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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정우 Nov 08. 2021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도 낙원은 있어

2년 간의 석사과정을 마쳤다. 사실 졸업논문이 통과된지는 근 두 달이 넘었지만 한국과는 다른 독일의 학점 시스템 덕에 졸업장을 내 손으로 만져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졸업과 동시에 ‚먹고사니즘‘에 대한 강박은 10월의 독일 하늘을 뒤덮은 무거운 구름과 함께 찾아왔다. 이제는 스스로의 삶을 손에 꼭 쥐고 이끌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나이가 되었다. '더 이상 학생이라는 신분 뒤에 숨어있을 수 없겠구나‘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강타했을 때, 감성 충만한 ‚욜로 라이프‘의 외침이 피식 웃음이 흘러나올 만큼 유치하게 느껴졌을 때, 나는 비로소 서른의 무게를 짐작했다. 성취에 대한 뿌듯함과 두려움. 극과 극에 있는 감정들 사이에서 널을 뛰다 보니 도통 어지러워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밑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도망치기로 했다. ‚삼십육계 줄행랑‘이라는 말로도 익숙한 <삼십육계>는 서른여섯 가지의 전술을 다룬 중국의 병법서이다. 서른여섯 번째 전략인 주위상(走爲上)이 바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그것이다. 적이 막강할 때 잠시 퇴각하고 다시 공격의 기회를 기다리는 것. 당장의 힘을 아껴 상황을 반전시킬 기회를 노리라는 의미이지만, ‘도망’의 속된 표현인 ‘줄행랑’이 따라붙는 바람에 우리에게는 이것이 전략이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회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전략이면 어떻고 회피면 또 어떤가. 일단 살아야 한다.


김영하 작가는 시칠리아 여행 산문 <오래 준비해온 대답>의 서문에서 어디로 여행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마치 ‘오래 준비해온 대답’처럼 시칠리아라고 답했다는 일화를 소개한다. 마찬가지로 나는 도망치기로 결정하고 “어디로?”라는 물음에 마치 오래 준비해온 대답처럼 파리를 떠올렸다. 찬기가 느껴지는 가을이 되면 플레이리스트에 반드시 추가되는 재즈곡 <September Second>의 피아노 연주자 미셸 페트루치아니가 태어난 나라, 프랑스. 


독일의 남부 도시에 거주하는 내게 파리는 결코 외국이라고 할 수 없다. 베를린에 가려면 ICE를 타도 아홉 시간이 걸리는데, 파리에는 TGV를 타고 세 시간이면 도착한다. 또 같은 EU 회원 국가이기 때문에 환전을 할 필요도 없고 로밍을 하지 않아도 그대로 통화와 문자가 가능하다. 게다가 열차 안에서 국경을 넘어가면서도 여권 검사 한 번을 하지 않길래 ‘프랑스는 외국이라고 할 수도 없네.’ 싶었다. 아주 오랜만에 말도 안 통하는 ‘진짜’ 외국으로 떠나는 건데, 바로 옆 도시에 가는 것 같은 가벼운 여행길에 설렘은 이미 저만치 떠나간 지 오래였다. 


몇 시간이 더 지나고 파리 동역에 도착했다. 교통권을 사기 위해 찾아 간 창구에서 직원은 끝도 없는 업무에 지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봉쥬르” 


