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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정우 Feb 20. 2022

분노의 질주: 민달팽이 에디션

“다음 생에는 부디 달팽이로 태어나게 해 주세요!”


집이 없어 괴로운,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의 주인공 지호는 매일 같이 기도한다. 내 집 마련이 닿을 수 없는 별처럼 멀어진 시대에 자기 집 하나씩 거뜬하게 이고 다니는 달팽이를 부러워하며. 유난히 풀이 많은 우리 동네는 과연 달팽이들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는데, 비 오는 날이면 도로 옆 풀 길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유주택자들을 본다. 동그랗고 반짝반짝 빛나는, 크고 튼튼해 보이는 집. 어디 그뿐인가? 주변에서 어떤 조그만 위협이라도 느껴질 시엔 후다닥 몸을 웅크려 피신할 수 있는 즉시 대피소가 따로 없다. 내가 가는 곳이 곧 집이요, 집이 곧 내가 있는 곳이다. 길을 지나던 무주택자 1은 지호의 대사를 떠올리며 다짐한다. 


‘다음 생은 아무래도 달팽이가 좋겠어.’


집, 그놈의 집! 월급을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몇 백 년을 모아야만 비로소 집 한 채 살 수 있다는 웃픈 유머가 난무하는 한국은 그야말로 희망이 없는 곳이었다. 지인 중 누구는 벌써 부동산을 사서 몇 억을 벌었다는 소식을 들으며 쥐꼬리 만한 월급을 보고 끝없이 한숨을 내쉬는 것이 지겹도록 반복되었다. 그러다 독일에 오게 됐다. 


드디어 선진국의 주거안정을 누릴 수 있으려나? 현실적인 월세에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집. 그런 집에 살게 될 거란 꿈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독일에서 공부하는 친구들의 집은 그 소소하지만 가장 비현실적인 조건들을 만족했다. 적당한 크기의 방 두 개에 널찍한 거실, 빌트인 오븐이 있는 분리된 주방, 거기에 유럽 감성을 한 스푼 얹은 예쁜 인테리어까지. 심지어 월세도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저렴했다. 순진하게도 대부분의 독일 지역이 비슷한 수준일 거라 생각했지만, 본격적인 유학 준비에 들어가 집을 알아보며 그 환상은 단숨에 짓이겨졌다. 


내가 살고 있는 튀빙겐이라는 도시는 – ‘도시’라고 소개할 때마다 멋쩍은 웃음을 동반할 만큼 – 귀엽고 아담한 규모의 대학 도시다. 전체 인구의 60%가 학생 혹은 교직원이라는데, 집세는 독일 도시들 중 손에 꼽을 만큼 비싸다. 하필, 하필이면 이런 도시에 내가! 비교적 저렴한 값에 방을 내어주는 기숙사가 옵션에 있기는 하지만 원룸 형태의 기숙사는 제공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필시 누군가와 함께 살아야 하는데, 좋은 룸메이트를 만나리라는 보장이 없었고 실제로 두어 번 실패했다. 매일 밤 술과 파티로 넘치는 에너지를 방출하는, 그게 아니면 청결과 거리가 멀어 주방과 화장실에 갈 때 매번 헛구역질을 하게 만드는 이들과 집을 공유해야만 했다. 가장 편안해야 할 집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니 학업은 물론이고 생활 전반이 불안정해졌다. 무엇인들 그렇지 않겠냐마는 마땅히 돈과 편안함을 등가교환해야 했는데, 문제는 치러야 할 값이 너무 크다는 것이었다.


고작 4평짜리 방 한 칸을 임대하는데 드는 비용은 보수적으로 예산을 잡아도 40만 원부터 시작한다. 원룸도 아니고 2인 이상이 한 집을 나눠 쓰는 구조다. 그러니 주방과 화장실도 당연히 공유해야 한다. 게다가 위치가 좋고 학교와 가까우면 값은 6-70만 원을 웃돈다. 외곽으로 나가더라도 혼자 살 수 있는 원룸을 얻으려면 50만 원은 우스운 정도다. 편안하게 살려면 당연히 그에 맞는 값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지만, 아무런 지원 없이 이 가격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 ‘학생’이 도대체 몇이나 있을까. 


