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에서 배우는 지혜 - 범실 하나하나에 흔들리지 말자
바야흐로 입술이 트고 눈이 건조해지는, 은행잎과 열매가 떨어져 냄새가 나는, TV에서는 프로야구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를 중계하며 찬 공기를 맞이하게 되는 이 계절이 오면 나는 참 신이 난다.
그 이유는 3년 전 도쿄올림픽 이후 완전히 푹 빠져버린 배구라는 매력적인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태어나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스포츠인 배구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게 한다. 규칙도 제대로 모른 채 조마조마하며 경기를 챙겨보던 21-22 첫 시즌을 넘어 초보운전 스티커를 2개나 붙이고 저 먼 화성까지 밤운전을 하며 주변에 ‘나 배구 덕후예요.’ 알리게 된 22-23 두 번째 시즌까지 지나고 나니 경기 흐름보다 더 중요한 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팀 스포츠에서 배우는 ‘수많은 삶의 지혜’다. 짧으면 1시간 반, 길면 2시간 반까지도 이어지는 경기 시간 동안 코트 안에서 보이는 리더십, 팀워크, 문제해결능력, 멘털 관리법 등 많은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이 중 오늘은 경기 중 범실에 대처하는 선수들과 감독님의 자세에 대해 느낀 점을 담아보려고 한다.
지난 것은 과감히 잊고
다가올 것에 집중하자!
스포츠 경기를 보다 보면 ‘범실’이라는 단어를 많이 듣게 되는데, 국어사전에 따르면, 범실(凡失)은 야구나 배구 따위에서, 평범한 실책을 뜻한다. (범실이 ‘실수를 범하다’인 줄 알았던 건 나만의 착각이었음을..)
코트 속에서 누군들 잘하고 싶지 않겠는가, 누군들 득점을 내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순간적인 부담에 의해서 또는 순간적인 판단 미스로 인해, 혹은 본인은 준비가 잘 되었지만 다른 선수와의 호흡이 맞지 않아서 등등 다양한 이유로 범실이 발생할 수 있다. ‘평범한’ 실책이라는 단어 뜻 그대로 코트 속에서는 매우 평범하기 그지없다.
적게는 75점, 많게는 115점가량 혹은 더 많은 점수를 먼저 선점해야 이기는 경기 시간 동안 범실을 최대한으로 줄이면 가장 좋겠지만, 점프하면서 손이 네트를 건드려 생긴 넷터치 범실, 디렉트 공격 하려다 상대편 코트로 넘어간 오버넷 범실, 세트 마지막 점수를 서브 미스로 끝내 상대에게 지게 된 서브 범실 등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순간에 범실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지난 것에 미련 갖지 말고 훌훌 털어버리고 ‘다음 나에게 날아올 공’에 집중하는 것이다.
몸을 쓰는 것 같지만 결국 운동도 다 멘털 싸움인 것 같다고 느끼게 된 데에는 다름 아닌 범실 한 선수의 코트 속 동료들의 태도였다. 서브 미스를 하고 코트 속에 들어와 풀이 죽어 있던 선수를 바로 토닥이며 ’ 괜찮아 괜찮아 다음엔 더 세게 치자‘ 위로하고 상대에서 넘어올 다음 공에 집중하도록 독려한다.
또한 상대편 공격수 손바닥을 치고 블로커 터치아웃으로 점수를 내려다 오히려 블로킹에 점수를 먹히고, 점프 후 착지하여 넘어져 있는 경우에도 옆에 있는 동료 선수들이 ‘괜찮아 잘했어’ 하며 손을 내밀어 일으키도록 도와주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장면을 보면서, 우리 팀이 점수를 못 낸 게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지난 것을 잊고 다가올 것에 집중하는 선수들의 태도에 존경심을 느낌과 더불어 결국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구나 하며 깨닫곤 한다.
이처럼, 코트보다 훨씬 더 넓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들도 지난 실수나 과오를 잊지 못하고 계속 생각하기보다는 ‘그럴 수도 있지. 이제부터 잘 하자‘라는 마인드로 코트 속 배구 선수들처럼 곧이어 우리들에게 날아올 공에 집중하는 것은 어떨까?
‘괜찮아. 이번에 이렇게 경험했으니 다음엔 더 나아질 게 틀림없어!‘ 하며 말이다.