그제야 나는 불어를 할 줄 모르는 외국인임을 실감하고 영어로 필요한 것들을 설명했다. 조금 복잡했는지 직원은 간단한 영어를 하다가 불어로 이야기를 시작했고, 나는 온갖 몸짓과 독일 살이를 통해 쌓아 온 눈치를 동원해 교통권을 샀다. 무사히 숙소로 가 짐을 놓고, 본격적으로 길을 나섰다. 그제야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언어의 낯선 멜로디들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독일어보다 발음과 억양이 부드럽고 리듬감이 있어서 왠지 더 상냥하게 들렸다. 다들 체구가 이렇게 큰데 지하철은 또 어찌나 아담한지, 마주 보고 앉는 좌석에서는 앞사람과 무릎이 닿지는 않을까 걱정해야 했다. 벽면에 내장(?)되어있어 지하철 내부가 혼잡하지 않을 때 스윽 내려앉을 수 있는 숨은 의자들도 많았다. 최대한 많은 의자를 배치하겠노라는 의지가 느껴지는 지하철이었다. 그것 외에도 가로로 이어 붙여져 있는 신호등의 빨간 불과 파란 불, 한 면을 평평하게 손질해놓은 가로수, 알록달록하게 거리를 장식하는 가게들의 천막까지 그 모든 것들이 독일과 비슷한 듯 새로웠다. 틀린 그림 찾기를 하듯 어떤 곳에서는 독일의 풍경과 비교가 되었고, 어떤 곳에서는 한국의 풍경과 비교가 되었다.


말 못 하는 외국인이 되어본 적이 언제던가. 그 나라의 말을 할 줄 모르는 채로 현지에 온전히 혼자 남겨졌던 기억이 까마득했다. 유학 오기 전 다녔던 회사에서는 해외출장이 잦았지만 늘 영어가 가능한 현지 코디네이터가 있었고, 국내외를 자주 드나들다 보니 딱히 해외여행이 가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그러니까 약 6년 만에 처음 해외여행을 한 거다. 그래서 유독 못 읽고, 말 못 하는 답답함이 크게 와닿았던 것 같다. 불어는 특히 내가 보고 있는 이 단어와 실제 발음이 매치가 되지를 않아서 방송이나 한국어 표기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레스토랑에서는 요리 하나를 주문하기 위해 구글 번역기를 대동하며 20분씩 메뉴판을 탐독해야 했고, 슈퍼에서 커피 자판기를 이용하는 데에도 바쁜 직원들에게 달려가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한 번은 휴대용 휴지가 필요해서 마트 직원에게 손짓과 간단한 영어로 이야기를 했다. 그들은 영어를 모르고 나는 불어를 몰라서 서로 쩔쩔매다가, 큰 화장지가 있길래 그걸 한 번 가리키고 손으로 작은 네모를 만들어 보였다. “티슈, 티쓔우! 스몰, 스몰 라이크 디스!” 그제야 직원은 ‘아하!’하는 표정과 함께 어딘가로 급히 달려갔다. 조금 기다리니 그 직원은 창고에서 막 꺼내온 듯 먼지 한 톨 없는, 아기 엉덩이 티슈를 내게 자랑스럽게 내보였다. 나와 그 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직원이 동시에 빵 터지자 그 직원도 “왜, 이거 아니야?” 하는 표정으로 당황하다 결국에는 셋이서 깔깔 웃고 말았다.


여행자에게 따뜻한 도시는 유난히 머리와 가슴에 오래 남는다. 완벽히 낯선 이방인으로서 받는 호의는 몇 배로 큰 감동을 남기는데, 지나쳐도 상관없을 상황임에도 그들을 움직이는 힘이 오직 순수하게 돕고 싶은 마음이기에 그렇다. 그것을 온전히 전달받았을 때 느끼는 고마움은 내 안에 연료로 쌓여 동력이 된다. 막막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한껏 움츠러들어 딱딱하게 굳어버린 마음조차 그 찰나의 온도로 따뜻하게 녹아내리는 듯 했다. 


날씨가 완벽했던 어느 날, 한국인 동행을 만나 몽마르트 언덕에 올랐다. 파리의 전경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사크레쾨르 성당 앞 난간에는 굳센 사랑의 서약이 담긴 자물쇠들이 무겁게 매달려 있었다. 언니와 나는 그 난간을 붙들고 주렁주렁 열린 자물쇠 열매를 한 번, 360도로 펼쳐진 그림 같은 풍경을 한 번 보며 “우와”를 백 번 정도 외치고 있었다. 그러자 슬그머니 자물쇠를 팔던 상인이 와서 하나 사지 않겠느냐 물었다. 우리는 둘 다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언니는 내게 물었다.