그래서 나는 반지하 방에 산다. 지하 창고를 개조해 세 개의 방과 하나의 화장실, 그리고 냉장고와 2개의 작은 인덕션이 결합된 앙증맞은 싱크대 하나가 겨우겨우 자리 잡고 있는, 귀여운 나의 집. 행운이라면 행운일까. 나는 세 개의 방 중에 가장 큰 4평 방에서 일 년째 살고 있다. 외출을 하고 돌아와 방문을 열면 훅 하고 끼치는 지하 습기의 꿉꿉한 냄새와 해가 밝은 한낮에도 켜놓아야 하는 전등이 이제는 익숙하다. 그늘진 반지하답게 여름에도 방에는 냉기가 가득하다. 40도를 육박하는 한 여름, 맨 윗 층에 살고 있는 친구가 더워서 잠을 못 잤다는 날에도 나는 긴 팔 긴 바지는 물론 따뜻한 차로 끊임없이 몸을 덥혀야 했다. 엘사가 된다면 이런 기분일까? 최저 기온이 영하 1도도 채 되지 않는 비교적 따뜻한 독일 남부의 한 겨울에도 난방의 세기와는 상관없이 늘 실내 온도는 17도에 머문다. 눈이라도 오는 날이면 방 안에서도 손 끝이 얼어 타자를 치는 손이 뇌의 명령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엉성한 놀림을 반복한다. 그럴 땐 내 조그마한 털 난 구원자, 캐시미어 장갑을 조용히 꺼내어 낀다. 마치 수술 장갑을 낀 채 비장하게 “메스”를 외치는 의사가 된 마냥 두 손을 들고 장갑의 시보리를 손목에서 한 번 탁- 하고 튕겨낸다. 그리고는 비록 수술방은 아니지만 나의 생과의 사투가 벌어지는 타자기 위로 비장하게 입장하는 것이다. 


가끔은 울분이 치솟을 때도 있다. ‘아니, 내가 뭐 엄청난 걸 바래? 그냥 학교에서 너무 멀지 않고, 치안도 괜찮고, 식탁 하나 책상 하나 정도는 놓을 수 있는, 뭐 가끔씩 친구 두 명 정도를 초대해도 너무 복닥거리지 않을 정도의 크기면 된다고!’ 그렇다. 나는 지금 엄청난 걸 바라고 있다. 내가 가진 예산에서 집세로만 6-70만 원을 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고,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저 정도 조건의 집을 구하기란 꿈에 가까운 일이다. 한국에서 하늘의 별처럼 멀어진 ‘그럴듯한 집’은 독일에서도 결코 땅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그래서, 포기했다.


부자가 되는 첫 번째 방법은 가난할 때 가난하게 사는 것이라고 하지 않나. 경제력이 부족하면 그에 맞지 않는 것은 과감히 포기하면 된다. 나는 좋은 집을 포기하는 대신 장기적인 관점에서 결국 더 큰 가치로 돌아올 수 있는 것에 투자하기로 했다. 이사하고 싶었던 집 월세에서 현재 살고 있는 집의 월세를 빼고 남은 돈을 매달 일종의 자기 계발 명목으로 사용한다. 책을 사기도 하고 독일어 학습자료 구독 비용으로 지출하기도 한다. 대신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다면, 그 돈을 쓸 때 절대 고민하거나 아까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장 스트레스받았던 큰 고민을 해결(을 빙자한 포기를)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뿐해졌다. 허구한 날 시간이 나면 방 구하기 어플에 들어가 덧난 마음에 고춧가루를 셀프로 들이붓고, 도대체 돈을 벌어도 왜 맨날 돈이 없는 건지 정답을 알 수 없는 수수께끼를 붙들고 머리를 쥐어뜯던 나와 미련 없이 작별했기 때문이다. 깔끔하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나니 모든 번뇌에서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사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잘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건 그 자체로 감사할 일이지 않은가. 


비 오는 날, 한국과는 달리 거대한 사이즈를 자랑하는 달팽이들을 본다. 그들 중에도 역시나 무주택자는 있다. 집 없이 매끈한 몸만으로 자유롭게 축축한 땅 위를 여행하는 민달팽이들이다. 등 위에 얹어진 무거운 짐이 없어서일까. 그들의 미끈거리는 걸음은 가히 ‘질주’라고도 부를 수 있을 만큼, 빠르다(!). 가끔 잔가지와 두꺼운 꽃줄기에 걸려 오도 가도 못하는 유주택 달팽이들을 보고는 한다. 안타까운 마음에 장애물들을 제거해주고 있노라면, 그 옆을 유유히 지나가는 민달팽이들이 보인다. 눈코 입이 없어도 ‘피식’하고 웃는 기세 등등한 표정이 보이는 듯하다. 예전이라면 집 없는 맨몸의 그들에게 동병상련의 위로를 건넸겠지만 이제는 그들의 매끄러운 활주에 조용한 지지를 보내고 싶다. 민달팽이들이 종국에 가지고 싶은 것이 튼튼하고 안전한 집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럴듯한 집은 없어도 걸릴 것 없이 가고 싶은 곳은 다 갈 수 있는 그들의 여행을 응원한다. 


내가 집이 없지, 꿈이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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