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의궁전 Feb 06. 2024

[아들한컷] 엘리베이터 고장난 날

시장을 보고 오니 엘베가 고장나 있었다. 


 #아들한컷

 주말에 다 같이 시장 가서 야채 사가지고 오는데 엘리베이터가 거짓말처럼 멈춰있는 거다. 토요일 저녁 시간이라 언제 올지도 모르고 이미 아들이 타고 다니는 디라인이랑 장본 야채들도 짐도 잔뜩이라 고민이 됐다. 남편은 근처 커피숍에서 그냥 시간 보내다 오자고 했지만 언제 고쳐질지도 모르는데 하염없이 기다릴 수 없었다. 

아들에게 "엘리베이터가 망가져서 걸어가야 돼. 짐이 많아서 올라가다가 중간에 엄마랑 아빠가 거노를 안고 갈 수 없어. 혼자 걸을 수 있겠어?" 했더니 일단은 씩씩함을 추구하시는 아드님이 "네!"라고 하는 거다. 그래 그럼 해보자. 

남편은 장본걸 들고 가고 나는 아들이 타고 다니는 디라인과 가방을 들고 셋이서 그렇게 한 계단씩 올라갔다. 씩씩하지만 말없이 올라가는 부자를 위해 맨 뒤에서 독려하며 쉴 새 없이 응원을 아끼지 않는데 딱 중간에 한번 8층의 고비에서 아들이 멈추더니 

"거노 힘들어요. 안아줘." 

아. 올 게 왔구나.... 최악의 경우 아들을 안고 올라가고 디라인은 남편이 들어야 하겠지만 그건 정말 최악의 경우고 한 번만 더 아들을 설득해 보자. 

"맞아. 거노 진짜 힘들겠다. 근데 아빠랑 엄마가 짐이 많아서 지금 거노를 안고 갈 수가 없어. 이제 절반밖에 안 남았어. 우리 거노는 씩씩하니까 끝까지 한번 올라가 볼까?"

그러자 너무 대견하게도 우리를 한번 쭉 훑어보더니 아들이 말없이 계속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15층을 끝까지 올라가자 뭔가 막 기분이 너무 좋았다. 울지 않고 끝까지 해낸 아들에게도 너무 고맙고 아침부터 일정 소화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저녁에 장 본 거까지 15층으로 들고 올라가준 남편도 고마웠다. 

집에 돌아와 맛있게 저녁을 먹고 나서도 기운이 남았는지 한참을 더 놀다가 중간에 한 번도 깨지 않고 두 분 다 깊이 잠드셨다. 

얼마 전에 강릉에 놀러 가서 친구와 함께 말없이 3시간 내리 걸어서 숙소로 온 기억이 났다. 그때도 몸은 피곤한데 뭔가 해냈다는 생각에 기분이 무척 좋았었다. 앞으로 아들과 가까운 산 등반도 한번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