“이런 거 달아본 적 있어?”

“아뇨. 영원한 건 없다고 생각함다.”

“동의해.”


어디에 눈을 돌려도 최소 한 커플 씩은 키스를 하고 있는 사랑의 도시 파리에서, 그렇게 메마른 두 여자는 영원한 사랑 같은 건 없다며 “우와”를 또다시 백 번 정도 더 외치고 언덕을 내려왔다. 그날 밤, 숙소에 돌아와 몽마르트르의 풍경과 난간에 매달린 자물쇠 사진들을 다시 한 번 찾아봤다. 360도로 펼쳐진 풍경의 반의 반도 담지 못한 사진일 뿐인데, 장관에 가슴이 터질것 같던 그 느낌이 그대로 살아났다. 입장을 조금 수정하기로 했다. 사랑이 영원하지는 않겠지만 함께 자물쇠를 채웠던 그 순간, 그때의 설렘은 영원하겠구나. 설령 상대가 지워지더라도 말이다. 


여행의 어떤 순간들은 너무나 소박하고 일상적이어서 당시에는 그 장면들이 어떠한 인상을 남기게 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다시 내 방의 익숙한 책상에 앉아 불과 일주일 전의 여행을 돌아보건대,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본 것도 아니고 개선문 전망대에 오른 것도 아니다. 이름도 모르고 말도 통하지 않는 세 사람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던 그 순간이고, 영원한 사랑 따윈 믿지 않는 건조한 두 여자가 몽마르트에서 ‘우와봇’이 되었던 순간이고, 나뭇가지가 부러질 만큼 강한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에도 뒤집어지는 우산을 부여잡고 센강에 넘실거리는 주황색 등불을 봤던 그 순간이다. 아마도 나는 한동안 휴지와 자물쇠, 강물에 비친 등불을 보면 파리를 떠올릴 것이다. 어딘가에 묻어있는 여행의 체취는 포트키가 되어 순식간에 그때의 시간과 장소로 배경을 돌려놓는다. 


일주일 만에 돌아온 독일은 어딘가 낯설게 느껴졌다. 파리에서 했던 틀린 그림 찾기를 튀빙겐에서 다시 하게 되었다. 가게들의 생김새, 묘하게 다른 느낌을 풍기는 도시 곳곳의 특징들까지 모든 것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무기력에 잠식되어 이리저리 내버려 두었던 계획들도 차분히 앉아 정리했고, 내 마음처럼 엉망이었던 방을 싹 치우고 아주 오랜만에 생화를 사다가 화병에 꽂았다. 방 안에 활력이 가득했다.


„우리 시간을 좀 갖자.“ 라는 말은 어쩌면 연인 사이뿐만 아니라 권태롭게 느껴지는 모든 것들에 유효한 것 아닐까. 파리에서 혼자 보냈던 일주일은 온전히 나의 선택만으로 이루어진 시간이었다. 먹고 싶은 걸 먹고 보고 싶은 걸 보고, 감탄하고 싶을 땐 지겨워질 때까지 천천히 감탄하면서 완벽하게 주도적으로 나만의 시간을 보냈다. 모든 순간들을 이끄는 중심에 내가 있었던 경험, 그 만족감과 충만함이 일상으로 돌아온 후에도 삶을 꾸려갈 힘이 되어주었다. ‚에잇, 몰라!‘하는 마음으로 모든 걸 내팽개치고 줄행랑을 친 퇴각로에서 우연히 낙원을 만났다.


보통 여행의 끝은 마지막 일정이 끝나거나 적을 둔 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순간을 의미한다. 그러나 지난 여행의 기억들을 정리하고 조금 낯설어진 나의 일상을 다시 끌어안고 한 발 나아가는  모든 과정이 여행이다. 지나온 여정을 꼭꼭 씹어 삼키고 나면 곧 다음의 싸움을 준비할 힘이 생긴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지만, 그곳을 낙원으로 만들면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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