하나씩 찬찬히 더듬어 따라가다 보면 수천 개의 기억을 찾아낼 수 있어요. 하지만 후천적으로 시각을 잃게 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무언가를 잊어버린다는 것을 두려워하더라고요. 석양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또는 오렌지색이 뭐였는지 하는 것들이요.
저는 이런 것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석양이나 색깔에 대해서 떠올릴 때면 다른 사람이 제게 들려준 최고의 묘사(best description)를 떠올려요. 한 번은 친한 친구와 함께 바다로 항해를 갔는데, 그때 그 친구가 제게 무척이나 벅찬 목소리로 밤하늘에 별이 떠있는 모습을 설명해준 적이 있었어요. "Luis, 마치 까만 도화지에서 수천 개의 별들이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아..!"
저는 그 친구의 눈을 통해 세상을 봐요. 친구의 눈으로 보고, 친구의 입을 통해 들었던 묘사가 바로 제가 밤하늘의 별을, 그리고 석양을 기억하는 방법이에요. 그리고 그게 제가 세상을 보는 방법이에요.
소리를 듣고, 맛을 보고, 냄새를 맡고, 손 끝으로 만지는 방법 외에, 시각적인 것을 마주할 때면 저는 항상 다른 사람의 눈을 빌려요. 저는 제가 많은 것을 겪고, 경험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해요. 다른 사람들이 저에게 그림을 보듯 설명해주는 게 저에게는 아주아주 소중해요. 어디에 적어두거나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이야기를 시작하면, 제가 아끼고 좋아하는 그림 같은 묘사가 저절로 마음속에 떠오르니까요. - Luis

희귀병으로 인해 20대부터 시력을 서서히 잃어서 30대에 완전히 시각을 상실하게 된 Rob도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저는 더 이상 누릴 수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느라 감정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아요. 아내와 함께 집 앞 해안가로 산책을 나갈 때면, 저 멀리 해가 수평선을 넘어가면서 만드는 아름다운 노을이 보여요. 하지만 더 이상 석양을 볼 수 없는 것에 절대 애통한 마음이 들지는 않더라고요. 옆에 있는 저의 아내, 또는 다른 사람이 그 광경을 보면서, 보이는 것들을 자세하게 설명해주기 시작해요. 색깔은 어떤지, 구름이나 빛이 퍼지는 모양은 어떤지. 저는 단지 그 순간을, 그 광경을 옆에 있는 사람과 함께 즐기는 것에 집중해요. 절대로 "당신들이 보는 그것을 저도 볼 수 없어서 참 안타깝네요." 하는 마음은 들지 않아요.
그저 이 세상이 지금 저에게 보여주는 그대로의 모습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것에 감사해요. - Rob

구어체적인 묘사 외에도, 제스처를 통해 시각적인 정보를 전달했던 경험도 있었다. Frank를 인터뷰하는 도중에, 비시각장애인인 그의 아내 Susan도 자연스럽게 같이 대화에 참여하게 되었다. Susan은 우리에게 신혼여행에서 있었던 일화를 말해주었다.

오래전 신혼여행에서 Frank에게 설명해줬던 제스처를 보여주는 Susan.
근처의 아주 멋진 섬으로 신혼여행을 갔을 때였어요. 그 섬에 있는 나무들은 정말로 거대했어요. 이 느낌을 Frank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당시에 제가 떠올린 방법은 바로 손으로 나무를 표현해보는 거였어요. "Frank, 손가락을 서로 겹쳐서 이렇게 만들어봐요!" 그 모양이 바로 거대한 나무들이 한데 섞여 서로 가지가 맞닿아 있는 모습과 비슷했었거든요. - Susan (Frank의 아내)

Luis가 말하듯,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본다는 것은 모든 참가자의 경험을 아주 잘 표현하는 비유였다. 스스로 세상을 느끼며 만들어가는 기억도 소중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듣는 묘사와 그 안에 담긴 애정과 호의가 추억에 더해질 때, 비록 보이지 않는 것일지라도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1-5. 형태가 없는 느낌을 통한 회상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기억은 담는 활동을 활발하게 이어가는 반면, 몇몇 참가자들은 순간을 기록하는 습관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경험이나 감정을 기록하기보다는 현재를 즐기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이었다. 개인적인 경험 또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얻는 감정은 기록으로 남기기가 쉽지 않다. 또한, Meg의 말을 빌리자면, 기억을 남기는 일에 지나치게 집중하다 보면 "현재의 순간을 뺏겨버린다." Rob도 Meg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저에게는 그 순간에 있는 것 자체가, 그리고 그 순간을 온전히 경험하는 것이 더 중요해요. 굳이 사진을 찍는다거나 소리를 녹음하려고 하지는 않아요. 남는 기억은 받아들이고, 스쳐가는 기억은 그렇게 흘려보내요. 제가 평소에 꼼꼼하게 신경 쓰는 타입은 아니라서 그럴 수도 있어요. 좀 더 긴장을 풀고, "흘러가게 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let it go, let it be)" 하고 되뇌이죠. - Rob

이런 맥락에서, 잊혀짐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하나의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저도 굳이 기억이나 경험을 적어두거나 기록하는 편은 아니에요. 한편으로는 제가 과거에 크게 얽매이고 싶지 않아 하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굳이 떠올리자면, 경험이나 사건보다는 사람의 목소리에 더 집중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소중한 사람의 목소리는 꼭 녹음을 해둬야겠다 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정말 이런 거에 매달리는 게 맞는 걸까?"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봐요. 저는 미래지향적인 사람이에요. 어딘가에 저장되어있더라도 결국 시간이 흐르면 잊혀지게 되잖아요? - Jessie

익숙해지지 않는다면, 순간을 기록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수고스러웠던 만큼 시간이 흘러 돌아보고 추억할 수 있는 소중한 콜렉션이 생기겠지만, 그 수고가 지금 이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행복을 방해한다면, 그것은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순간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것은 모든 감각, 그리고 일상에서 느끼는 분위기를 통해 이루어졌다. 참가자들의 이야기는 비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 듣기에 몇 가지 흥미로운 특징이 있었다. 하지만 큰 틀에서는 시각장애인의 과거 회상 방법이 비시각장애인의 습관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Meg의 말처럼, "기억은 어딘가에서 맴돌다가 어느 순간에 살며시 떠오른다." 추억이 밀려오고 사라지는 순간이 있듯이, 참가자들은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마주하는 과거의 기억을 저마다의 방법으로 즐기고 있었다.


다음 글에서는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기념품이나 소지품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소유물과, 이러한 소유물을 통해 과거를 마주할 때에 생기는 갈등과 마찰에 대해 다뤄본다.





이미지 출처:

https://www.europeanbestdestinations.com/best-of-europe/best-destinations-for-spring-time-in-europe/


https://www.nytimes.com/2020/12/10/travel/european-parks-pandemic.html


https://ar.pinterest.com/pin/31947478593051714/?autologin=true


https://www.cntraveler.com/gallery/european-cities-that-are-even-better-in-winter


https://collectionyachts.com/listings/sail-center-cockpit/


https://entriways.com/designing-a-dog-friendly-home-our-new-puppy/


https://repprenovations.com/projects/kitchens/project:bright-transitional-kitchen/


https://depositphotos.com/166743434/stock-video-night-boat-clear-sky-with.html


https://www.vox.com/science-and-health/2019/11/22/20970563/sunset-science-explained-rayleigh-scattering


https://www.instructables.com/Attaching-a-Line-In-to-an-old-Philips-Radio-Cas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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